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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F/W 서울패션위크] 진태옥 디자이너, 패션위크는 내게 ‘도도한 강물’ 같은 존재

입력 2014-03-22 15:34   수정 2014-03-22 15:33


[진회정 기자/ 사진 김강유 기자] 올해로 패션인생 39년째를 맞이하는 한국 1세대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 화장기 없는 수수하고 깨끗한 얼굴에 깔끔한 화이트 셔츠차림으로 등장한 그녀의 모습은 담백하고 기품 있는 디자인 인생을 고스란히 담은 느낌이었다.

98년 개막식 이후 줄 곳 서울패션위크의 버팀목이 되어준 진태옥 디자이너는 이번 패션쇼에서 그동안 보여줬던 부드럽고 차분한 느낌의 쇼가 아닌 전혀 색다른 패션을 선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S/S 시즌에는 밝은 화이트 컬러가 주를 이뤘다면 이번 F/W에서는 클래식한 올블랙을 선택한 것. 기존의 쇼와는 대조적이면서도 과연 블랙 컬러로 어떤 변신을 시도하게 될지 더욱 기대가 모아졌다.

새로워진 음악, 메이크업, 무대를 넘어 그녀의 인생철학과 상상력을 모두 담은 이번 서울 패션위크에 관한 스토리와 후배 디자이너들을 위한 따끔한 일침과 격려의 말 등 그녀의 패션인생에 관한 모든 것을 들어봤다.

# 1. SINCE 1998 서울 패션위크를 말하다


처음 그녀가 서울 패션위크에 참석한 공식일은 98년 개막식이지만 사실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89년부터였다. 당시에는 정부가 인정한 패션위크는 아니었지만 진태옥 디자이너를 비롯한 총 12명의 1세대 디자이너들이 처음으로 서울 패션위크를 설립한 것.

“서울 패션위크는 내게 ‘도도한 강물’ 같은 존재예요. 오늘날의 패션위크는 모든 디자이너들이 만든 패션의 기지라고 볼 수 있죠. 좁았던 계곡의 자갈들과 큰 바위들이 모두의 노력 끝에 갈고 닦아져 반짝이고 범접할 수 없는 큰 강물이 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당시에는 어디의 도움도 없이 각자의 사비를 들여 20여명의 외국 기자들을 전부 초청해 쇼를 개최했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한국의 패션이 이런 것이구나’라고 꼭 알리겠다는 일념 하에 모든 디자이너들이 여력을 다했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왔던 일본 기자 중 한명의 “한국의 패션 잡지는 어떤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머뭇거리다 ‘멋’이라는 종합 잡지가 하나 있다고 하자 모든 기자들은 놀라움에 웅성거렸다고 한다. 지금과 같이 참고할 만한 보그나 엘르 등 유명 매거진이 없었음에도 이만큼의 실력과 노력을 보여줬던 것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것.

“지금은 아시아권을 넘어 유럽, 미국 등에 견주어도 손색없을 만큼 한국패션이 굉장히 높은 수준에 와있지 않나 생각해요. 한류 문화 흐름을 타서 패션도 앞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 같아 그 밑거름이 된 우리로서는 보람과 자부심이 느껴지죠”

#2. 클래식한 블랙과 꾸뛰르의 만남, 2014 F/W 서울 패션위크


“이번 쇼는 모든 컬러가 올블랙이예요. F/W이니 만큼 클래식하고 꾸뛰르적인 것을 아방가르드하게 풀었어요. 컬러는 블랙이지만 울, 코튼, 실크, 레더 등 섬유조직의 변화를 줘 재미를 더했죠”

특히 이번 쇼에서 그녀는 음악에 좀 더 귀 기울여 줬으면 한다고 했다. 기존의 쇼에서는 비트가 들어간 일반적 패션쇼의 음악이었다면 이번 무대에서는 예측 불가한 전혀 색다른 음악이 선정 될 것이기 때문.

그 밖에도 무대, 메이크업 등 F/W 패션에 맞춘 감각적이고 신선한 연출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해 더욱 기대를 모았다. 몇 십년간 꾸준히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가는 그녀의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는 과연 어디로부터 영감을 받는 것일까?

“저는 영감을 얻기 위해 방황하고 돌아다니는 것이 디자이너의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더듬이는 항상 열려있어요. 언제 어디서 무언가를 낚아챌지 모르니까요. 그중 이번 작품은 프랑스 오르세 박물관 문예전시를 보고 많은 영향을 받았죠.”

