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이석행 이사장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 '투사'…청년 일자리 창출 전도사로"

입력 2019-05-17 18:03  

이석행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노사정 대화, 개별 사안 싸움보다
국가미래 놓고 큰 틀에서 얘기를"



[ 백승현/김익환 기자 ] 마주 앉기까지 꼬박 1년 하고도 한 달이 더 걸렸다. 작년 4월 9일 국회에서 열린 ‘청년실업해법
포럼’에서 첫 인사를 하고 이후 수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손사래를 쳤던 그다. 취임 전 혹독한 비판을 받았던 탓에 언론에 반감이 크다는 얘기도 들렸다. 그랬던 그가 지난 3월 한국경제신문사가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연 ‘고졸인재 일자리콘서트’에서 기자와 만나 “막걸리나 한잔하자”며 인터뷰를 승낙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출신인 이석행 한국폴리텍대 이사장(61)이다.

이 이사장이 ‘맛있는 만남’ 장소로 꼽은 식당은 인천 연수구 동춘동에 있는 토속음식점 ‘송도주막’이었다. 교통편이 불편하니 같이 이동하자는 말에 지난 14일 오후 5시께 부평구 한국폴리텍대 본부에서 그를 먼저 만났다. 접견실을 가득 메운 ‘3차원(3D) 프린팅 입체액자’ 등 학생들이 만든 작품과 전국 36개 캠퍼스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폴리텍 현황판’ 설명을 듣고 이 이사장과 함께 차에 올랐다.

“털레기에 막걸리 한잔합시다”

송도주막은 칸막이나 별도의 방이 없는 식당이다. 조용한 한쪽 구석에 자리 잡았다. 이 이사장은 속속 들어오는 음식을 하나씩 소개했다. “이게 주꾸미볶음이에요. 소주 안주로 최고죠. 지금이 제철이기도 하고요. 항아리에 담긴 국이 털레기인데, 시래기에다 이것저것 다 털어 넣고 끓였다고 붙인 이름이래요. 녹두전은 다 자르지 마시고, 남은 거 싸가야 하니까. 일단 막걸리나 한잔합시다.”

“전에 타던 관용차(제네시스)는 어쩌셨나요?” 수저를 들면서 같이 타고온 카니발 얘기부터 꺼냈다. “지하철이나 버스로 출근하는데 고급 승용차가 뭔 필요가 있어요. 지난주에 반납(리스)하고 카니발로 바꿨죠.”

이 이사장의 자택이 있는 간석동에서 사무실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40분이라고 했다. 출퇴근 때마다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다는 그는 대중교통의 숨은 장점에 대해 귀띔했다. “아침에 송내역에서 버스를 타면 승객 대부분이 우리 학생이에요. 요즘 화제가 무엇인지, 학교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교수들 평가는 어떤지 등 공식적으로 듣지 못하는 정보가 쏠쏠합디다.”

이 이사장은 잘 알려진 대로 강성 노동운동의 대명사로 통하는 인물이다. 1984년 대동중공업 노조위원장을 시작으로 노동운동 활황기인 1980~1990년대 투쟁 현장을 누볐다. 2007~2009년에는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냈다. 2008~2009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총파업을 주도하다가 6개월간 징역도 살았다. 노동계에서는 ‘전설’로 통하는 이력이지만 그가 폴리텍대 이사장 자리에 앉는 데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평생 노동판에서 데모만 한 사람이 교육기관 수장으로 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었다. 당시 쏟아진 비판에 서운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막걸리를 한 잔 들이켠 그는 “정말 좋은 약(藥)이 됐다”며 웃었다. “사실 내정설이 돌면서 저 위(청와대를 지칭하는 듯)에서도 정권에 부담된다며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고 할 정도였죠. 그래도 그렇게 물러나는 건 아니다 싶어 면접이라도 보겠다고 했어요. 진짜 죽어라 공부했습니다. 면접위원들이 ‘진짜 이석행 맞느냐’고 물어보더군요. 지금도 ‘나는 아무리 잘해도 본전, 하나라도 잘못하면 아웃(OUT)’이란 마음으로 일합니다.”

