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윗길을 가다(3) 설악산 장군봉 꼬르데길 / 장군의 정기 받고 신선이 되다

입력 2014-09-25 15:41  


설악산을 가잔다.

설악산하면 기자는 20대 청년시절 폭설이 내린 한 겨울 조난의 위험을 무릅쓰고 산행을 했던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폭설주의보가 내린 오색의 이른 아침, 아직 공원입구 관리자가 없는 틈을 타서 재빠르게 등산로에 접어들었다. 얼어붙은 우유와 빵 하나로 허기를 때우곤 대청을 넘어 당시 대청산장에서 언 몸을 녹이고 있었다. 봉정암에서 올라온 스님이 "그 행색으로 설악동까지 어떻게 가려 하느냐"며 "그만 오늘은 산장에서 자고 내일 다시 왔던 길로 내려가"란다.

그러나 당시 우리는 혈기왕성한 20대였다. 아이젠도 없었고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도 몰랐다. 스님의 충고를 무시하고 오후 1시가 넘어서 자신만만하게 대청산장을 출발했지만 중청을 지나 한참을 내려가니 눈에 익었던 설악동 가는 길이 보이지를 않는다. 그때 처음 러쎌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어렵고 힘들게 없는 길을 내가며 하산을 재촉하는데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길은 보이지 않는데…

설악은 누구에게나 추억을 안겨준다. 특히 젊은 날에는 더욱 그렇다. 또 젊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설악산에는 수 많은 바위길 들이 있다. 중급 이상의 클라이머들이 즐겨 찾는 적벽만 하더라도 교대길, 크로니길, 독주길, 에코길 등이 있고 리지코스로는 유선대 리지, 천화대 리지, 삼형제 리지, 별따는 소년 리지, 한편의 시를 위한 길 리지, 울산바위의 비너스 리지 등 실로 암벽등반의 천국이라 할 만큼 수많은 바위길이 있다.

적벽, 무명봉과 함께 삼형제를 이루는 장군봉도 이름에서 풍기듯이 적벽 못지않게 당당하고 우람한 봉우리다.

장군봉에도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마등령 방면에서 금강굴 쪽으로 A20, 알파인코오롱, 꼬르데, 석이농장, 알파인클러치, 금강 등이 바로 그 길들이다.

이 여섯 개의 길 중에서 가장 어렵다고 손꼽는 길이 바로 꼬르데길이다. 꼬르데길은 모두 일곱 마디의 바위길이다. 첫째 마디가 약 20미터 5.4의 ‘걸어가는 구간’이고 둘때 마디가 30미터길이에 5.11a의 난이도가 있는 구간이다. 초반에 만만치 않은 길을 만나기 때문에 둘째 마디 등반후 겁을 먹고 하강을 하는 경우가 왕왕 일어나기도 한다.

셋째 마디 역시 28미터 길이에 5.11a의 난이도를 갖고 있다. 넷째 마디는 35미터 5.10b의 구간이다. 다섯째 마디는 15미터의 5.10구간, 여섯째 마디는 15미터의 5.10구간, 일곱째 마디는 22미터의 5.10b의 난이도가 나오는 구간이다. 일곱번째 마디가 끝나면 오른쪽으로 약 20미터 정도를 걸어서 이동하여 금강굴 방면으로 하강하게 된다.

꼬르데길을 등반하기 위해서는 비선대 산장에서 자는 것이 접근하기에 좋지만 이른 아침 설악동에서 출발해도 천천히 1시간에서 1시간 반이면 출발지점까지 어프로치가 가능하다.

설악동을 출발, 비선대 산장에서 잠시 땀을 식히며 삼형제 바위인 적벽, 장군봉, 무명봉을 바라다 본다. 적벽은 삼형제의 맨 오른쪽에서 이름 그대로 붉고 거대한 바위가 오버행을 이루며 겁이 나도록 위용 있게 서있고 장군봉은 맨 왼쪽에서 장군다운 모습으로 굳건히 서서 버티고 있다. 무명봉은 왼쪽의 장군봉과 오른쪽의 적벽이 호위하는 듯한 모습으로 가운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삼형제봉을 가만히 보니 제일 형은 아무래도 가운데에 있는 무명봉 같다. 키도 작고 덩치도 작지만 형인 것을 어찌하랴. 적벽도 장군봉도 무명봉을 옹위하듯 서있다.

비선대 산장을 지나 등반 기점인 금강굴 방면으로 길을 재촉한다. 주말 설악산 바위길은 일찌감치 등반객들로 붐비기 때문이다. 등반성이 없는 첫째 마디를 지나치고 둘째 마디에서 등반을 준비한다. 아침 8시경인데 다행히 꼬르데길에 등반중인 팀은 아직 없다.


둘째 마디는 30미터 길이에 5.11a의 난이도를 갖고 있는 곳이다. 물론 꼬르데길은 어느 마디 하나 쉽게 보지는 못할 정도로 난이도가 있는 곳이다. 우리 팀의 선등자인 손제성 대장. 안전등반을 기원하는 성호를 긋고 힘차게 출발한다. 그런데 출발하고 얼마 안되어서 ‘끙끙’소리를 낸다. 일행 중 한 명이 “대장님 소리 좀 그만 내세요” 우스개 삼아 외쳐 보지만 선등자의 마음은 아마도 “너도 올라와보면 왜 그랬는지 알게 될 걸?”하고 답하는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둘째 마디에서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올라야 마지막 마디까지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둘째 마디에서 세컨으로 오르는 명민기 총무가 자일을 한 동 더 달고 올라간다.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 두 그룹으로 나누어 2명이 순차적으로 같이 오르기 위한 방법이다.

