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팀] '한국 현대사의 증인'으로 불리며 많은 이의 존경을 받았던 리영희 선생이 향년 81세로 타계했다.
그동안 지병인 간경화로 투병중이었던 리영희 선생은 병세가 악화되며 12월5일 새벽 0시30분 중랑구 면목동 녹색병원에서 끝내 사망했다.
1929년 평안북도 운산군에서 태어난 리영희 전 교수는 1957년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64년부터 71년까지 조선일보와 합동통신 외신부장으로 일했으나 베트남 전쟁 파병 비판기사와 군부독재 반대 지식인 선언에 참여했다 각각 해직됐다.
이후 한양대 교수로 일하다 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당시 이사 및 논설고문을 맡았다. 방북 취재를 기획했던 89년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ㆍ기소돼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160일간 복역했다.
수차례 이어지는 해직과 복직, 투옥의 고초를 겪으면서도 집필활동을 접지 않았던 리영희선생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삶과 사회정의, 민주주의, 분단과 민족을 삶의 문제로 고민하는 남다른 열정으로 지식인들의 추앙을 받았으며 70~80년대 젊은이들의 의식을 일깨워 ‘사상의 은사’로 불리기도 했다.
한편 故리영희 선생의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한경닷컴 bnt뉴스 기사제보 life@bn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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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故리영희 선생의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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