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침묵’ 최민식, 오욕칠정을 다시 꾸미다

입력 2017-11-02 09:00   수정 2017-11-02 14:52


[김영재 기자] “드라마를 계속 하고 싶다”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2’에서 장동선 박사는 과학의 장점으로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를 꼽았다. “증거가 반대로 나오면 내 의견이 달랐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어 그는 진실은 늘 알 수 없다는 가정에서 시작하기에 과학을 공부하면서 겸손을 배운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과학과 연기는 하나의 연결 고리를 지닌 듯하다. 고리는 겸손에 바탕을 둔 학습이고, 논거는 후배에게도 배움을 탐하는 배우 최민식이다.

최민식은 영화 ‘침묵(감독 정지우)’ 언론시사회에서 ‘자극’ ‘배우다’ 등의 단어를 활용하며 류준열, 이하늬 등을 칭찬했다. 시사회 현장을 언급하자 그는 “누군가에게 자극을 받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해내는 후배나 휘뚜루마뚜루가 없는 정지우 감독을 보면 ‘정신 차리자’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라며 자극을 강조했다. “나이와 경력에 관계없이 배운 것은 배웠다고 해야 한다. 정말 배웠으니까. 자극이 곧 배움이다.”

최민식의 데뷔작은 1989년 개봉한 영화 ‘구로 아리랑’이었다. 영화 데뷔 28주년의 대배우는 여전히 신인 시절처럼 동료 배우의 자극을 인정하고, 심지어 자극의 시작점이 후배라는 것에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있다. 장년의 노쇠든 청년의 미숙이든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일뿐 실제 겪어보면 다른 결과가 닿을 수 있다는 뜻을 가진. 생각은 하되 실천은 어려운 그것을 최민식은 깨달았고, 이미 실행 중이었다.

여전히 겸손 속에 배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최민식이 ‘침묵’으로 돌아왔다. 10월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길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취재진을 마주하며 “마지막이라고 알고 있다. 피치(Pitch)를 (올리겠다). 마지막이니까 인저리 타임을 충분히 갖고 여유 있게”라는 말로 문답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한정된 날짜 속 매 시간 진행되는 인터뷰의 맨 마지막 시간. 지칠 법도 한데 그는 중년의 힘을 과시했고, 50분으로 예정된 인터뷰는 1시간이 넘도록 지속됐다. 주심 재량에 따른 추가 시간인 인저리 타임. 그와의 인터뷰는 인저리 타임도 부족할 만큼 열띠게 진행됐다.


24일 언론시사회에서 ‘침묵’을 본 소감을 묻자 최민식은 “하도 많이 봤다”라는 말과 함께 객석에서 휴대폰 불빛이 얼마나 새어나오는지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극장 안의 공기를 봤다. 불빛이 보이면 영화가 산만하다는 뜻이니까.” 더불어 그는 “배급관에서 봤다. 박수가 나오더라. 이야기를 잘 따라가셨다는 생각에 안도했다”라며, “그렇지만 개봉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경계의 고삐를 늦춰선 안 된다”라고 했다.

“냉혹하리만큼 표창이 날아올 수도 있”는데 갈채 속에 시작을 알린 ‘침묵’은 약혼녀 유나(이하늬)가 살해당하고 그 용의자로 자신의 딸 임미라(이수경)이 지목되자, 딸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사건을 쫓는 남자 임태산(최민식)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최민식은 언론시사회에서뿐 아니라 인터뷰 현장에서도 ‘침묵’의 제목을 단편 소설에 비유했다. “상투적이고 촌스러운 느낌의 제목이다. 삼성단문고인가? 하여튼 학창 시절에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봤던 단편 소설 느낌의.” 제목뿐 아니라 ‘침묵’은 영화의 부피 역시 단편 소설처럼 작다. 하지만 내용은 매우 옹골지다. 그럼에도 영화 ‘명랑’ ‘루시’ ‘대호’ 등 스케일 큰 영화 대신 ‘침묵’을 택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지 알고 싶었다.

