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사 속 '엄상궁' 아닌 시대의 여걸 잠든 곳

입력 2013-03-19 14:47   수정 2013-03-19 14:47


-서울 영휘원과 숭인원

 홍릉수목원, 홍릉갈비집이 모여 있는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으로 가면 정작 홍릉은 그 곳에 없다. 초행길의 사람들은 이리저리 헤매다 근처에 있는 사적지 '영휘원과 숭인원'을 홍릉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지 영휘원과 숭인원 매표소 유리창에는 아예 홍릉이 아님을 알리는 문구를 써 붙여 놓고 있다.






 원래 이 곳은 황실의 가족묘지로 정한 곳인데, 명성황후의 능인 홍릉이 있어 이 일대를 홍릉이라 일컬었다. 그러나 홍릉 자체는 오래 전인 1919년 3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홍유릉)으로 옮겨졌고, 현재는 산림과학원(홍릉수목원) 정문 왼편에 홍릉터만 남아 있다.






 그렇다고 영휘원과 숭인원이 홍릉과 관련이 없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이 곳에 잠든 이들은 조선말 고종황제, 명성황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영휘원에 잠든 이는 고종황제의 후궁인 순헌귀비 엄 씨이고, 숭인원은 한말의 마지막 황태자 영왕(영친왕이라고도 함)의 큰아들 이진의 무덤이다.






 순헌귀비 엄 씨라고 하면 대부분의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지만 역사드라마나 야사에서 흔히 표현하는 '엄상궁'이란 인물로 설명하면 쉽게 이해한다. 또 이진이라는 이름도 낯설게 여기지만 영친왕과 일본인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사이에 태어난 아기라고 설명하면 금방 고개를 주억거린다. 이들 모두 대한제국의 역사가 그러했듯 망국의 한을 품고 비운의 역사 속으로 가뭇없이 사라진다.






 엄상궁과 명성왕후의 관계는 그 동안 숱한 역사드라마에서 흥밋거리로 등장해 왔다. 명성왕후의 시위상궁(사가로 말하면 몸종)에 지나지 않았던 늙고 못생겼던 엄상궁이 고종의 총애를 받자 명성왕후는 배신감과 분노로 몸을 떨었다고 한다. 누구보다 미더웠고 가까웠던 엄상궁이었기에 배신감은 더했고, 차라리 자기보다 어리고 예쁜 여자였다면 그래서라고 이해했을 텐데 늙고 못생긴 엄상궁을 고종이 가까이 했다는 사실에 여자로서 크게 상처를 입었다. 

 그리하여 명성왕후에 의해 대궐 밖으로 쫓겨났던 엄상궁은 10년 후 을미사변(1896년)으로  다시 대궐로 들어와 고종의 수발을 들게 됐다. 고종이 일본의 위협을 피해 러시아공사관으로 몸을 옮긴 아관파천은 그녀의 기지로 성사됐다. 이후 고종을 모신 엄상궁은 후궁이 되어 아들을 낳았는데 이이가 바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이다. 






 하지만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조선총독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영친왕은 일본 황실에 볼모로 잡혀갔다. 이에 충격을 받아 엄귀비는 1911년 세상을 뜨게 되고 이 곳 영휘원에 잠들었다.  






 그 동안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순헌귀비 엄 씨에 대한 평가가 근래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타고난 지력과 뱃심에 뛰어난 정치감각과 권력야심을 갖춘 여걸의 모습이다. 그에 대한 정확한 접근은 사학자들의 몫이지만 그가 생전에 남긴 업적을 보면 조선의 그 어느 왕비도 보이지 못한 선각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생전에 모은 재산으로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인재를 키우는 교육에 큰 도움을 줬는데, 특히 여성들의 신교육에 관심을 쏟았다. 1906년 진명여학교를 세웠고, 명신여학교(현재 숙명여학교)를 설립했다. 또 양정학교가 재정난에 허덕이자 당시로서는 거금이었던 200만 평의 땅을 기증하는 등 백년대계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일본에서 볼모생활을 한 영친왕은 일제에 의해 일왕실의 나시모토 마사코(이방자)와 1920년 정략결혼해 아들 진을 보게 된다. 1922년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는 생후 8개월된 아들을 데리고 잠시 귀국하나 일본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 아들 진이 덕수궁 석조전에서 돌연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순종은 이를 매우 슬퍼하며 어린 아기지만 성인 왕족의 예를 갖춰 장례를 지내게 했으니, 이 곳 숭인원이 바로 어린 황손 진의 무덤이다. 할머니인 순헌귀비 엄 씨가 잠든 영휘원 남측 경내에 자리하고 있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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