“수업료 못 냈다고 때립니까” 반항했던 ‘돈키호테’

보리밥 대접에 각종 산나물을 덜고 고추장을 한 숟갈 퍼서 쓱쓱 비비던 이 이사장이 묻기도 전에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여덟 살 때 아버지(당시 39세)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매일 30㎞가 넘는 길을 걸으면서 생선을 팔고 보리와 쌀을 받아오셨죠. 어린 동생과 나는 할머니 손에 자랐는데, 할머니가 수제비 만드는 법, 비지 뜨는 법 등을 많이 가르쳐 주셨어요. 처음엔 ‘왜 나한테 이런 걸 시키나’ 하는 불만도 있었지만 지나보니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나이 들어서는 그때 해먹은 보리밥 생각이 나서 이 집을 자주 오게 됐죠.”

이 이사장은 친구들과 같은 시기에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했다.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다. 광산에서 일해 번 돈으로 1년 늦게 학교에 들어갔다. 그래도 중학교 3학년(이 이사장은 ‘중4’라고 표현했다) 때 학생회장을 했다. 역시 학비가 없어 전액 장학금과 기숙사를 제공했던 전북기계공고에 들어가서도 학생회장(초대)을 했다.

무용담은 이어졌다. 수업료 안 낸다고 때리던 교장 선생님에게 대들면서 휴학계를 던졌던 일, 호국학도단 연대장 맡는 걸 거부해서 교련 선생님에게 매질당했던 사연 등. 왜 한국폴리텍대 교직원들이 그를 ‘돈키호테’라고 부르는지 어슴푸레 감이 왔다.

이 이사장은 담배를 태우지 않는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아버지가 끼가 많은 분이었어요. 가끔 어머니 심부름으로 아버지를 찾으러 가면 담배연기 자욱한 동네 사랑방에 계시곤 했죠. 그때 다짐하기를, 나는 커서 술 담배 노름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얼굴 표정을 못 숨겨서 화투는 지금도 못 치고요. 사실 돈 잃고 기분 좋은 사람 없잖아요. (웃음) 노조위원장 안 했으면 술도 안 했을 텐데.”

자연스럽게 노동운동 이야기로 이어졌다. “고등학교 졸업 후 1977년 대동중공업에 공원(工員)으로 입사했죠. 당시 자격증만 있으면 배불리 먹고살 수 있다는 선생님 말만 듣고 정밀가공사 자격까지 땄지만 현실은 다르더군요. 같이 입사했던 친구는 사무직이었는데 공원과 사원 차별이 엄청났어요. 월급·상여금 차이는 물론 공원에게는 점심도 주지 않더라고요. 문제의식은 사라지지 않았고 1984년 병역특례가 끝나자마자 노조위원장을 맡았죠.”

이 이사장은 교육과 생업 현장의 괴리가 자신을 노동운동가로 만들었다고 했다. 2017년 한국폴리텍대 이사장 자리에 지원한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 “학교 교육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취업도 잘 안 되는 겁니다. 이미 다른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폴리텍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급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올해 한국폴리텍대 신입생 중 전문대 이상을 마치고 다시 입학한 ‘고학력 유턴’ 비율은 51.5%(1년 과정, 2년 과정은 15%)에 달한다.

“민주노총 위원장 때보다 행복해요”

주고받은 막걸리 탓에 화장실을 번갈아 다녀오기를 몇 차례, ‘비즈니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이 이사장은 인터뷰 내내 “행복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민주노총 위원장 할 때는 내 일만 하는 ‘연주자’였다고 할 수 있어요. 지금은 조직 안팎을 조율해야 하는 ‘지휘자’ 같은 느낌입니다.”

