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원라인’ 진구, 이상하게 편애하고 싶더라니

입력 2017-03-31 12:20  


[이후림 기자] 편애하고 싶은 배우, 진구.

진지하게 답을 잘 이어나가다가도 금방 엉뚱한 발언을 쏟아낸다. “좋은 배우보다 앞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연기자 외에 다른 직업을 생각해본 적 없다”는 고민서린 답보다도 불쑥불쑥 뒤따라 나오는 유쾌하고 요상한 뒷말이 더 기다려지기는 또 처음이었다.

영화 ‘원라인(감독 양경모)’이 개봉 하루 전인 3월28일, 유달리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배우 진구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작업 대출계의 잔뼈 굵은 실력자, 능구렁이 장 과장 역을 연기하며 특유의 능청스런 미소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이날 인터뷰에서 진구는 단 한 곳, 연기자의 길만 바라보며 왔다고 했다. ‘태양의 후예’ 이후 제대로 영글기 시작한 진구의 단단한 입지의 발판이 된 것은 한눈팔지 않는 묵묵함이었음을, ‘진구’하면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묵직함도 역시, 한방을 노리는 욕심보다 묵묵함의 위대함을 아는 지혜로운 그의 작은 선택들, 때문이었음을 그제야 알게 됐다.

Q. 영화 속 능구렁이 장 과장 캐릭터, 맘에 드는지 궁금하다.

“사실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장 과장이란 캐릭터의 매력을 잘 모르겠어서 처음엔 고사했다.  그런데 양경모 감독님을 만나고, 감겼다.(웃음) 잘 감으시더라. 감독님이 예전에 이 시나리오를 준비하시면서 작업 대출에 몸담고 계신 분들을 만나 조사하신 것들을 이야기 해줬는데, 재밌겠다 싶더라. 나중에 보니 장 과장이 글만으로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 캐릭터였다. 촬영장에서도 감독님이 부담 없이 하고 싶은 대로 맘껏 하라고 방목 해주셔서 편하게 할 수 있었다.”

Q. 이번 영화에서는 ‘태양의 후예’에서 굉장히 핫했던 로맨스, 멜로라인이 없다. 아쉽진 않았나.

“아쉬운 건 없었다. 멜로든 코미디든 본인한테 맞는 옷이 있는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서 맡은 장 과장 역할도 맞는 옷이라 감독님한테 설득당해서 출연하게 되기도 했고.(웃음) 이번 영화에서 관객들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에는 굳이 멜로가 없어도 상관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감독님이 멜로라인을 넣지 않으신 것 같다.”

Q. 대신 배우 임시완이 남남케미를 밀고 있다. 브로맨스.

“(임)시완이와의 남남케미 정말 좋게 생각한다. 좋다.(웃음) 기억나는 게 어떤 분이 영화를 보시고 극찬을 해주셨다. 영화 속 (임)시완이와 나를 보면서 영화 ‘타짜’에 고니(조승우)와 평경장(백윤식) 생각이 났다고. 너무 감사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극 중 (임)시완이와는 브로맨스라기 보다 사제지간의 느낌이 더 강하다.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고 하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Q. 지금까지 맡았던 배역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색다른 연기를 보여줬다.

“워낙 색 자체가 다른 역할이어서 딱히 색깔을 바꾸기 위한 고민을 하진 않았다. 감독님이 나를 방목하시면서 편한 연기를 주문하셔서 정말 이번엔 내 마음대로 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웃음)

Q. 방목이라, 어떤 지점이 편한가.

“작품마다 다르겠지만 넓은 초원에서 방목한다면 내가 맘껏 풀을 뜯을 수 있는 반면, 사막에서는 풀 찾기가 힘들지 않나. 그런 작품에선 양치기 소년을 따라다녀야 한다.”


Q. 장 과장은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캐릭터다. 실제 돈과 명예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

“명예다. 과거에 돈이 한 푼도 없었던 적도 있었고, 반면 많이 있었던 적도 있었다. 돈이 없어서 자존심이 상해있던 적은 없다. 돈은 없으면 아끼고, 있으면 쓰면 그만이지만 명예는 그렇지 않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돈은 우리 가정을 위해서라면 어떤 방식으로도 마련할 자신이 있다. 그렇지만 밖에서 욕을 먹는 아빠는 되고 싶지 않다.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다.”