“작품 선택에 스케일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돈이 많이 들어가는, 제작비가 엄청나게 투입된 큰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은 그만큼 부담도 많이 된다. 크기 때문에 영화에 출연하는 기준은 없다. 단지 내가 끌리는 이야기와, 끌리는 인물에 충실할 뿐이다.”

최민식은 이 같은 기준 아래 굳이 ‘침묵’을 택한 요인으로 정지우 감독과 용필름 임승용 대표를 소개했다. 최민식은 정지우 감독과 영화 ‘해피엔드’를 통해 감독과 배우로서 마주했던 바 있고, 임승용 대표와는 ‘올드보이’를 통해 만났던 바 있다. “옛날 전우들을 다시 만나 뭔가 모사(謀事)를 꾸며본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기뻤다. ‘이거 정말 재미지겠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임승용 대표가 중국 원작 ‘침묵의 목격자’를 들고 나오면서 일이 시작됐다.”


정지우 감독과 최민식은 ‘침묵’을 통해 18년 세월을 지나 재회했다. 최민식은 “그대로에서 더 업그레이드가 됐다”라며 전우를 높이 칭찬했다. “‘해피엔드’ 때의 모습에서 더 업그레이드됐다. 여유도 생겼다. 완성본은 아니지만 다 같이 모여서 시사도 하고, 배우들 의견도 들어보는 여유. 하여튼 좋았다. 18년이 짧은 세월인가. 그런데 여전했다. 더 편안해졌다. 배우가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배려를 많이 해준다는 이야기다. 배려가 감사했다.”

까놓고 말해 ‘침묵’에는 반전이 있다. 그리고 그 반전은 어떤 시선에서는 관객을 납득시키지 못한다. 최민식은 이를 두고 “이게 사실 우리의 딜레마였다”라고 했다. 살해된 약혼녀, 용의자가 된 딸 그리고 가장 완벽한 날 모든 것을 잃은 한 남자. 남자는 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백방으로 나서고, 이에 변화되는 임태산의 심리를 대중이 받아들일지 안 받아들일지는 대중의 몫이라고 최민식은 힘주어 말했다.

또한, 최민식은 딜레마에 봉착했을 때 ‘하필이면 이렇게 골치 아픈 것을’이란 생각을 했다고. 하지만 감독의 생각을 듣고 확신이 생겼고, 시나리오를 토론하면서 확신이 굳어졌단다. “사랑을 받는 아버지이자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남자로서 돌아오는 이야기다.”


최민식의 2017년 영화는 ‘침묵’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4월 영화 ‘특별시민’에서 변종구 역을 선보였다. 취재진이 두 영화 모두 성공한 중장년이 등장한다고 말문을 열자 최민식은 “교집합이 있다”라고 동의했고, 주인공의 모습을 썩은 모습이라고 표현하자 “푹 썩었다”라는 말로 공감했다. 관객이 유사성에 피로감을 느끼진 않을지 걱정하자 최민식은 “우려는 없었다. 만약 민감하게 반응했다면 이런 장르의 작품을 안 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최민식이라는 육체, 물리적 몸뚱어리가 하는 것이기에 교집합이 있을 순 있다. 그런데 크게 우려하진 않았다. 그것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특별시민’이라는 드라마와 ‘침묵’이란 드라마가 결국 풍기는 냄새와 드라마가 다르니까. 장애 요인은 아니었다.”

또한, 최민식은 그가 출연한 영화가 연상되는 것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것을 피하려고 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민감하게 반응을 하다보면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캐릭터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어느 순간 기준이 생긴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 기준일 것인가.”

이어 그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들이 나로 인해 파생되는 것을 소비하는 일은 자유다. 내 손을 떠난, 활시위를 떠나버린 현상에 대해서는 집착하고 싶지 않다. 집착한다고 한들 뜬구름일 뿐이다”라고 체념 혹은 대배우의 정답을 안겼다.


이와 관련 활시위를 떠나버린 활 중의 하나인 최민식 영화의 대사는 풍자나 패러디의 요소로 누리꾼에게 애용되곤 한다. ‘신세계’의 ‘이러면 완전히 나가린데’ ‘너, 나하고 일 하나 같이 하자’라든지,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가 그 예. ‘명량’의 ‘전하 아직 신에게는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및 ‘올드 보이’의 명대사 ‘누구냐 너?’는 영화를 요약하지만, 나머지는 어쩌면 일상적으로 지나갈 수도 있는 대사다.

