[다산칼럼] 변화에 저항하는 사회

입력 2016-06-06 17:49  

저성장 늪 속에 빠져드는 한국 경제
갈등 조율·성장기회 못잡고 '뒷걸음질'
뼛속 깊은 의식개혁이 필요하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



빅데이터 분석 기법 중 하나인 ‘텍스트 마이닝’은 실생활 속 문서의 사용언어 빈도 수로 사람들의 생각을 분석한다. 최근 텍스트 마이닝을 통해 걸러낸 시대 언어들은 ‘거품’ ‘붕괴’ ‘절벽’ ‘추락’ ‘약탈’ 등 하나같이 절박하고 강렬하다. 5년간 지속된 저(低)성장의 어두운 그림자로만 보기엔 심각하다. 지난 4·13 총선의 이변으로 지긋지긋한 지역 대결구도가 옅어졌지만 이보다 더 지독한 세대 간, 소득계층 간, 사회적 신분 간 충돌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저성장 시대엔 작은 파이를 나눠야 하니 갈등 구조의 증폭은 피할 수 없다. 갈등 구조를 최소화하고 미래 변화에 대응하려면 뼛속 깊은 개혁이 우선인데, 말만 무성하지 정작 이를 위한 의식 변화에 대한 노력은 없다. 경제가 저성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데도 수년째 상향 위주의 경제 전망을 하는 오류를 지속하는 게 그 한 예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지난해 4월 3.4%로 전망한 뒤 7월 3.3%, 10월 3.2%, 2016년 1월 3.0%에 이어 4월에는 2.8%로 네 차례에 걸쳐 0.6%포인트나 내렸다. 내년 성장률 전망도 지난 1월 3.2%에서 4월에 3.0%로 내렸지만 앞으로 수정 전망을 해 결국 2%대로 갈 것이다. 아무리 전망은 틀리려고 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수년째 같은 방향으로 상향 전망을 하는 것은 구조적 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 한은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경제 전망 전문기관도 같은 상향 전망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변화에 저항하는 것은 국회도 마찬가지다. 20대 국회 개원 이후 생산적 국회가 되겠다며 경제문제 위주의 민생국회를 내건 여야 3당이 제시한 철학, 가치, 정책은 19대 국회의 재탕이다. 정치권의 문제의식이 이 정도라면 불평등·양극화·일자리·저성장 문제와 미증유의 주력 산업 위기 타개는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경제 위기가 닥쳐도 극복할 방도가 안 보인다. 나아가 제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기회를 성장에 접목시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청년기본법’을 비롯한 9개 법안을 당론으로 발의한 새누리당의 현실 인식이나 이를 가짜 민생법안이라고 비판하며 청년 일자리, 서민 주거, 사교육비 절감, 가계 부채 등 현장 민생행보를 강화하겠다는 더불어민주당의 경제 인식이 19대 국회 때보다 크게 진전된 것이 없어 보이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저성장 시대의 뿌리 깊은 구조적 갈등을 해결하려는 의지에서 시작해야 일의 실마리가 풀린다. 우리 사회의 ‘직업 서열’ 상층에 있는 공무원, 의사·교수·변호사 같은 전문직, 공기업 정규직, 순차적으로 그 밑에 있는 대기업 정규직, 대기업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 자영업자 등 노동계급 간 임금격차에 주목해야 한다. 독일처럼 교수·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이 사회적으로 존경받긴 해도 보수 자체를 그렇게 많이 받을 이유는 없다. 같은 의사·변호사·교수라고 해도 보수가 천차만별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높은 직업 안정성에 많은 보수를 누리는 사람들이 명예와 권력까지 독차지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슈가 된 전관예우 문제처럼 불공정한 제도와 관행 때문에 사회적으로 납득되기 힘든 직업·직종 간 격차가 있게 해선 안 된다.

18대 국회 이후 총선 때마다 각 당이 내건 수십만~수백만 개의 일자리 공약은 실현된 적이 없다. 이제부터라도 정부와 각 정치세력은 실현 가능성 없는 거창한 소리는 거두고 이해 갈등을 조율하고 타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치열한 민생 문제를 판타지로 만들다 보니 결국은 싸구려 일자리만 창출할 뿐이다. 그 정책 실패의 희생양인 스크린도어 수리 중 변을 당한 19세 청년의 죽음에서 시사점을 못 얻으면 희망이 없다. ‘헬조선’ ‘망한민국’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등 청년들이 섬뜩한 언어로 대한민국을 저주하는 이유를 마음을 열고 경청한다면 의식개혁이 왜 안 되겠는가.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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