Q. 영화가 돈에 관한 이야기다 보니 엄청난 액수의 돈다발들이 막 나오더라. 탐날 것 같더라. ‘저 돈이 내 돈이었음 좋겠다’란 생각, 했을 것 같다.

“당연히 했다. (임)시완이랑 누워서 사진도 찍고 했다.(웃음) 그 많은 돈을 언제 보겠나. 세지지도 않더라. 얼마정도일까, 대충 계산해 보니까 한 천 억 정도 있더라. 어마무시하다.”

Q. 그 돈 만약 정말 가지게 되면, 뭘 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음, 그냥 내가 좋아하는 피규어, 레고, 농구화 사겠지.(웃음) 피규어 중에도 영화배우 피규어를 참 좋아한다. 아이언맨, 원피스 이런 것도 좋아하고. 특히 영화 인물이 레어템으로 나올 때가 있다. 찰리 채플린, 이소룡, 장국영, 브래드피트 이런 세계적인 배우들.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기도 하고 사놓고 보면 왠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르고 그런다. 너무 행복하다.(웃음)”

Q. 영화의 스코어를 예상 해본다면.

“중박은 할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영화가 잘 되고 못되고는 영화 개봉 후 차기작으로 나에게 시나리오 몇 권이 들어오느냐로 판가름 나는 것 같다.(웃음) 잘 했다면 많이 들어올 테고, 그렇지 않으면 아닌 것. 분명한건 ‘원라인’은 책을 끊기게 하지는 않게 할 작품이란 거다.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아주 맘에 든다.”


Q. ‘원라인’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모두 술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집에서의 혼술을 좋아한다. (임)시완이는 너무 바빠서 감히 내가 연락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사실 어제 집에서 와인을 한 잔 먹었는데 너무 행복했다. 혼자 즐기는 거다. 안주는 귀찮아서 과자 정도로 때운다.(웃음) 그래도 결혼 전에 혼자 10년을 넘게 살았는데 요리하는 게 아직 너무 어색하다. 칼질 빼고는 전혀 모르겠다. 간 하는 방법이나, 뭐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집안일은 육아밖에 못하는 것 같다.”

Q. 그 정도면 육아 예능 프로그램에서 러브콜이 많이 올 것 같은데.

“러브콜이 많이 오지만 고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족들이랑, 회사 측이랑 계속 상의중이다. 달콤한 유혹이긴 하다.(웃음)”

Q. 연기 외의 관심사가 있는지.

“작품 활동 외에는 운동은 농구, 클라이밍을 좋아하고 피규어 모으는 걸 즐긴다. ‘태양의 후예’가 잘 돼서 해외를 많이 나갔었는데 가서 피규어나 레고를 사 모으는 취미가 생겼다. 그리고 육아? 집안일. 연기자들은 촬영현장 아니면 집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뭔가를 해야 한다.(웃음)”

Q. 육아, 특별히 힘든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다.

“하나는 콕 집어 어떤 것이 힘들었다기보다, 내 시간이 완전하게 없어진다는 게 불편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가 1분 1초 커가는 모습이 나에겐 아직 신비롭고 신기하고 사랑스럽고 믿기지 않고 그렇다. 정말 행복한 일이다.”

Q. 그렇다면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의 작품 선택에서 변하는 지점들이 조금씩 생길 것 같은데.

“무슨 느낌인지 이해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악역을 한다고 해도 내 아이한테는 자랑스러운 아빠가 될 자신이 있다. 영화 속에서는 악역이지만 집에서는 정말 좋은 아빠가 될 자신이 있다.”

Q. 다시 태어나도 배우란 직업을 갖고 싶은지.

“다른 직업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 ‘고3이 되고 싶다’란 생각은 한 번 해봤다. 수험생처럼 미친 듯이 공부를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수학문제를 풀어보고 싶고, 정석을 다시 한 번 풀어보고 싶고. 마치 그러면 만점을 받을 것 같고. 그래서 집에 예전 문제집이 있길래 언어영역을 펼쳐 첫 문제 보는 순간 다시 덮었다.(웃음) 지문이 생각보다 너무 길더라. 전혀 모르겠다. 괄호 집어넣으라는데 문제조차 이해를 못하니까, 이건 아니다 싶었다.(웃음)”

