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ILO 협약 비준은 운동장 뒤집는 꼴

입력 2019-05-06 17:21  

한국은 勞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노조는 더 이상 사회적 약자 아니다
남들이 ILO 간다고 따라가는건 毒

권태신 < 전국경제인연합회·상근부회장 >



‘국회 담장을 무너뜨리고 경찰과 기자를 폭행’ ‘노무담당 임원을 감금·폭행’ ‘조직원의 고용을 강요하고 수시로 현장 점거’….

언론에 비친 한국 노조의 민낯이다. 범죄행위를 저질러도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벌됐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만약 주어가 노동조합이 아니라 기업인이었다면 벌써 철창신세였을 것이다. 한국 경제는 위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영세상인은 망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노조가 불법행위를 일삼는 것은 나라는 망해도 자기만 살면 된다는 집단이기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보여 안타깝다.

한국 노사관계는 노(勞)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현대자동차의 10년간 파업 횟수를 보면 울산공장은 430회인데 체코공장은 0건이다. 기아자동차는 최근 27년 중 파업이 없던 해가 2년밖에 되지 않는다. 노동쟁의로 인한 연간 조업 손실일수가 86일을 넘는다. 사용자에 대한 고소·고발도 남발한다. 각하·기각률이 83%에 달하지만 아무런 제재가 없다.

반면 기업인의 손발은 묶여 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파업하면 대체근로를 활용할 수 있지만 우리는 못 한다. 다른 나라는 파업을 사업장 밖에서 하는데, 한국은 사업장 안을 쇠사슬로 묶어도 사업자가 대항할 방법이 없다. 어쩌다가 사업자가 부당노동행위라는 덫에 걸리면 다른 나라와 달리 형사처벌까지 받는다. 이러니 기업인들이 노조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노사 간 힘의 불균형이 심하다 보니 노사 관계도 세계에서 가장 낙후돼 있다. 한국의 세계경제포럼(WEF) 노사협력 순위는 140개국 중 124위로 케냐(72위) 스리랑카(74위) 짐바브웨(97위)보다도 한참 떨어진다. 한국에 투자하려는 외국인이 가장 주저하는 이유 1위가 경직적 노사 관계다.

왜 이리 됐을까. 노조가 사회적 약자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주요 구성원은 대기업에서 억대 연봉을 받는다. 근로자 상위 3%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정치적 목소리도 충분히 낼 수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국민연금 등 여러 정부 위원회에 참여함은 물론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만도 23명이라 한다. 민주노총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 힘있는 조직이다.

이제 위상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한다. 대화의 장이 충분히 열려 있는데 길거리 투쟁에 나서는 것은 차려진 밥상을 걷어차면서 배고프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힘있는 조직이라면 대화와 협상에 나서고, 국가 발전을 위해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한다. 투쟁, 노동운동이라는 미명으로 법을 위반해선 안 된다. 범죄행위는 범죄행위일 뿐이다.

기울어진 제도도 바로잡아야 한다. 제도가 균형을 잃으면 노사 갈등만 심해진다. 최근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경사노위 입장문은 노사 간 주장을 균형있게 담지 못했다.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 허용,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허용 등 노동계 주장은 대부분 반영했지만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등 경영계 입장은 반영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기울어져 있는데 ILO 핵심협약까지 도입하면 완전히 뒤집어진 운동장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미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파업하기 좋은 나라인데 해고자와 실업자까지 노조에 가입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에 더해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이 허용되면 기업 부담이 늘어남은 물론 노조의 철옹성만 높아질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많은 나라가 ILO 핵심협약에 가입했으니 우리도 가입해야 한다고. 하지만 속이 안 좋은 사람에게 고기는 오히려 독이 될 뿐이다.

지금 한국 경제엔 빨간불이 들어왔다. 지난 1분기 성장률이 10년 만의 최저인 -0.3%(전 분기 대비)다. 국내 모 대기업 공장은 한국에서 채산성을 맞추지 못하고 해외로 떠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 편향 정책 강화는 한국 경제에 부담만 더할 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30년 동안 강성노조 때문에 경제가 몸살을 앓았던 ‘영국병’을 마거릿 대처 총리가 강력한 노동시장 개혁으로 극복한 바 있다. 영국병보다 더 심한 ‘한국병’을 앓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치료제도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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