이 이사장의 지휘 아래 한국폴리텍대는 큰 변화를 겪고 있다. 그는 취임 후 1년5개월 동안 전국 36개 캠퍼스를 서너 차례 이상씩 돌았다. 이른바 ‘캠퍼스 대장정’이다. 조직과 현장 파악을 마친 이 이사장은 ‘메스’를 꺼내 들었다. 전국 13개 학과를 통폐합했다.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는 교수들의 반발을 달래려고 밤샘토론도 숱하게 벌였다. 교수 중 일부는 명예교수직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진정시켰다. 30년 가까운 현장 경험이 이들을 설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러닝팩토리’는 이 이사장의 역점 사업이다. 러닝팩토리는 공정 전(全)단계 학습이 가능하도록 만든 융합실습지원센터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 가지 기술만 갖고는 현장에 적응할 수 없을 것이란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인천캠퍼스를 시작으로 올해 12곳에 신설할 예정이다.

식당에 손님이 거의 사라지고 인터뷰가 끝날 무렵 한국폴리텍대 이사장이 아닌, 전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요즘 파행을 겪고 있는 ‘사회적 대화’에 대해 물었다. 잠시 주저하던 그는 담담하게 답했다.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가장 큰 걱정은 대한민국 일자리예요. 노사·노정 간 대화도 개별 사안에 집착하지 말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고 큰 틀에서 터놓고 얘기해야 합니다. 일자리가 있어야 노동운동도 있는 겁니다.”

고용시장 울타리 안에 들어와 있는 근로자(조합원)들의 처우와 복지를 위해 반평생을 살아온 노동운동가였던 이 이사장. 지금은 고용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청년들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한국폴리텍대학은…

한국폴리텍대는 전문 기술인을 양성하는 고용노동부 산하 교육기관이다. 1968년 6월 인천에 설립된 기술인 양성기관 국립중앙직업훈련원으로 출발했다. 2~3년제 기능대학으로 전국 36개 캠퍼스를 두고 있다. 폴리텍대는 설립 이후 최근까지 250만 명가량의 산업인력을 배출했다. 지난해 졸업생 취업률이 81.6%에 달하는 등 최근 6년 동안 평균 취업률이 80%를 웃돈다. 2017년 이석행 이사장 취임 이후 교육 내용이 중복되는 13개 학과를 이전·통폐합했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해 미래차 스마트팜 스마트시티 드론 등 신산업·신기술 학과 비중을 2018년 7%에서 2022년 20%까지 높일 계획이다.

■약력

△1958년 충남 청양 출생
△1978년 전북기계공고 졸업
△1984~1990년 대동중공업 노조위원장
△1996~2003년 금속노조 부위원장
△2007~2009년 민주노총 위원장
△2010~2014년 우경일렉텍 기술고문
△2011~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
△2014년 인천대 체육학과 졸업
△2014~2017년 재단법인 피플 상임고문
△2016~2017년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 위원장
△2017년~한국폴리텍대 이사장


이석행 이사장의 단골집 송도주막

경기도식 옛날 보리밥…지역 정치인 많이 찾아

인천 연수구 동춘동에 있는 ‘송도주막’은 보리밥을 간판 메뉴로 하는 토속음식점이다. 옛날보리밥(9000원)과 시래기털레기(1만7000원) 코다리구이(1만4000원) 주꾸미볶음(1만2000원) 녹두전(1만2000원) 등이 인기가 많다. 시래기털레기는 된장과 시래기, 건새우, 수제비 등 갖은 재료를 ‘털어 넣어’ 끓인 찌개로 경기도 향토 음식이다. 대부분 메뉴가 1만원 안팎으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옛날보리밥을 기본으로 주문하고 시래기털레기, 주꾸미볶음, 코다리구이 등을 추가하는 손님이 많다. 강원 홍천에서 받아오는 옥수수 동동주(6000원)도 식당 대표 메뉴들과 궁합이 잘 맞는다.

2013년 문을 연 이 집은 전북 김제에서 보리를 조달하는 등 대부분 국산 식재료를 쓴다. 경기·인천 지역 정치인들이 종종 찾는 식당으로 유명하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인천연수을)과 김문수 전 경기지사, 유정복 전 인천시장 등이 단골 손님이다.

백승현/김익환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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