왼쪽으로 두꺼운 박쥐날개가 뻗어 있다. 좌향크랙인 셈이다. 첫 볼트를 지나 언더 홀드로 바위를 잡고 올라붙으면 의외로 쉽게 통과할 수가 있다. 등반도중에 왼쪽을 바라다보니 유선대리지에 등반객들이 등반하는 모습이 아스라하게 보인다.

둘째 마디를 마치고 잠시 숨을 골라 셋째 마디를 오른다. 셋째 마디의 난이도 역시 둘째 마디와 같다. 둘째와 셋째 마디가 꼬르데길의 크럭스인 셈이다. 셋째 마디 역시 좌향크랙. 언더 홀드를 출발하여 크랙길을 따라 손에 잡히는 홀드를 찾다보면 의외로 쉽게 통과할 수 있다. 그러다가 바로 앞 등반자가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있다. 아마도 많이 긴장한 모양이다. 뒤따라 올라가 슬링줄 하나를 걸어주니 곧바로 등반이 이어진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암벽경력 1년 내외인 6명의 후등자 모두 5.11급의 난이도 있는 길을 큰 도움 없이 잘 오르고 있다.


셋째 마디를 마치니 일행이 넉넉히 앉아 쉴만한 공간이 나온다. 이곳에서 간식을 먹기로 한다. 고도감이 높아지면서 천불동 계곡이 한 눈에 다 잡힌다. 워킹산행을 할 때와는 또 다른 경치요 전망이다. 유선대 리지 좌측에 있는 형제봉 리지도 보인다. 형제봉 리지는 기자가 처음 암벽등반을 한 곳이다. 태어나서 처음 바위에 붙어본 실력인 채 코오롱등산학교에서 삼형제 리지를 개척한 김성기 강사의 리딩으로 어렵게 리지를 완등 했던 기억이 새롭다. 

넷째 마디는 35미터 5.10b의 페이스 등반이다. 왼쪽으로 비스듬히 누운 구간을 천천히 올라간다. 오른쪽에는 석이농장길을 오르는 등반객들이 보인다. 다소 아득하게 보여도 한발 한발 조심스레 내딛다보니 넷째 마디도 금방 끝이 난다.

다섯째 마디는 이른바 ‘해산굴’이다. 15미터의 5.10구간을 올라서니 빌레이를 보기에 좋은 장소가 나타난다. 이어 여섯째 마디는 턱걸이를 하듯 매달려서 ‘피아노를 치며’(손을 번갈아 이동하며) 오른쪽으로 이동한 후 위로 올라가는 구간이다. 약간의 완력만 있다면 쉽게 패스할 수 있는  코스이지만 필요 없는 힘들을 써서 그런지 일부 팀원은 여기서 약간의 펌핑을 경험한다.

여섯째 마디에서 일곱째 마디 오르기 전. 오른쪽 석이농장을 등반하던 2인 1조의 등반팀이 우리 쪽으로 넘어온다. 석이농장 마지막 구간을 선등하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오랜만의 선등으로 힘이 많이 빠졌다고 한다. 더구나 그 팀은 자일이라곤 60자 한 동만 갖고 있었다. 위험하고 무모한 일이다. 만일 우리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하강을 하려고 했을까?

수인사를 하고보니 서로 모르는 척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어서 부득이 그들을 구조하는 셈치고 마지막 일곱째 마디를 함께 등반하고 하강도 같이 하기로 했다.

마지막 일곱째 마디. 22미터의 5.10b 난이도의 구간인데 의외로 만만치 않은 곳이다. 스테밍 자세를 취해야 오르기 쉬운 구간이고 마지막 약간의 오버성 바위는 발의 지지력과 손의 완력이 동시에 요구되는 구간이다. 이른바 항아리 크랙. 웬일인지 이곳을 쉽게 넘어서지 못하고 부끄럽게 약간의 텐션을 받고서야 넘어올 수 있었다. 시간만 더 있었다면 도움 없이 충분히 오를 수 있는 바위였는데 참 아쉬운 노릇이다.

후등자로 등반을 하다보면 별 생각 없이 퀵드로를 잡거나 이른바 반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는 등반이 모두 끝난 시점에서는 후회를 한다. 아무래도 주말 클라이머의 한계다. 요령부족도 부족이지만 연습을 더 많이 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7명의 인원이 정상에 오르기까지 모두 8시간 30분이나 소요되었다.
  
마지막 일곱째 마디를 마치니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왼쪽으로 울산바위와 속초 앞바다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천불동 계곡이 긴 꼬리를 이으며 내달리고 있다. 시원하고도 장쾌한 장면이다. 사위를 돌아보니 과연 장군의 기상을 세울 만 했다. 아니 그보다는 신선이 된 듯도 싶다. 이만한 경치를 바라보며 인생을 관조할 수 있다면 신선이 아니고 또 무엇이랴?

힘들게 장군봉을 올라 가슴 벅찬 절경을 마주하다보니 마음은 신선이 된 듯도 싶다. 정상의 기쁨을 만끽하고 하강을 준비한다. 등반 내내  6월의 뜨거운 뙤약볕이 무색할 만큼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몰랐는데 마음의 여유를 찾아서일까 벌써부터 비선대 산장의 차가운 맥주가 그리워지고 있었다.

한경닷컴 bnt뉴스 김성률 기자 kimgmp@bn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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