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널 기다리며’ 김성오, 물음표에 온점을 찍기까지

입력 2016-03-16 08:35  


[bnt뉴스 김희경 기자 / 사진 김치윤 기자] 한 가지에 푹 빠진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매번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배우들의 경우 특히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성오의 모든 과정에서는 확신이 가득했고, 작품을 대하는 자세 또한 남달랐다. 그가 필자에게 비밀스럽게 들려준 이야기는 1%의 특별한 시각이었다.
 
최근 bnt뉴스는 영화 ‘널 기다리며’(감독 모홍진)에 출연한 배우 김성오는 차분하지만 열정적인 면모를 가득 드러냈다. 연기할 때만큼은 원 없이 흠뻑 빠졌음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했다.
 
김성오는 당시 처음 관람한 영화에 대해 “시사회 당시 관객의 입장으로 봤다”며 미소를 지었다. 스릴러라는 장르만이 줄 수 있는 묘미와 즐거움이 충분히 들어있다는 것이 그의 평. 김성오가 연기한 김기범이라는 악역은 그의 이미지를 한 층 더 확실하게 잡았다. 그러자 김성오는 ‘아저씨’와 ‘시크릿 가든’을 촬영할 당시 비슷한 캐릭터의 시나리오만 들어온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지난날을 밝히며 배역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됐음을 밝혔다.
 
“제가 대학로에서 공연을 할 땐 식구들이 한정돼 있어서 다양한 역을 할 수 있거든요. 깡패 역을 잘 한다고, 혹은 전에 연기했다고 무조건 깡패를 또 시키지 않아요. 배우로서 욕심과 꿈을 해소시켜주시는 부분이 많죠. 물론 그 당시에는 불러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했지만 생각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현재 결혼해서 아빠가 되고, 돈의 소중함을 깨닫고 보니까 배우가 되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고 있어요.(웃음)”

 
극중 김성오가 연기한 김기범은 12명의 사람을 죽였음에도 죄책감은커녕 자신의 능력에 대해 우월감을 갖고 있는 사이코패스로 등장한다. 증거가 나오지 않는 살인을 토대로 다른 사람들을 낮잡아 보며 희열감을 느끼는 악역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섬뜩함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처럼 김성오가 명품 연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갖고 있는 집요한 분석 능력에 있었다. 그는 과일을 예시로 들며 평범한 과일의 겉모습이 아닌, 아주 세심하고 작은 부분에 초점을 두는 것이 기범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저희가 보통 사과나 바나나를 생각하면 일반적으로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사과는 빨갛고 예쁘지만 종종 푸른색도 있는 과일. 바나나는 원숭이가 좋아하는 노랗고 긴 과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죠. 하지만 사과의 꼭지 부분을 자세하게 들여다  보는 사람은 없어요. 사과의 반을 자르고 씨가 몇 개인지 세세하게 보는 사람도 없죠. 또 바나나도 실온에 오래 두면 껍질이 얇아지면서 까맣게 변하고, 손가락으로 누르면 세 가닥으로 나뉘어요. 이렇게 세밀하게 알 수 있고, 그것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역이 기범이에요.”
 
“저는 단순히 악한 사람이 아니라 김기범이라는 사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단순한 사과나 바나나였던 사람들이 악역이 되고, 그들이 갖고 있던 세심한 부분들이 극대화 되는 것을 의미하고 싶었죠.”

 
그는 자신이 연기한 김기범이라는 캐릭터를 완전히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의 마음가짐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바로 극단적인 다이어트. 극중 기범은 유일한 친구이자 숙명으로 간주되는 민수(오태경)와 비주얼적으로 극명한 차이를 두어야 했다. 이때 김성오는 예민하고 깡마른 체형을 선택한 뒤 극한의 다이어트로 16kg를 감량하는 놀라운 결과를 안았다. 그가 이 같은 다이어트를 하게 된 것은 영화 ‘머시니스트’ 속 크리스찬 베일의 사진 한 장에서부터 시작됐다. 배우로서의 자존심으로 시작된 노력은 결국 영화 속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됐다.
 
“감독님이 크리스찬 베일의 사진을 보여주셨을 때 전 ‘CG 아니냐’고 되물을 정도로 놀라웠어요. 그리고 배우니까 저절로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크리스찬 베일이 마치 세상의 중심에 있는 올림픽 선수라면, 저는 변두리 소수민족으로 출전하는 느낌이랄까요.(웃음) 제가 이병헌이나 강동원은 아니지만 ‘내가 하면 되지’라는 느낌이 저절로 들었죠. 감독님께선 적당히 하면 CG팀과 의논을 해보시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그 말이 제겐 자극이 됐던 것 같아요. ‘네가 크리스찬 베일이야? 그래, 난 김성오야’라는 마음이었달까요.(웃음)”

 
이처럼 빈혈을 달고 살 정도로 몸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캐릭터에 몰입했던 김성오지만, 정작 영화의 초점이 자신의 다이어트로 돌아오지 않길 바라는 조심스러운 마음을 내비쳤다.
 
“영화를 큰 산으로 본다면, 제 다이어트는 그저 작은 일부일 뿐인데 그게 부각된다면 너무 불편해요. 처음에 감독님께선 그 정보가 아무것도 노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가 개봉되고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는 것이 더 재밌을 것 같다고 했죠. 하지만 상업영화다보니 홍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외부로 드러나긴 했죠. 부담은 좀 있는 것 같아요.”
 
“선배 배우들 중에서도 제게 ‘연쇄살인범이 왜 살을 빼냐’ ‘평범해야 연쇄살인범이다’라는 핀잔 아닌 핀잔도 종종 하시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전 ‘제 생각엔 이렇게 해야 맞는 것 같아서요’라고 말하긴 했는데, 결과론적으로 관객 분들은 어떤 대답을 하실진 잘 모르겠어요.”

 
김성오는 선배의 의견에도 본인만의 고집을 굽히지 않을 정도로 확고한 배우였다. 그럼에도 그가 배우로서 딱 한 가지 지키는 것이 있었다. 바로 작품과 캐릭터에 혼을 불어넣는 감독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
 
“문학에 시라는 작품을 만드는 시인은 한글이라는 글로 자신을 표현해요. 배우도 비슷해요. 연출자는 배우라는 몸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드러내는 거죠. 훌륭한 배우는 연출자의 생각을 100% 맞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시나리오를 보고 많은 대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촬영 현장에서 이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거죠.”
 
김성오의 인터뷰는 그야말로 물 흐르듯 수월하게 진행됐다. 막힘이 없었지만 굵직한 그만의 생각들이 끊이지 않고 새어나왔다. 자신의 결과물에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그 물음표를 그대로 두지 않는 모습은 다른 이들에게선 쉬이 찾아볼 수 없는 자세였다. 스스로 찍는 온점이 모든 해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가 추구하는 목표에 다가갈 수 있는 하나의 알고리즘이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김성오라는 대중들의 알고리즘은 꽤나 신빙성이 높은 존재라는 것도 기분 좋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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