그녀는 지나가는 나무, 돌멩이도 하나의 아이템이라고 생각하며 언제나 자극받을 만한 요소를 찾아다닌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터뷰 중 찻잔의 문양을 찬찬히 살펴보는 섬세한 모습에서 그동안의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는 그녀의 끊임없는 노력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줬다.

패션위크에 참석하는 후배들 중 눈여겨보는 후배들이 있는가?

“요즘 젊은 디자이너들은 대단한 실력들을 가지고 있죠. 다만 안타까운 점은 현실과 너무 타협하려는 것이에요. 지금은 힘들고 어려울 수 있지만 먼 훗날을 생각해서 신념을 지켜야겠다는 친구들이 눈에 보이죠. 그런 후배들을 보면 너무 예쁘고 기특해요”

탄탄한 교육환경에서 배우고 자란 요즘 신진 디자이너들은 예전에 비해 월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 하지만 그 이면에 상업화된 패션세계에 유혹되기 쉬운 것도 요즘 패션의 현실이다. 진태옥 디자이너는 그런 후배들을 보면 너무나 안타까우며 초심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외국디자이너들을 살펴봐도 자신만의 디자인 철학을 끝까지 잃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살아남고 있다. 모든 직업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인 것은 사실이지만 디자이너만큼은 예술인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녀가 닦아놓은 한국패션의 길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며 이어가줬으면 하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다.

“1세대 선배님이 격려의 말씀과 이런 일침들이 후배들에게 큰 힘이 될 것 같다”는 말에 “잔소리 같지 않을까요” 라며 소녀 같이 밝은 웃음을 보이는 그녀는 눈빛에서 여전히 패션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후배들을 사랑하며 아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3. 뜨거웠던 과거, 그리고 찬란할 미래


진태옥 디자이너들은 그동안 수많은 톱 모델들을 발굴해 내며 한국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린 주역이기도 하다. 그녀의 쇼를 데뷔무대로 가졌던 대표적 모델은 홍진경, 송경아, 장윤주 등 지금까지도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그야말로 모델계의 보석과 같은 존재들을 찾아 낸 것.

“대견하죠. 장윤주씨의 경우 일명 ‘대타’로 저의 쇼에 와서 그날 바로 오프닝을 한 아이예요. 그 당시 고2였는데 넌 되겠다. 계속 모델해라! 바로 외쳤죠(웃음). 송경아씨는 처음 봤을 때 모습이 잊히지 않아요. 웃는 입매와 피부, 머릿결 등 흠잡을 것이 없이 완벽하고 화려한 모델이었어요. 그 외에도 홍진경, 최성희 등 많은 모델들이 제 무대에 처음으로 선 뒤 많은 곳에 발탁됐죠”

모델들을 발굴하는 실력 뿐 아니라 진태옥 디자이너는 88올림픽 유니폼 및 아시아나 항공 유니폼 제작 등 한국의 정서를 담은 가치 있는 룩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유니폼은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기업의 철학, 문화, 서비스 정신 등이 담겨 있어야하죠. 그 반면에 기성복은 기업과 소비자가 아닌 디자이너와 소비자가 소통하는 것이죠. 소비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시대의 흐름을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4계절로 변했지만 이제는 월마다 때로는 주마다 달라지는 것이 요즘패션이기에 굉장히 치열한 경쟁이죠”

내년이면 50주년을 맞이하는 그녀는 작품집이나 그동안의 디자인 세계를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외부에서 많은 요청들이 들어오고 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번 중요한 쇼가 끝나고 논의 될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가?

“사실 컬러나 소재의 변화는 표면적인 것이죠. 제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디자이너가 가지고 있는 철학, 나의 문화적 코드,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전달하는 것이에요. 그 과정이 두렵기도 하면서 설레는 순간이기도 하죠”

그녀는 관객들이 이번 무대를 딱딱한 패션쇼라 여기지 말고 20분간의 즐거운 퍼포먼스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새로워진 패션과 음악, 메이크업 등 모든 것이 융화된 종합예술무대를 즐겼으면 하는 것이다.

또한 이번 쇼를 통해 이 모든 융합된 것을 각자의 생각으로 한 단어로 표현해 주는 것이 진태옥 디자이너가 관객들에게 주는 숙제이자 궁금증이기도 하다. 이번 쇼를 통해 패션을 ‘보는 것’이 아닌 그녀의 생각을 함께 공유하는 ‘대화의 공간’이라 여기고 함께 느끼며 소통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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