대사를 직접 입으로 표현한 배우로서 최민식은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고 회자됐을 때 대중이 대중 문화를 재소비하는 어떤 하나의 오락적 면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재밌다고 생각한다. 내가 잘한 것보다 워낙 맛있는 센텐스(Sentence), 다이얼로그(Dialogue)가 상황에 적절히 녹아들었다고 본다. 관객이 말 자체를 인상적으로 소비했던 것 같다. 그래서 패러디로 재생산하면서 오락적 재미를 느끼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 인터뷰에서 ‘서울의 달’과 ‘쉬리’에서 호흡을 맞췄던 바 있는 배우 한석규는 ‘명량’이 약 1,700만 관객을 모은 것에 대한 생각을 묻자 최민식을 “민식 선배”라고 호칭하며 그가 흥행에 행복을 느꼈냐고 반문했다. 많이 물어보고, 또 배우는 많이 답했겠지만 동료 한석규의 입을 빌어 최민식에게 다음을 질문했다. “‘명량’으로 인해 행복했는가?”라고.

그는 호쾌하게 “맞다. 행복했다”라며 답을 시작했다.

“배우 입장에서는 본전 아닌가. 잘해봤자 본전. 성웅이다, 성웅. 잘 된다는 보장이나 확신이 사실 없었다. 그런데 하고 싶었다. 과연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던 분의 신념이 어디서부터 나오는지 궁금했고, 알아보고 싶었다. 그냥 그런 순수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터질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역사가 스포일러였다. 주변에서도 굳이 해야 될 필요가 있는지 말렸다. 준비를 위해 난중일기도 읽어보게 됐고, 역사 공부하시는 분과 말씀을 나눠보기도 했다. 얻는 게 많았다.” 최민식. 그는 행복을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한 배우였다.


약 1시간이 지나고 관계자가 마무리를 종용하자 최민식은 “자, 라스트. 라스트. 라스트”라며 추가 질문을 안내했고, 취재진 중 절반 이상이 손을 들어 현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물어도, 물어도 아직 더 묻고 싶은 것이 많은 배우 최민식. 그는 욕심나는 배역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욕심이 많다.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을 찾아야 한다”라고 답을 시작했다.

“인간사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다루는 뻔할 수 있는 이야기가 어떤 사람이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180도 달라진다. 우리가 늘 느껴온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의 사람, 다시 재조각해서 자신의 주관을 담아내는 친구와 작업을 하고 싶다.” 더불어 그는 “드라마를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호러나 스릴러 아니고 드라마. ‘꽃피는 봄이 오면’ 같은 작품일 수도 있고, 그냥 드라마를 하고 싶다”라고 갈증을 힘주어 말했다.

‘침묵’은 최민식의 몇 번째 드라마일까. 아마 다섯 손가락으로 셈할 수 없는 숫자의 드라마가 최민식 필모그래피에 자리 잡고 있을 테다. 그럼에도 최민식은 드라마를 갈구했다. 장르로서의 드라마가 가지는 특징은 현실이다. 현실적 인물이 등장해 현실적 사건을 다뤄 객석이 쉽게 이해토록 돕는다. ‘침묵’이 최민식 필모그래피 중 몇 번째 드라마이든 현실에 무게 중심을 더 쏟고 싶은 그의 의지가 전달된다. 이 가운데 다섯 욕심과 일곱 감정을 작품마다 다르게 표현하고 싶다는 최민식의 바람은 ‘침묵’에서 반전을 통해 드러난다.

기자는 ‘침묵’ 관람 후 작품에서 가을과 소주를 떠올렸다. 현실의 씁쓸함과 쌉쌀함, 그리고 최민식의 의지와 바람을 만날 준비가 되었는가. 영화는 11월2일부터 상영 중이다. 15세 관람가. 손익분기점 225만 명. 순제작비 63.9억 원.(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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