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發 돈맥 경화 현상··‘朴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증시로 풀리나?

입력 2016-12-12 08:41  



요즘 우리 국민 사이에는 ‘경기가 1997년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어렵다’, ‘경제정책은 뭐하나 되는 게 없다’ 등의 불만이 많이 들린다. 잠시 풀린 조짐을 보였던 우리 경제의 혈액인 돈도 최순실 게이트에서 비롯된 국정 난맥상으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음에 따라 꽁꽁 얼어붙고 있다.

특정 국가에서 돈이 얼마나 잘 도는가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경제활력지표로 통화유통속도와 통화승수를 꼽는다. 통화유통속도란 일정기간 동안 한 단위의 통화가 거래를 위해 사용된 횟수를 말한다. 통화유통속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돈이 제대로 유통되지 않아 그 나라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정기간에 돈 흐름이 얼마나 정체돼 있는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지표가 통화승수다. 통화승수는 돈의 총량을 의미하는 통화량을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본원 통화로 나눈 수치다. 통화 승수는 그 나라 국민들의 현금보유 성향과 예금 은행에 대한 지급준비율 등에 의해 결정된다.

통화유통속도는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통화유통속도는 0.69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0.6대로 재추락했다. 국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경제활력지표인 예금회전율과 요구불예금회전율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미국 등 각국이 통화유통속도가 살아나면서 증시와 부동산 시장이 달아오르는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통화승수는 한국은행이 이 지표를 처음 발표했던 2001년 1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3분기 통화승수는 17배로, 2년 전 경제활력 판단기준인 20배 밑으로 떨어진 이후 지속적으로 추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과 국민의 현금보유 성향이 늘어나 시중에서 돈이 퇴장되고 있다는 의미다.

돈이 안돌 때 가장 우려되는 것은 ‘좀비 현상’이다. 정치권과 정책당국, 그리고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정책당국에서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어떤 신호를 준다하더라도 정책 수용층인 기업과 국민은 좀처럼 반응하지 않고 있다. ‘정책 무력화(policy ineffectiveness)’ 명제에 걸려있는 것이 한국 경제의 현실이다.

경기부양 대책으로 한국은행이 주력해온 통화정책의 ‘무용론’이 제기된 지는 오래됐다. 경제주체가 미래를 불확실하게 여김에 따라 금리인하와 총수요 간 민감도가 떨어지면서 유동성 함정에 빠져 통화정책 전달경로(통화공급→금리인하→총수요 증가→경기회복)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이제는 금리를 추가적으로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는 국면에 몰리고 있는 점이다. 테일러 준칙 등을 통해 우리의 금리수준을 평가해 보면 기준금리 1.25%는 적정금리 1.8%(존 테일러 교수 추정)에 비해 낮게 나온다. 더욱이 작년 12월 미국의 중앙은행(Fed)는 추가적으로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극단적으로 ‘부채 디플레 신드롬’을 이용하기 위해 적정수준보다 훨씬 낮게 기준금리를 떨어드려 경기부양을 모색하는 방안(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의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 여건에서는 가계부채 증가. 금융사 수익악화 등과 같은 경제주체의 현금흐름 상 문제로 더 큰 부작용이 우려된다.

한국은행 총재의 입지가 약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주열 한은 총재는 종전처럼 소신 있는 행동은 눈에 띠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작은 정부론’에서 ‘큰 정부론’이 국민으로부터 힘을 얻으면서 경제정책의 주안점이 통화정책에서 재정정책으로 넘어가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트럼프 정부가 공식 출범하면 이 추세는 더 뚜렷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통화정책이 무력화됨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이 주도가 돼 경기부양수단으로 재정정책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크게 두 가지 방안이다. 하나는 재정상에 여유가 있는 국가는 재정지출을 늘리는 안과, 다른 하나는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에 시달리는 국가는 세금을 감면해 주는 안이다.

우리의 경우 두 가지 방안 모두 종전에 비해 경기부양효과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재정지출을 늘리는 안은 그만큼 민간 부문에서 지출이 위축되는 ‘구축 효과(crowding out effect)’ 때문에 부양효과가 반감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1980년대까지 3배에 달했던 재정지출의 승수효과는 1.5배 내외로 떨어졌다.

세금을 감면하는 안도 쉽지 않다. 요즘처럼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에 있어서는 세금감면으로 늘어난 가처분소득이 소비 대신 저축됨에 따라 경기를 더 위축시키는 ‘구인 효과(crowding in effect)’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효과는 ‘세율이 높으냐(래퍼 곡선 상 세율과 세수 간 ‘부(負)의 관계`에 있는 비표준 지역)와는 별개의 문제다.

연초부터 각종 위기설이 고개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위기설의 실체를 면밀히 뜯어보면 1997년 외환위기 당시와 달리 ‘유동성의 위기’가 아니라 경제 콘트롤 타워 부재, 경제입법 지연과 정책운용 미숙으로 비롯된 ‘경제시스템의 위기’에 연유된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경제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경제현실에 대한 진단부터 선행돼야 한다.

정확한 현실 진단을 토대로 경제 시스템을 안정시킬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시급한 것은 최순실 게이트에서 비롯된 국정의 난맥상부터 정리해야 한다. 이때 경계해야 할 것은 국정 실정을 덮기 위해, 아니면 탄핵 이후 본격화될 대통령 선거를 겨냥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은 대중영합적인 땜질식 단기 처방이다.
기업에게도 우리 경제 내에서 안정된 경영활동을 보장해 해외 진출한 기업이 국적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뼈저리게 느껴듯이 특정기업에게 이권이 보장되는 사업을 허가해 주면서 뒷거래가 오가는 식의 뒷맛이 개운치 않는 정책이 계속될 경우 위기감만 더 키울 가능성이 높다.

국민에게도 경제현실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안정된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주는 것이 시급하다. 법규이든 사회규범이든 간에 정책당국이 마련하는 대로 쫓아가더라도 고위층에서 뇌물이다 떡값이다 해 부정부패가 발생할 경우 국민은 상대적인 박탈감과 허탈감에 휩싸여 위기감을 낳게 하는 원인이 된다.

지금은 경제가 어렵다. 이럴 때 일수록 기본과 원칙을 지키면서 정치권과 정책당국은 진심으로 정책 수용층의 협조를 구해 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최순실 청문회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뜻대로 안되면 ‘과거 정부와 언론, 남의 탓’ 하면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한국 경제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정책 여건은 ‘3고(불확실성 만연·공급 과잉·과다 부채)’과 ‘3저(저성장·저물가·저금리)’로 대변된다. 이런 여건에서는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추진해 정책무력화 명제에서 자유로운 정도, 즉 ‘완충 능력(buffer capacity)’에 따라 각국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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