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윗길을 가다(35) 설악산 미륵장군봉 청원길 /  태풍과 수마를 이겨 낸 이 길 ‘청원’이라 불러다오

입력 2014-09-25 16:19   수정 2014-09-25 16:19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35) 설악산 미륵장군봉 청원길 /  태풍과 수마를 이겨 낸 이 길 ‘청원’이라 불러다오


[김성률 기자] 서울을 출발해서 설악산 미륵장군봉까지 가는 길은 설악산 일대에서도 가장 가까운 축에 속한다. 서울 잠실에서 출발하여 장수3교까지는 약 154킬로미터의 거리로 길이 막히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약 2시간 내외의 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 때문에 최근에는 당일 등반으로 미륵장군봉을 다녀오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눈에 뜨인다. 

장수대 주차장 못미처 장수3교를 지나 갓길에 약 7~8대 정도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주차위반 딱지를 떼는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수고롭더라도 등반자와 배낭을 내려놓고 운전자가 장수대 주차장까지 차를 가지고 가서 안전하게 주차하고 내려와 합류하는 것이 좋겠다. 주차위반딱지가 하루 주차비라고 생각된다면 배짱 좋게 주차를 한다하더라도 누가 뭐랄 사람은 없겠다.

미륵장군봉의 진입로와 개요는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 23편 ‘내설악 미륵장군봉 코락길 / 설악에 새겨진 ‘코등’의 자존심’을 참고하면 된다. 청원길은 출입금지길로 들어가서 옛 석황사 자리를 지나 작은 돌탑들이 쌓여있는 지점을 통과하여 계곡을 건너 도달하게 된다. 

모두 여덟 마디로 이루어져 있는 청원길 출발지점 아래에는 비교적 너른 공터가 있어 여러 명이 장비를 차기에 불편함이 없다. 첫째 마디 앞에 서니 ‘청원길 2006년 9월~2007년 9월 차돌산악회’ 라고 쓰여진 바윗길안내판이 선명하게 달려 있다.


여기에서 궁금한 점 한 가지. “미륵장군봉 청원길은 청원산악회가 개척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차돌산악회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또 이 길을 개척하는데 무려 1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필시 바윗길을 개척하는데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서울시산악연맹 알파산악회 8명으로 이루어진 원정대는 두 팀으로 나누었다. A팀은 손제성 대장이 선등을 선다. 손 대장과는 지난해에 한번 등반을 함께 하고 오랜만에 자일을 묶게 되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초보자들을 위한 암벽교실을 이끌어가고 주로 주중 등반을 위주로 하는 손 대장과 주말에 등반을 하는 기자와는 시간이 잘 맞지 않았던 것이다. 오랜만의 ‘함등’이었는데도 반갑게 맞아주는 그의 속 깊은 배려가 고맙다.

등반방식은 A팀의 선등자가 선등을 하면 빌레이어가 퀵드로우에 걸린 자일을 빼내고 곧이어 B팀의 선등자가 선등을 하며 뒤이어 후등자들이 등반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등반을 하게 되면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다.


첫째 마디는 거리 30미터에 난이도 5.10a급의 페이스와 크랙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에서 바라보면 포켓홀드가 무수하게 많아 등반이 수월할 것 같지만 의외로 만만치는 않다. 더군다나 몸이 풀리지 않은 상태여서 주의가 필요하다.

첫 볼트에는 간단히 클립을 하고 포켓홀드를 잘 살펴 둘째 볼트에 클립을 한다. 셋째 볼트에 클립을 해야 하는데 홀드가 의외로 애매하고 등반동작이 잘 나오지 않는다. 다행히 셋째 볼트에는 슬링이 걸려있으니 나머지는 선등자가 알아서 해결할 일이다. 이 구간만 통과하면 초반의 큰 고비는 넘긴 셈이다. 셋째 볼트를 지나면 수월한 슬랩구간이어서 비로소 주변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둘째 마디는 난이도 5.8 길이 20미터의 짧은 크랙이다. 확보는 소나무에 하게 된다. 등반후에 약 10여 미터를 걸어 올라가면 셋째 마디가 나오는데 난이도 5.10b의 페이스 구간이다. 시간관계상 이 구간을 인공등반으로 오른다.


