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중국산 값 싼 경유, 수입되면 성공할까

입력 2016-09-21 08:15  


 요즘 중국산 경유의 국내 수입 허용이 에너지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소비자 입장에선 한 푼이라도 저렴한 경유를 쓰게 될 것이란 기대감이 적지 않아서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정유업계의 시선은 냉정하다. 실제 중국산 경유의 국내 수입에는 현실적인 여러 제약이 적지 않아서다. 반면 과거 '타이거오일' 때와는 상황이 다른 만큼 정유업계의 타격이 클 것이란 전망도 쏟아져 나온다. 

 지금은 기억에서 퇴색된 '타이거오일'은 1998년 설립된 휘발유 및 경유 수입사였다. 국제 시장에서 휘발유와 경유를 싸게 구입한 뒤 국내로 들여왔고,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삽시간에 주유소를 장악해 나갔다. 2000년과 2001년 국내 휘발유와 경유의 연간 평균 가격이 ℓ당 1,248원 및 612원일 때(한국석유공사 기준) 100원 가량 저렴했으니 단숨에 매출액도 늘어났다. 게다가 기름 값은 당시 해마다 상승세여서 타이거오일을 찾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쓰러진 것도 한 순간이었다. 국내에 정제시설을 보유한 정유업계가 관세의 불공정성을 끊임없이 제기했기 때문이다. 휘발유나 경유 등의 완제품을 들여올 때 부과되는 관세와 이른바 원재료에 해당되는 원유의 도입 관세가 5%로 같다는 점을 문제로 내세웠다. 정부는 정유업계 의견을 받아들여 휘발유 및 경유 수입 때 관세는 5%에서 7%로 올렸고, 원유 수입 때 부과되는 관세율은 5%에서 3%로 낮췄다. 결과적으로 타이거오일이 수입하는 제품은 7%의 관세, 정유사가 수입하는 원유는 3%의 관세가 부과되며 타이거오일은 가격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사라졌다. 이후 휘발유나 경유를 수입, 판매하는 수입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중국산 경유의 국내 수입이 허용됐다. 중국 정부가 올해 말까지 휘발유와 경유의 품질 수준을 한국과 같은 레벨5로 높이기 때문이다. 레벨5는 황 함량이 10ppm 이하를 의미하는데, 현재의 유럽 기준보다 강화된 수준이다. 한 마디로 수출에 필요한 제품력을 갖춰 휘발유와 경유의 본격 수출에 나선다는 뜻이다. 

 누구보다 중국 정부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는 곳은 정유업계다. 정유사들은 한국과 품질 수준이 같아지는 2017년부터 중국산 경유의 글로벌 시장 판매가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국내 시장에 들어오면 가격 경쟁력이 절대적 무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따라 과거 타이어오일 때와 같은 석유제품 관세율을 다시 주목하고 있다. 현재 원유를 도입할 때 또는 휘발유와 경유를 수입할 때 동일하게 부과되는 3%의 관세율 조정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 중국산 경유가 국내에 들어오면 관세율을 움직일 수밖에 없고, 이 경우 중국산 경유는 가격 경쟁력을 잃어 타이어오일처럼 시장에서 사라진다는 얘기다. 

 중국산 경유의 국내 시장 진출 가능성을 낮게 보는 또 하나의 이유는 국내의 연료 소비 증가율 하락이다. 에너지경제원구원에 따르면 국내 수송부문의 에너지 소비는 1990년 연평균 7.9% 증가했지만 2000~2012년에는 연평균 1.5%로 증가율이 크게 둔화됐다. 자동차 등록대수가 포화에 이르고, 제품의 평균 연비가 향상되면서 수입 기름이 들어와도 차지할 점유율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당한 투자가 수반되는 휘발유 및 경유 수입 사업에 뛰어들 기업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나아가 수송부문의 에너지소비 구성비도 지난 2000~2007년에는 20~21% 수준이었지만 이후 하락 추세를 지속해 2012년에는 18%까지 떨어졌다. 시장의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기본적으로 중국의 석유 정제능력이 과잉이기 때문이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중국 내 정제설비는 하루 1,409만배럴이지만 소비는 1,105만배럴에 그쳤다. 하루에만 무려 304만배럴이 남은 셈이다. 중국 정부가 경유의 품질 수준을 국제적 기준에 맞춘 것도 바로 남는 경유를 해외로 수출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라는 의미다. 게다가 중국은 휘발유가 주력 수송 연료여서 정제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경유는 더 이상 쌓아둘 곳도 없다.

