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진한 닭뼈 육수에 해산물 듬뿍… 너의 이름은 '한·일 합작 짬뽕'

입력 2017-12-25 20:46  

푸드 여행

'글쓰는 셰프' 박찬일의 세계음식 이야기 - 짬뽕

한국 짬뽕은 中 산둥성
일본은 푸젠성에 뿌리

짬뽕이란 이름 아래
'한·중·일 삼국지' 흥미로워




지난 11월, 날 좋은 늦가을 볕이 구루메시(久留米市) 중심부를 내리쪼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광장을 가득 매운 임시 천막에서는 지역별 짬뽕이 펄펄 끓고 있었다. 일본의 명물인 짬뽕이 전국적으로 모여서 치르는 행사다. 매년 도시를 바꿔가며 열리는데, 올해는 규슈 북쪽의 이 도시가 선택됐다.


오바마 마을의 명물 짬뽕

광장의 넓은 연단에서 한 특이한 사내가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부터 월드 짬뽕 클래식 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짬뽕? 월드 클래식? 이 사내의 이름은 하야시다 마사아키(49)였다. 그의 별명은 ‘짬뽕맨’. 짬뽕에 살고 짬뽕에 죽는다는 모토의 별난 사내. 그는 사실 번듯한 공무원이다. 국립공원이 있는 나가사키현 운젠시의 관광물산과 과장보좌역을 맡고 있다. 그가 짬뽕맨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NHK에 드라마로 소개되면서부터. 그가 일하는 운젠시 오바마(小浜) 마을의 명물인 짬뽕을 열성적으로 홍보하고 있었고, 그것이 드라마화되기에 이른 것. 오바마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발음이 같아 해외 토픽에도 나왔고, 엄청난 수질의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오바마는 나가사키시 못지않은 짬뽕 마을이다. 시내에 무려 60여 개 식당에서 짬뽕을 먹을 수 있다. 온천과 짬뽕을 즐기러 일본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그는 오바마 짬뽕뿐 아니라 일본 짬뽕이 한데 모이는 행사를 기획해 도시를 돌아가며 열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열렸고 한 그릇에 5백엔짜리 짬뽕을 맛보러 인파가 물밀 듯 밀려들었다. 구루메시는 물론 나가사키현에 속하는 오바마, 아마쿠사 등의 유명 짬뽕과 심지어 멀리 홋카이도 짬뽕도 출전해 맛을 겨뤘다.

웍에 넣고 채소와 고기 빠르게 볶는 음식

흥미롭게 한국 짬뽕도 출전해 많은 관심을 끌었다. 오바마에서 가까운 시마바라관광연맹 직원이었던 한국인 한진 씨(34)를 비롯해 부산의 유명한 일본식 짬뽕집 ‘잔잔’의 셰프가 총동원돼 매운 짬뽕의 본때를 보여줬다. 하야시다 씨는 “한국은 일본 중국과 함께 짬뽕이 있는 중요한 나라다. 세 나라의 짬뽕이 모두 모이는 행사를 기획하고 싶다”며 한국 짬뽕에 강한 애정을 나타났다.

이번 행사에는 특별히 진우계(陣優繼) 씨가 초대돼 관심을 모았다. 짬뽕의 원조인 나가사키 시카이로(四海樓)의 후손으로 사장을 맡고 있다. 시카이로는 한국인 관광객도 필수로 들르는 원조집이다. 이 식당에는 이런 글이 써 있다.


“나가사키 짬뽕은 1899년 중국에서 나가사키로 이주한 푸젠성(중국 남부 소재) 사람 진평순(陳平順)이 처음 만들어 팔았다. 시카이로를 운영하던 그는 가난한 중국인 유학생과 노동자를 위해 값싼 음식을 개발하려고 마음먹고 돼지뼈와 해산물, 채소를 이용해 국수를 말아냈다. 이것이 인기를 끌면서 유명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옛날 중국의 냄비나 솥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딩(鼎), 푸(釜), 쩡(甑) 등이다. 중국인들은 이런 냄비나 솥에 찌고 삶고 볶았다. 웍(WOK)은 바로 이런 냄비에서 시작된 냄비다. 이 웍에 불을 피우고 기름을 두른 후 채소와 고기를 빠르게 볶았다. 중국인들은 생활력이 강했고, 동업정신이 좋았다. 한 사람이 확을 들고 친구는 칼을 쥐고 노점을 시작했다. 확은 볶고 칼은 재료를 썰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중국요리의 주방이다. 짬뽕은 단순한 국수가 아니라 볶고 지지며 면을 뽑는 오랜 중국 요리 기법이 한 그릇에 들어 있는 명품이다.

