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윗길을 가다(24) 인수봉 청죽길 / 클라이머의 한계를 묻는다

입력 2014-09-25 16:10  


[김성률 기자] 사람이 오를 수 있는 암벽의 한계는 어디일까? 기록은 깨지기 위해 있다지만 역시 인간은 끝없이 한계에 도전하며 새로운 등급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금까지 인간이 등반한 가장 높은 난이도의 암벽은 5.15b다.

암벽등반의 난이도를 알기 위해서는 요세미티 등급체계를 이해하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에는 독자적인 암벽 난이도 등급체계가 없기 때문에 주로 미국에서 개발된 요세미티 등급체계를 사용한다. 독자적인 암벽체계를 갖고 있는 나라는 미국을 비롯하여 프랑스, 영국, 핀란드, 호주 등을 들 수 있다.

요세미테 십진법 체계는 1937년 기존의 등급체계가 수정되어 시에라 클럽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1950년대에는 이것이 다시 요세미티 십진법 체계(요세미티 진수 시스템 : YDS)가 되었다. 요세미티 십진법 체계는 모두 5급으로 나뉘어 있다.
 
1급은 바위 비탈에서 손과 발을 사용하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하이킹 루트를 말한다. 2급은 약간 기어오르며 때로 손을 사용하는 루트이다. 로프를 사용하지 않는다. 3급은 단순한 클라이밍이나 손을 빈번하게 사용하여 기어오르는 루트로 때로 로프를 사용한다. 워킹산행중에 암릉에서 고정설치된 로프를 잡고 오르는 구간이 바로 이 3급에 해당하겠다. 4급은 대부분 로프를 사용하는 루트이며 추락하면 위험 또는 치명적인 루트이다. 모든 등반자가 확보를 받아야 한다. 5급은 로프를 사용하여 등반하는 코스를 말한다. 대부분의 바윗길이 바로 이 5급이다. 5급에서 선등자는 심각한 추락에 대비하여 자연확보물을 사용하거나 인공확보물을 설치해야 한다.

5급은 5.1에서 5.9까지의 난이도가 있다. 5.1~5.2는 손발을 사용한다면 누구나 올라갈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5.3~5.4는 암벽등반을 배우지 않고도 올라갈 수 있다. 5.5~5.7은 등반기술을 필요로 하며 확보물과 장비를 사용하여야 한다. 초보자가 올라갈 수 있다. 5.8~5.9는 인수봉이나 선인봉에서 어려운 정도의 바윗길이라 할 수 있다.


5.10의 난이도는 다시 5.10a, 5.10b, 5.10c, 5.10d로 나뉘는데 5.10d로 올라가면 매우 어렵다고 느껴진다. 특별한 운동을 하지 않고는 오르기 힘들며 고급의 기술이 필요하다. 5.11급도 역시 5.11a, 5.11b, 5.11c, 5.11d로 나뉘는데 매우 어렵고 특별한 운동으로 트레이닝을 해야만 오를 수가 있다. 소질이 있는 등반자는 5.11급까지 오를 수 있다고 한다.

5.12급도 역시 5.12a, 5.12b, 5.12c, 5.12d로 나뉜다. 5.12급이란 극도로 오르기 힘든 상태이며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상태이다. 5.13급 또한 5.13a,5.13b, 5.13c, 5.13d로 나뉜다. 5.13급은 극도로 어려우며 과학적인 운동을 해야만 오를 수 있다. 직업 등반가가 오를 수 있는 난이도이다. 5.14급도 있다. 5.14급 역시 5.14a, 5.14b, 5.14c, 5.14d로 나뉜다. 5.14급은 인간의 힘으로 올라갈 수 없는 상태로 보인다. 이 단계에 오르려면 매일 직업적인 운동을 해야 하며 체중조절은 물론 과학적인 트레이닝을 거쳐야만 오를 수 있다.

