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침묵’ 박신혜, 틈이 없기에 사람다운

입력 2017-11-04 12:30   수정 2017-11-04 20:12


[김영재 기자] “얻을 수록 감당해야 하는 무게도 커진다”

인터뷰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서로 간의 접점을 찾아가는 한정된 시간 혹은 행동을 이르는 단어다. 사전적 의미는 다를지라도, 기자가 생각하는 인터뷰는 그렇다. 한 편에서는 질문이, 다른 한 편에서는 대답이 마치 탁구대 위의 공처럼 오가는 가운데 말을 하는 모두는 저마다의 향(香)을 타인에게 풍긴다. 그것은 향기일 수도 있고, 악취일 수도 있으며, 한 사람을 어느 한 쪽으로 특징지을 수 없는 경계선 위의 향일 수도 있다.

취재진은 배우 박신혜에게 “틈이 없어 보인다”라는 말을 건넸다. ‘틈이 없다’. 이것이 영화 ‘침묵(감독 정지우)’ 개봉에 앞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문득 터져 나온 박신혜의 향이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경계선 위의 향. 특징이 있기에 무향(無香)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향을 그는 취재진에게 전달했다. 이에 박신혜는 놀란 표정과 함께 “틈 정말 많다”라며 인터뷰를 할 때는 그 틈을 숨기려고 노력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브라운관에서 다수의 활동을 펼친 박신혜는 ‘캔디’ ‘정의’ ‘당돌’ 등의 단어로 요약되는 인물로서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현실의 박신혜 또한 이와 유사할 것이라 지레 짐작했던 것이 사실. 그러나 실제 박신혜는 예상처럼 비슷하고, 또 예상 밖으로 달랐다. 연기 생활 15년 차에 접어든 전문가는 콕 집어서 말할 수 없는 무형의 기운을 안고 있었달까.

비록 한정된 시간이었지만, 만족스러운 인터뷰였다. 박신혜는 ‘침묵’ 이야기가 나오면 눈을 반짝거리며 기억 보따리를 망설임 없이 풀었고, 어떤 질문이든 단답 대신 말에 살을 붙이는 노력을 더했다. 그럼에도 ‘틈이 없다’라는 그의 향은 인터뷰가 끝난 뒤 삼청동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내내 기자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간의 배역과 독립된 개체인 박신혜를 10월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길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박신혜는 배우 최민식과의 작업이기에 긴장을 많이 했다고 ‘침묵’의 촬영 현장을 회상했다. ‘침묵’은 약혼녀 유나(이하늬)가 살해당하고 그 용의자로 자신의 딸 임미라(이수경)가 지목되자, 딸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사건을 쫓는 남자 임태산(최민식)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지난 1999년 ‘해피엔드’를 빚어낸 정지우 감독과 최민식의 재회로 화제를 모았다.

박신혜는 ‘침묵’을 택한 이유로 두 사람을 꼽았다. “정지우 감독님은 인물 감정의 섬세한 표현을 워낙 잘하는 감독님이시다. 또 최민식 선배님은 그 이름 세 글자가 장르인 분이시다. 때문에 두 분을 만나서 내가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앞서 27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최민식은 정지우 감독이 과거보다 업그레이드 됐다고 알렸던 바 있다. 편집본 시사를 통해 배우들에게 의견을 묻는 여유를 지녔다고. 이를 언급하자 박신혜는 “원래 편집 과정에서 편집본을 보여주시는 감독님은 거의 안 계신다. 처음이었다”라며 당시의 놀라움을 전한 뒤, “경우의 수를 많이 경험했다”라고 밝혔다.

“역할이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여러 가지 제시해주셨다. 컷을 거듭해 가면서 안에서 생기는 답이 굉장히 다양하더라. 많은 컷을 가면서 여러 가지를 많이 시도했다. 감정을 예로 들자면 50에서 100으로, 다시 30으로 오가는 과정이었다.”

“같이 법정에 서 있는 모습을 생각했을 때 상상이 잘 안 됐다”라는 말을 하게끔 만든 주인공인 최민식은 실제 만났을 때 따뜻한 사람이었단다. “정말 따뜻한 분이셨다. 모든 후배를 한 번에 감싸안으시는 느낌을 현장에서 굉장히 많이 받았다. 개인적으로 선배님만 보면 달려가고 싶더라. 재밌는 이야기를 부탁하고 싶은 산타 클로스 같은 분이셨다.”


또한, 박신혜는 영화계에 적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침묵’에 출연했다고 전했다. “전에는 영화 현장에 익숙할 때쯤, 아니면 익숙해지기도 전에 촬영이 끝났다. 회차가 적으니까 익숙해질 수 없더라. 과거에는 한 걸음 또 한 걸음 영화마다 발을 담군 횟수를 늘리고자 했다면, 이번에는 한 작품 자체에서의 횟수를 늘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침묵’을 선택했다.”

