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윗길을 가다(10) 인수봉 빌라길 / 명품길로 인정받는 인수의 지존

입력 2014-09-25 15:54  


[김성률 기자] 대한민국 클라이머들의 요람 인수봉. 인수봉은 주말 아침이면 벌써부터 클라이머들이 새까맣게 매달려 바윗길을 뜨겁게 달구는 암벽등반의 메카다.

인수봉의 높이는 804미터이지만 화강암 덩어리만 치면 아래쪽 둘레가 약 400∼500미터, 높이가 약 200미터에 이른다. 높이만으로 치면 여의도 63빌딩(264m)보다 조금 낮다.

인수봉은 과연 누가 처음 올랐을까? 손경석의 한국등반사(도서출판 이마운틴)를 보면 1925년 한국계 일본인 임무(林茂)와 당시 일본과 조선에서 근무했던 영국 외교관 아처라고 한다. 이들은 1925년 10월 자일파트너로 인수봉 암벽을 올랐다. 그리고 그 증표로 명함과 기록내용을 빈 병 속에 넣어 인수봉 정상 바위 안에 넣어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손재식의 한국바위열전에 보면 아처가 동료인 페이시, 야마나케와 함께 1929년 9월에 인수봉을 오른 것으로 나와 있다. 

기록에 의한 한국인 최초의 인수봉 등반은 1935년도에 백령회의 김정태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마라톤 영웅 손기정도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제패 후 당시 양정산악회원들과 함께 인수봉 암벽을 오르내렸다고 하니 손기정도 클라이머였던 셈이다. 손기정은 이런 인연으로 인수봉 부근 ‘백운산장’의 현판 글씨도 썼다고 한다.

인수봉에는 모두 80여개의 바윗길이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등반이 자주 이루어지는 곳은 50여개로 잡는다. 


그렇다면 인수봉의 이 많은 바윗길 중에서 가장 난이도 높은 코스는 어디일까? 그곳은 인수봉을 여러 번 등반해 본 클라이머라면 반드시 한번은 들어보았을 바윗길, 바로 ‘빌라길’이다. 빌라길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둘째마디는 5.12b에 이른다. 이렇게 센 난이도에도 불구하고 빌라길은 인수봉을 찾는 클라이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바위길 중의 하나이며 거의 모든 클라이머들이 한번은 꼭 가고 싶어 하는 꿈의 바위길에 속한다.

빌라길은 후등이라 할지라도 5.10급을 선등할 수 있어야 무난하게 등반을 마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빌라길을 등반했느냐 하지 못했느냐는 어느 정도의 등반실력을 갖고 있느냐를 묻는 간접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초급실력에 불과한 기자가 빌라길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과연 빌라길은 어떻게 생겼을까?"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뜨거운 여름날들이 모두 물러가고 부쩍 선선해진 9월의 어느 날이었다.

도선사 입구에서 등반배낭을 둘러매고 하루재까지 쉼 없이 걸어가 본다. 시계를 보니 15분이 걸렸다. 땀을 닦을 사이도 없이 비둘기샘을 거쳐 인수 남서면으로 올라간다. 10분도 못가서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순간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이런 체력으로 어떻게 해발 7000~8000미터가 넘는 고산등반을 할 수 있을까 쓸데없는 걱정이 앞선다.


인수봉 남면과 남서면은 인수봉에서도 난이도가 높은 바위길들이 포진하고 있다. 남면은 아래쪽으로부터 여정길(5.10c), 청맥길(5.11c), 동양길(5.10.b), 학교B길(5.11d), 하늘길(5.10d), 학교A길(5.12a), 거룡길(5.11b)이고 남서면에는 거룡길에 이어 위쪽 방향으로 빌라길(5.12a), 검악A(5.11d), 청죽(5.12a),에코(5.11d), 알핀로제스(5.11c)의 순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거룡길을 지나가다가 첫째 마디(자유등반 5.12b)를 힘들게 등반하고 있는 클라이머를 만났다. 이 클라이머는 세 번의 추락 끝에 첫째 마디 등반에 성공했다. 추락의 순간만큼은 고통스러웠겠지만 등반후에 남는 성취감은 그가 받은 고통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으리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빌라길을 오르기 전 바로 옆의 써미트 슬랩(5.10a)에서 몸을 풀어본다. 이날 함께 자일을 묶을 분들은 이 코스를 거침없이 선등한다. 선등을 사양하고 탑 로핑 방식으로 올라본다. 5.10a 등급인데도 막판 슬랩의 난이도가 꽤나 짭짤하다.