그렇다면 5.14급이 인간이 오를 수 있는 암벽의 한계일까? 그렇지 않다. 5.15급의 개념이 나온 것이다. 체코의 세계적인 암벽등반가 아담 온드라는 5.15a급의 ‘오픈에어’와 5.15a/b급인 ‘슈퍼스타’를 완등한 것이다. 아담 온드라와 쌍벽을 이루는 암벽등반가인 크리스 샤마 또한 5.15a급의 ‘리얼라이제이션’과 점보 러브(5.15b), 라 람블라(5.15a)를 완등했다.

클라이밍은 여러 가지 분야로 나뉘어져 있다. 스포츠클라이밍과 하드 프리 등반 그리고 멀티 피치 등반이 그것이다. 스포츠 클라이밍은 다시 볼더링과 리드 클라이밍으로 나뉜다. 이중에 어느 한 가지를 잘하면 다른 분야도 잘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자신의 주된 분야만큼 잘하기는 어렵다. 사용하는 근육이라든지 등반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느 등반방식이 어렵다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하드 프리는 강한 근력과 기술이 필요하고 스포츠 클라이밍 역시 힘과 순발력이 있어야 한다. 멀티 피치 등반은 고도감과 더불어 슬랩, 페이스 등의 다양한 등반 방식을 습득해야 하며 부상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역시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클라이머는 끊임없이 노력하며 과학기술의 발달은 암벽화의 기능을 극대화시켜 결국 인간은 5.16급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도전하는 인간 앞에 불가능이란 없기 때문이다.

인수봉의 청죽길 등반에 앞서 암벽등반의 난이도를 설명하며 에둘러 여기까지 온 이유는 무엇일까? 청죽길이 그만큼 만만치 않은 길임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인수봉의 멀티 피치 등반 코스 중 최고난이도가 5.12급 이상으로는 거룡길(첫째마디에서 슬링줄을 잡지 않았을 때 5.12b), 학교길A(5.12a), 빌라길(5.12a), 청죽길(5.12a) 등이 있다. 선인봉에서는 선암길(5.12a), 재원길(5.12a), 경송B(5.12a)길이 5.12급의 반열에 들어 있다.

청죽길은 인수봉 남서면에 위치하고 있다. 인수봉 남면의 빌라길 위편이 검악A길이고 다시 그 위가 단 피치로 인수와 선인을 통털어 가장 어려운 바윗길인 블루마운틴(5.12c), 그리고 그 위가 청죽길이다. 청죽길 위편으로는 다시 에코, 알핀로제스, 가로길이 이어진다.

하루재에서 인수봉 대슬랩까지 쉼 없이 걸어와 아미동길 입구를 지나 짬뽕길과 여정길, 동양길, 하늘길을 지나간다. 빌라길 앞에서 땀을 좀 식힌 후 써미트 슬랩에서 몸을 풀어본다. 5.10a의 난이도인데도 막상 등반을 해보면 그보다 한 등급은 더 어렵게 느껴진다.

드디어 청죽길, 오랜만에 다시 송기승 대장과 함께 등반하게 되었다. 송대장은 평범한 바윗길은 결코 가지 않는 클라이머다. 송 대장이 선등으로 출발한 뒤 세컨 빌레이어가 출발하는데 홀드를 잡지 못한채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있다. 볼트마다 퀵드로가 걸려 있고 슬링줄도 있는데 퀵드로를 잡고도 출발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퀵드로와 슬링줄을 모두 잡고도 어렵게 오버행성 턱을 넘어간 후등자는 거친 푸념을 계속 한다. 아마 턱을 넘어서도 간단치 않은 바윗길인 것 같다.