Q. 그렇다면 다시 태어나도 현 속해있는 BH엔터테인먼트로?

“당연하다. 손석우 대표가 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내가 놓고 싶을 때마다 끌어올려줬다. 내 은인이다. 재미있는 게 (손석우) 형이 은퇴한다고 한 지 10년이 됐다. 내가 왜 은퇴 안하냐고 물으면 ‘너 잘 되는 거 보고 가야지’ 했다. 근데 ‘태후’가 잘되지 않았나. 이제 은퇴에 대해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했다. 다시 물으니 ‘네가 이렇게까지 잘되는 거 보니까 나의 끝이 궁금하다. 어디까지 잘 될 수 있을지 그걸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웃음)”

Q. 너무 편애하는 것 아닌가.(웃음)

“맞다. 정말 편애다. (손석우) 형이 데뷔부터 지금까지 같이 한 배우가 나 하나 유일하니까, 다른 배우들은 모두 잘 된 이후에 만났는데 나는 무명 때부터 봐서 애착을 가지는 게 티가 나는 것 같다. 그래서 회식을 웬만하면 잘 안 간다. 나만 사랑받는 모습, 다른 선, 후배님들께 보여주고 싶지 않다.(웃음)”


Q. ‘태양의 후예’가 너무 잘 됐다. 그럴수록 배우로서 초조함도 생기지 않을까.

“감사한 게 나는 주변에 착하고 바보 같은 사람들이 많다. 소속사 대표, 매니저들, 배우들 등등. 내가 방심, 자만, 조바심을 낼 타이밍에 그런 많은 착한 바보들이 나보다 더 열악한 고민을 들고 찾아온다. 그런 고민을 들고 오면 그 친구의 상담을 해주다 술 한 잔 먹고 돌려보낸다. 그럴 때면 내가 하는 고민은 행복한 고민이라 느껴진다. 초조함을 느낄 여유가 없다. 그 중 가장 큰 바보는 소속사 손석우 대표.(웃음)”

Q. ‘올인’ ‘마더’ ‘태후’ 등 인생작들이 모였다. 앞으로 몇 편의 인생작들을 더 만나고 싶나.

“이미 충분하다. 이미 좋은 감독들과 작품들을 지나쳐 왔다. 난 안전제일주의라 항상 중간만 하자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중 가끔 ‘태양의 후예’처럼 위험하게 폭발하는 작품이 있는데 그것 역시 사는 재미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네’ 한다. 한류스타, 미남 배우란 수식어는 전혀 기대도 안한지 10년이 넘었다. 그런데 잘 되니 그런 수식어도 가끔 듣는 것 같아서 좋다. 하지만 난 연기만 하면서 조용히 사는 게 좋다. 그러다보면 시끄러운 사람이 될 수도, 조용한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중립을 지키는 게 나에겐 가장 중요하다.”

Q. 일과 삶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 하다. 크게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 것 같고. 배우로서 목표하는 지점이 있나.

“죽을 때 까지 연기하는 게 최종 목표다.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에서 맡는 역할이 작아질 것이고, 체력도 약해질 것이고, 여러 가지 힘들겠지만 그 나이에 맞는 역할을 감사할 줄 알면서 죽을 때까지 상실감 없이 연기하는 게 내 꿈이다.”

“더불어 좋은 사람으로 기억에 남고 싶다. 작품 속에서 선한 연기를 하든, 악한 연기를 하든, 나를 좋은 인간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죽고 나서도 내 자식이나 가족들이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배우’가 아닌 ‘사람’이 되고 싶다.”

Q. 인터뷰를 끝맺으며. 소망 한 마디 부탁한다.

“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잘 안 됐으면. 영화 ‘프리즌’ ‘원라인’ 다 잘 됐으면. 한국 영화여 부활하라! 방화(邦畵/‘외화’의 반대말, 국산 영화) 파이팅!(웃음) 이번 영화 ‘원라인’, 범죄 오락 영화지만 묵직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관객 분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오셔서 묵직하고 따뜻한 것을 얻어가셨으면 좋겠다.”

‘공각기동대’가 잘 안 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프리즌’은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말할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될까. 그의 솔직하고 이유 있는 마지막 발언이 묘한 동질감을 갖게 했다.

이상하게 편애하고 싶더라니. 강석우 대표의 진구를 향한 ‘믿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진득하고 묵묵히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아가는 그의 방향성은 상당히 믿을 만하기에. 감추려하지 않는 진솔하고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내편으로 만들 줄 아는 단단하지만 유한 배우 진구, 그것이 진구가 바라는 좋은 배우 이전의 좋은 사람이기를.

한편 영화 ‘원라인’은 3월29일 개봉,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사진제공: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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