독특하게 출발지점이 뜀바위 형식으로 되어있는 넷째 마디는 길이 35미터의 좌향크랙. 난이도는 5.10a. 선등자에게 공포감을 안겨주는 이곳은 발을 길게 뻗어 벽에 발을 딛고 슬링줄을 잡고 일어서면 그만이다. 아무래도 신장이 큰 사람이 유리하겠지만 단신이어도 넘어가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다섯 번째 볼트가 크럭스 구간이다. 마지막 여덟째 마디를 제외하고는 피부로 느끼는 이 구간의 난이도가 가장 높다.

다섯째 마디는 길이 20미터 난이도 5.8급의 크랙 구간이다. 이 구간을 마치면 약 7~8미터를 걸어가서 다시 짧은 뜀바위 구간과 마주치게 된다. 바로 여섯째 마디의 시작지점이다.

여섯째 마디는 510a급 거리 40미터의 크랙구간. 중간에 확보점이 있어 두 구간으로 나누어 등반하는 것이 좋다. 끝까지 계속 선등을 하게 되면 자일이 꺾이면서 유통이 좋지 않아서 애를 먹기 때문이다. 네 번째 볼트가 크럭스인데 이곳만 통과하면 종료지점까지 큰 어려움 없이 올라설 수 있다.


일곱째 마디를 아래서 올려다보면 두 번째 볼트와 세 번째 볼트의 간격이 멀어 자못 위태로워 보인다. 분명히 프렌드를 설치하고 가야할 것 같다. 그러나 막상 첫째 볼트에 퀵드로우를 걸고 나면 둘째 볼트까지 큰 어려움 없이 돌파할 수 있다. 이후로는 등반이 순조롭다. 난이도 5.9에 거리 15미터로 비교적 짧은 구간이다.

이제 마지막 여덟째 마디. 난이도 5.11d급의 30미터 오버행 구간이다. 출발조차 힘들어 보이는 이 구간은 아쉽게도 시간관계상 등반을 하지 못했다. 5.12의 실력은 되어야 돌파가 가능할 것 같은 이 구간은 기자의 실력으로 후등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일행은 일곱째 마디 등반을 마치고 왼쪽으로 짧은 트레버스를 한 다음 그곳에서 하강을 한다.

청원길을 개척한 청원산악회는 차돌산악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청원산악회는 1987년 1월에 창설된 산악회인데 1995년부터 1998년까지는 전 회원이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등 활동을 하다가 1996년에는 지금도 인기 있는 북한산 청원암장을 개척했다. 이후 요세미티 등반 등을 마치고 2006년 미륵장군봉 청원길을 개척하였으며 2009년도에는 청원산악회에서 차돌산악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차돌산악회의 미륵장군봉에 대한 애정은 이후에도 계속 뜨거웠다. 2009년도에는 미륵장군봉에 미륵2009라는 최고난이도 5.12a의 상급자용 바윗길을 개척하기에 이른다. 2011년 9월에는 미륵장군봉 코락길에서 확보지점교체와 낙석제거, 노후볼트 교체 등 보수공사를 완료하는 등 적극적이고도 모범적인 산악활동을 하고 있다.

등반을 같이 한 일행 중에는 예전에 청원산악회에서 활동하며 청원길 개척에도 참여한 분이 있었다. 청원산악회는 2006년 6월경부터 2회에 걸쳐서 개척작업을 하던 중에 때마침 불어 닥친 태풍 '루사'로 인하여 한계령 일대가 수마가 휩쓸고 가는 바람에 개척작업은 자연 중단되고 말았다고 한다. 청원산악회는 그러나 저력과 근성이 있는 산악회였다. 2007년 9월부터 개척작업이 재기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미륵장군봉 동남쪽 능선에 멋진 등반선에 아름다운 경치를 그려내며 산악인들의 사랑을 받는 '청원길'이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청원길 등반을 마치면 60미터 한번 그리고 30미터, 60미터, 30미터 모두 세 번의 하강을 해야 한다. 60미터 하강을 완료하면 왼쪽으로 바위를 안고 트레버스를 해야 한다. 난이도가 높지 않은 곳이어서인지 아무런 안전장치가 되어 있지 않다. 60미터 하강을 완료하면 암벽화도 릿지화로 갈아 신게 되고 헬멧도 벗기 쉬운데 끝까지 긴장이 필요하다.