매운맛과 해산물 가미된 ‘한·일 합작 짬뽕’

1880년 기록에는 나가사키에 594명의 중국인이 이미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개 중국 남부 출신이다. 나중에 인천이 개항되면서 조선에 들어온 중국인과 출신지가 다르다. 인천도 초기에 무역상이 들어올 때는 남부 출신이 많았다. 그러나 노동자 중심의 대량 이민이 생기면서 산둥성이 대세가 됐다. 반면 나가사키는 푸젠, 광둥, 저장 중심의 남부 중국인이 더 많았다. 그래서 이 짬뽕은 남부 푸젠성 쪽 국수를 닮았다고 한다. 이후 나가사키 명물로 크게 성장했고, 한국에도 영향을 끼쳤다. 요즘 웬만한 한국의 일본식 선술집에서는 나가사키 짬뽕을 판다. 빨간색의 한국 짬뽕과 비교해 흰색을 띠고 있어 백짬뽕이라고도 부른다. 한국 짬뽕처럼 맵지도 않다.

나가사키 시카이로 짬뽕은 이후 많은 변종을 만들어 냈다. 닭뼈 육수를 강조하는 형, 해산물을 푸짐하게 섞어 더 시원한 국물을 중시하는 형, 심지어 나가사키시의 ‘짬뽕 미로쿠야’라는 집에서는 아예 한국 고춧가루를 수입해 빨간색의 매운 짬뽕을 개발, 판매하기도 했다. 짬뽕 본고장에서 한국식 짬뽕이 역수입(?)된 셈이다. 필자도 먹어봤는데, 두꺼운 맛을 내는 뼈 국물 중심의 나가사키식에 매운 맛과 해산물 맛이 가미된 일종의 ‘한·일 합작 짬뽕’이라고 부를 만했다.

짬뽕 월드 클래식 행사에 참여해 한국 짬뽕을 먹어본 시민들에게 소감을 물으니 역시 “매운맛이 좋다”고 답했다. ‘한국 짬뽕=매운맛’의 등식이 있다. 그렇지만 한국 짬뽕이 원래부터 매웠던 것은 아니다. 필자가 주변의 노장 화교 주사(廚師: 요리사란 뜻)들을 취재하고, 문헌을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대체로 1960년대 말부터의 유행으로 보인다. 작년에 작고한 인천의 전설적인 화교 요리사 임서약 옹(1931년생·신일반점)은 비슷한 증언을 내게 했다. “1960년대쯤 짬뽕에 마른 고추를 잘라 넣었으며 고춧가루를 넣은 지금 같은 짬뽕은 1970년대식”이라고 말했다.

중국에 뿌리를 둔 짬뽕의 역사

그렇다면 일본 짬뽕과 한국 짬뽕의 뿌리는 같은 것일까. 아마도 다를 가능성이 높다. 진평순이 개발한 나가사키 짬뽕은 탕러우쓰미엔(湯肉絲麵)이라고 하는 푸젠성 국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반면 한국에 온 화교들은 산둥성 출신들이었다. 그들은 중국에서 만들어 먹던 탕면을 ‘시나우동’(중국 면)이라는 이름으로 팔았던 듯하고, 이것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짬뽕으로 굳어졌을 가능성이 짙다. 음식은 다르지만 일본의 식민지라는 현실이 일본의 유명 음식이었던 짬뽕을 갖다 붙이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비록 ‘짬뽕’이라는 이름은 같이 쓰고 있지만, 서로 뿌리가 다른 음식이었을 가능성이 짙어 보인다. 물론 ‘중국식 국수’라는 큰 틀에서는 유사 면요리임은 틀림없고, 사촌격이라고나 할까. 지금은 짬뽕이라는 이름 아래 두 나라가 각기 다른 형식의 면을 발전시키고 있는 셈이다. 물론 중국에도 두 나라 짬뽕의 원조 격인 면 요리가 지금도 성행한다. 짬뽕의 이름 아래 극동아시아에서는 새로운 삼국지가 기록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오바마의 짬뽕은 일본 최대의 대중 미식 행사인 ‘비급(B級 구루메)’ 일본 행사에도 출전해 큰 인기를 모았다. 하야시다 씨의 짬뽕에 대한 에너지가 일본 전역에 퍼지고 있다. 시원하면서도 진한 짬뽕 국물 한 그릇이 당기는 추운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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