 또 하나는 중국의 정유사 통폐합이다. 중국 정부는 곳곳에 난립한 중소 규모 정유사를 향해 덩치를 키우라고 독려하는 중이다. 일정 규모 이상을 갖추지 못하면 강제 통합에 나서는데, 여기서 살아남으려는 정유사들이 몸집을 불리면서 경유의 생산량 또한 늘어났다. 결국 소비를 통해 경유 재고량을 털어내야 하는 중국으로선 소비량이 많은 한국과 아시아 일부 국가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더군다나 한국은 연료 자체에 세금이 많이 부과돼 경유 가격이 비싸고, 경유차도 많아 가격 경쟁력만 있다면 경유 소비의 대안 국가로 꼽힌다. 

 나아가 한국은 경유에 부과된 세금을 손쉽게 건드리지 못한다는 점도 배경이 됐다. 미세먼지 대책으로 디젤 억제를 위해 경유의 세율 인상이 검토됐지만 오랜 기간 경유를 산업 및 서민 연료로 공급했다는 점에서 경유세 인상은 국민적 반발이 거센 만큼 수입사가 저렴하게 공급한다면 얼마든지 시장 잠식은 가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정유업계가 과거 '타이거오일' 때와 달리 난감한 표정을 짓는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이다. 중국의 경유 수출은 '수익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무조건 수출을 해야 하는' 절박함이 담겨 있어서다. 그래서 중국 정유사들이 한국 내 수입사가 나타나 수입을 제안하면 정제마진을 포기하고 수출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정제마진까지 사라진다면 과거의 선례가 남긴 높은(?) 관세율 차별은 충분히 극복된다는 게 업계의 시선이다. 이 경우 국내 정유 4사의 견고한 공급 체계가 흔들릴 수 있고, 경유 가격은 더욱 내려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절박한 중국으로선 일체의 마진 없이 수출에 나서는 것만으로도 정유 공장이 유지되고, 중국산 경유가 저렴하게 주유소에 공급되면 사업자도 매입가를 낮추는 것이어서 이익 극대화를 추구할 수 있다. 그래서 중국산 경유를 '황금 기름'으로 부르는 이들도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정유사들이 걱정하는 건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시장이다. 중국석화와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올해 중국은 382만 배럴의 경유를 생산해 360만 배럴을 소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914만 배럴의 경유를 생산해 428만배럴만 소진하고, 나머지 486만배럴은 해외로 수출한다. 여기서 언급되는 해외가 곧 중국 정유사들의 직접 진출 시장이고, 값 싼 경유로 시장에 진출하면 한국은 해외 시장도 내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기름은 품질 기준만 충족하면 될 뿐 달리 기술경쟁력이 있는 사업도 아니어서 중국의 경유 시장 확대는 초읽기 수순이라는 게 정유업계의 시선이다. 

 물론 아직 본격적인 수입 전개에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누군가 수입 판매하겠다는 사업자도 나타나야 하고, 구매한 제품을 판매할 주유소 유통망도 구축해야 한다. 또한 석유제품을 수입하려면 저장시설도 갖춰야 한다. 그러자면 막대한 투자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게다가 기름 값이 비싸면 저렴한 가격이 소비에 영향을 주지만 지금처럼 하향 안정세일 때는 가격 민감도가 떨어지는 만큼 시장성이 밝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수출로 경제를 이끌어가는 한국이 수입을 막을 명분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정유사도 사업 다각화에 나서야 한다는 조인이 끊이지 않는다. 기름 의존도를 낮추고 새로운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이다. 견고한 정유 4사의 방어벽이 값 싼 중국 기름에 뚫릴 수 있을까. 소비자는 오로지 그것만이 관심이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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