60미터 하강을 완료하고 마지막 30미터 하강 확보지점에서 확보를 하려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빅월전문등산학교 익스트림라이더(ER)의 전용학 대표강사였다. ER은 새로운 등반기술에 대해 연구하고 대암벽등산기술을 체계적으로 보급해 오면서 탁월한 능력의 거산등반가들을 많이 배출해냈다. 전용학 강사는 이 학교의 대표강사이니 우리나라 대암벽등반을 대표하는 산악인 중의 한 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전용학 강사는 2001년 설악산 적벽에 '2836'이라는 이름의 바윗길을 개척했다.  지금은 '자유2836'으로 불리며 적벽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바윗길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2002년에는 설악산 노적봉 남벽에 '그들과 함께 라면'과 '4인의 우정길'이라는 역시 멋진 바윗길을 개척했으며 2004년에는 설악산 토왕골 선녀봉에 '솜다리의 추억' 길을 개척했으니 그의 이름은 앞으로 분명히 다시 언급될 것이다.

미륵장군봉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미륵 2009’를 단 둘이 등반을 하고 있는 그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전용학 씨는 ER의 대표강사 이외에도 위탁교육과 가이드 등반 등의 일을 하고 있다. “미륵장군봉 타이탄길에서 사고가 많이 나고 있기 때문에 온사이트로 등반하는 선등자들이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다음 마디로 등반하는 그의 뒷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니 자일을 두 동을 달고 선등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이 독특해서 실례인줄 알면서 불러 세워 사진을 한 컷 찍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 그에게 두 줄 하강의 장점을 물어보았다. 그의 답은 이랬다.

- 우선 더블로프는 낙석, 낙빙이 많은 알프스 지역에서 많이 사용합니다. 화강암이 발달되어 그런 위험이 없는 국내지역이나 요세미티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러나 사실 낙석의 위험보다는 다른 안전한 등반시스템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더블로프의 장점입니다. 예를 들어 어려운 트레버스구간에서 후등자를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 후등자의 문제 발생시 즉시 구조시스템이 가능합니다. 또한 선등자의 등반시 로프 무게는 오히려 로프의 흐름이 좋은 더블로프가 가벼울 수 있습니다.

3명이 등반을 할 때는 후등자 2명이 약간의 간격을 두고 동시 등반도 가능하여 2인의 속도에 근접하게 등반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더블로프의 확보기 사용이 잘 훈련된 리더이어야만 가능합니다.

여하튼 국내에서도 3명 이내의 등반은 더블로프가 매우 효과적입니다. 참고로 더블로프와 트윈로프 모두 두 줄을 사용하지만 약간 개념이 다릅니다. 알파인 원정대들은 보통 3명이서 더블로프를 주로 사용합니다.-

아마도 그의 말을 모두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벽등반에 대해서 제대로 배워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산과 바위 그리고 이름 모를 능선에서 나타나 기쁨을 안겨주는 바윗길 그리고 그 바윗길들을 개척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기쁨이다. 진짜 실력 있는 클라이머들은 결단이 필요할 때 사정없이 단호하지만 항상 겸손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안다. 그러나 등반실력을 그 사람의 인격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더러 있으니 참 서글픈 노릇이다.

청원길 하강을 마치면 바로 석황사골 계곡으로 접어든다. 예전과 같이 알탕은 못하더라도 찬 물을 마음껏 들이켜고 시원한 계곡가에 앉아 아름다운 미륵장군봉 능선과 신선벽에서 벽을 타는 클라이머들을 지켜볼 수 있다. 

언제 만나도 반갑고 즐거운 자일 파트너들과 함께 팀웍을 모아 등반하고 아무런 안전사고 없이 하강을 완료하니 한 여름의 무더위가 씻은 듯이 사라진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산은 또는 바위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 산을 걷는 또는 타는 사람은 어떤 산이나 바위에서라도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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