오후 2시경 드디어 하람산악회의 송기승 대장이 첫째 마디 선등에 나선다. 빌라길의 전체 거리는 약 165미터, 여섯 마디로 구성되어 있고 검악A와 거룡길 사이에 출발지점이 있다. 소요시간은 통상 2시간 30분이라고 하지만 클라이머의 숙련도와 등반팀의 인원 등에 따라 소요시간의 차가 크기 때문에 참고사항일 뿐이다. 

첫 마디는 길이 40미터, 난이도 5.8의 수월한 크랙구간. 그러나 즐거운 기분은 딱 요기까지 만이다. 둘째 마디는 거리가 28미터 정도이지만 빌라길을 대표하면서도 무척 까다로운 구간이다.

경사도는 약 80도. 벽에 붙으면 마치 오버행에 붙은 것처럼 숨이 탁 막혀온다. 때문에 등반자세를 취하기가 쉽지 않다. 미세한 홀드들을 잘 잡고 일어서야 한다. 마디 끝부분 볼트에서 오른 쪽 확보지점으로 이동해 가는 것도 결코 만만치 않다. 다리를 잘 벌려 지지하고 밴드를 손가락 힘으로 잡은 후에 이동해야 한다.


셋째 마디는 거리 17미터에 난이도 5.10b의 구간이다. 둘째 마디에 비하자면 셋째마디는 보너스라 할만하다. 처음에는 경사가 세서 다소 겁을 먹게 되지만 홀드가 좋아서 큰 무리 없이 등반할 수 있다. 셋째 마디도 5.10b의 난이도라면 쉬운 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둘째 마디의 난이도가 높아 상대적으로 쉽다는 느낌이 드는지도 모른다. 

넷째 마디는 거리 20미터에 5.11c의 상당히 ‘짭짤한’ 슬랩 구간이다. 약 10미터 정도를 등반하여 오른 후 밴드를 따라 오른쪽으로 5미터 정도 이동하면 구원투수처럼 버티고 있는 검은 흑점을 만나게 된다. 흑점까지 진출해서 한쪽 발을 흑점에 딛고 일어서야 한다. 넷째 마디가 끝나는 지점에서 동양길과 이어지고 넷째 마디를 출발해서 첫 볼트가 나오는 지점에서 에코길과 이어진다.

다섯째 마디는 5.9의 비교적 수월한 구간이다. 이 구간에는 두 개의 크랙길이 있다. 인수 정상으로 가는 여섯째 마디는 좌향 크랙을 레이백으로 오르다가 바위 턱을 넘고 10미터 정도를 오르면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인수봉의 정상이다.

빌라길은 마운틴빌라의 회원들이 1971년에서 1974년 사이에 개척한 길이다. 마운틴빌라의 회원들은 1971년 선인봉을 등반하다가 미군 공군 파일럿 구조대의 브루스 상사라는 현역 군인을 도와 무사히 하강하게 해주고 형제와도 같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브루스 상사는 이들에게 자일, 피톤, 볼트, 점핑세트 등 당시로는 쉽게 볼 수 조차 없던 최신 장비를 구입해주었고 이 장비들을 이용해서 빌라길을 개척했다고 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바윗길 개척중 신장이 190센티미터가 넘는 회원이 볼트를 몇 개 박아 키가 작은 사람들에게 다소 불리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빌라길이 인수의 명품 코스로 인정받는 것은 가장 어려운 길이라는 대표성 뿐 아니라 페이스, 크랙, 슬랩 등반이 골고루 포함되어 있어 종합적인 등반실력을 가늠할 수 있고 다양한 난이도로 구성되었다는 점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오름짓이 힘들어서였을까? 인수봉의 모든 바윗길이 다 그렇지만 빌라길 등반을 마친 후에 바라보는 인수봉 주변의 풍광은 더욱 신선하다. ‘인수의 지존’ 빌라길, 이 길은 분명 클라이머의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꿈의 바윗길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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