드디어 기자의 차례. “설마 저보다야 잘 갈 수 있겠지…” 일단 출발지점에 서서 홀드를 살펴본다. 그런데 웬걸? 제대로 잡히는 홀드가 하나도 없이 모두 흐르는 홀드다. 왼쪽 홀드가 그나마 좋아서 굳게 움켜쥐어보지만 아무래도 여의치가 않다. 부끄럽게 출발부터 퀵드로를 잡고야 만다. 첫 번째 퀵드로를 잡으면 간신히 좋은 홀드에 손이 닿는다. 하지만 다시 그뿐 그 다음에는 만만한 홀드가 없다. 다시 슬링줄을 잡을 수밖에…


그렇게 약간의 오버성 턱을 넘어서니 다시 가파른 슬랩이 나타난다. 난이도로 치자면 써미트 슬랩은 어린이 놀이터나 마찬가지. 간신히 몸을 바짝 붙여 발을 움직여보지만 이것 역시 여의치 않다. 중간중간에 퀵드로를 잡으며 어렵게 한발 한발 올라서본다. 한 발 내딛기가 빌라길보다도 더 어렵다고 느껴지는 청죽길의 실체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슬랩등반을 마치고 오른쪽으로 트레버스 이동을 해보니 첫째 마디 확보지점이다. 에코길과도 만나는 확보지점은 슬링줄로 연결이 되어 있다. 수통을 꺼내 물을 한잔 마시니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온다. 청죽길 첫째 마디의 난이도는 5.12a. 그러나 몸으로 느끼기에는 빌라길 둘째 마디보다도 더 어렵다는 느낌이 든다. 왜일까? 오버성의 턱과 가파른 슬랩 때문에 느끼는 난이도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청죽길은 인수봉 남면 십자크랙의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첫째 마디는 거리 45미터에 난이도는 5.12a. 둘째 마디는 거리 40미터에 5.10a의 슬랩길, 셋째 마디는 거리 20미터 난이도 5.10b의 슬랩 및 크랙구간이다.

둘째 마디를 출발하니 이 정도라면 갈만하다는 느낌이 온다. 가파르기는 하지만 발디딤이 좋고 바위를 손바닥으로 잡고 밀고 오르는 ‘푸시 동작’이 용이하다. 다소 길게 느껴지는 40미터를 오르고 보니 벌써 마지막 마디를 남겨놓고 있다.
 
셋째 마디는 다시 가파른 슬랩을 올라야 한다. 선등자는 이곳에서 얼마나 긴장되었을까? 선등자가 아니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긴장감이다. 그래서 선등자는 암벽등반의 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선등은 아무나 설 수 없고 선등자가 등반을 마쳐야 비로소 후등자와 대원들이 모두 등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등자는 등반 코스도 정해야 하지만 하강 위치도 결정하고 급변하는 기후 속에서도 대원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암벽등반의 선등자이자 대장이란 그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암벽을 할 수는 있지만 또 누구나 선등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상 추락과 부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또한 선등자이기도 하다.

가파른 슬랩을 간신히 너머 다시 오버성 턱을 넘으니 짧은 20미터의 셋째마디가 모두 끝나고 확보지점, 벌써 인수봉 정상에 올랐다. 청죽길은 2인1조를 기준으로 2시간이 걸리는 코스다. 그러나 과연 그 정도밖에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소요시간은 등반자의 능력에 따라 많은 편차를 보일 것이다. 다행히 청죽길은 앞이고 뒤고 등반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가히 무시무시한 첫째 마디의 난이도 때문이다.

청죽길은 2002년 11월 청죽산악회의 심권식, 양원태, 김병언이 개척한 바윗길이다. 청죽, 푸른 대나무를 말하는 것일까? 역시 그랬다. 청죽산악회는 대나무처럼 부러지지 않고 늘 푸르게 활동하자는 취지로 1984년 12월에 출범하여 지금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산악회다. 지금도 해외의 고산거벽 등반을 추구하는 순수 알피니스트들은 과연 인수봉에 고난도의 바윗길을 낼만한 기상이 있었다.

클라이머의 한계를 시험하는 청죽길. 다소 짧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청죽길은 난이도를 추구하며 인수봉을 등반하고자 하는 클라이머들에게 새로운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힘과 땀의 바윗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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