‘침묵’에서 박신혜는 임태산의 딸 임미라를 변호하는 최희정 변호사를 연기했다. “캐릭터 최희정과 같은 따뜻하고 정의로운 태도가 박신혜에게도 존재했다”라는 정지우 감독의 말처럼 박신혜는 ‘침묵’에서 그간 그가 맡아온 역할처럼 정의(正義)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박신혜는 브라운관 아닌 스크린에 서있는 그의 모습을 객석이 어색하게 느낄까봐 걱정했지만, 관람 후기를 읽고 안도했다고. “‘스크린에서 모습이 어색하진 않았다’라는 글을 보면서 조금의 위안을 얻었다.” 물론 어색하진 않은 연기를 그가 선보인 것은 맞다. 게다가 상대 역은 대배우 최민식 아닌가. 그럼에도 어쩌면 동어반복으로 느껴질 수 있는 박신혜의 연기는 그를 응원하는 이로 하여금 새로움을 갈구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주인공 임태산에게 극이 집중되기 위해 영화 속 최희정은 전사(前史)와 후반부 신마저 삭제됐다는 후문이다. 어쩌면 동어반복이라는 평이성은 박신혜가 펼친 한 폭의 그림 중 일부가 삭제됐기에 느끼는 부정일 수도.

박신혜는 성공을 향한 욕심보다 신념에 집중해 구청 법률 센터 등에서 일하는 최희정의 전사가 삭제된 것은 아쉽지만, 분량에 대한 안타까움은 없다고 긍정했다. 더불어 전사가 삭제되면서 영화 시작 후 약 20분이 지나서야 등장하는 것은 아무렇지 않아도, 종반부 김동명(류준열)과 만나는 신이 삭제된 것이 아쉽다고 했다. ‘침묵’에는 반전이 있다. 그렇기에 박신혜는 반전의 비늘을 건드리지 않는 적정선을 취재진에게 알리며 활짝 웃었다.


‘침묵’에서 박신혜는 누군가의 변호사에 불과했지만, 브라운관에서의 박신혜는 역(逆)으로 주체가 되는 누군가를 다수 맡았다. SBS ‘미남이시네요’의 고미녀, ‘상속자들’의 차은상, ‘피노키오’의 최인하, 최고 시청률 21.3%(닐슨 코리아 기준)에 빛나는 ‘닥터스’ 유혜정까지. 시쳇말로 모두 대박을 터뜨린 드라마다. 그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궁금했다.

“읽다 보면 손에 들려있는 책이 꼭 있더라. 감사하게도 좋은 책을 많이 받는다. 읽다 보면 왠지 내 옆에도 있을 것 같은 우리네의 모습을 그린 책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다.” 이에 흥행을 이을 차기작을 물으니 박신혜는 ‘침묵’을 꺼냈다. 영화의 피드백을 받아야 차기작을 정할 수 있겠단다. “(류)준열 오빠가 대단하다. ‘침묵’ 찍으면서 ‘택시운전사’도 하고 있었고, 지금도 ‘독전’ ‘리틀 포레스트’까지. 나는 다작이 안 되더라. 너무 아쉽다.”


SBS ‘천국의 계단’으로 연기 데뷔를 알린 박신혜는 2017년 15년 차 배우가 되었다. 잃은 것과 얻은 것은 무엇일까. 그는 “잃었다는 생각은 싫다. 잃었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프다”라는 말로 쓸쓸함을 잠시 드러낸 후, “그로 인해서 얻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고 싶다”라고 잠시 숨고르기를 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런 것이다. 요새 SNS가 너무 발달해서 자유가 없어졌다. 휴대폰부터 들이미는 세상이 되었다. 아쉽지만, 익숙해질 것이다.”

취재진이 “거리에 나설 때 휴대폰 들이미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라고 확인하자 박신혜는 대중이 알아보는 것은 익숙하지만 합의되지 않은 촬영은 꺼려진다고 강조했다. “문자 보내는 척 하시지만, ‘도촬(도둑 촬영)’은 다 티가 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죄송하다며 휴대폰을 손으로 막는 경우도 많았다. 웃기고 또 슬픈 이야기다.” 그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15년 차 배우가 얻은 것은 커리어란다. “한류 배우의 타이틀도 얻었고, 수식어도 많이 붙었다.” 영향력 역시 그가 얻은 것이라고 밝혔다. “내 드라마와 영화 덕분에 삶을 다시 살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편지를 써주시는 분도 계셨다. 또한, 좋은 일에 동참했을 때 이를 더 많이 알릴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 가운데 박신혜는 ‘상속자들’의 부제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를 언급하며 무언가를 얻을 수록 감당해야 하는 무게 역시 커지는 것 같다고 고민을 전달했다.

새삼 박신혜의 향 ‘틈이 없다’가 떠오른다. 그리고 배우 고유의 향이 왕관의 무게를 견디기 위한 노력 가운데 생겨난 부산물이자, 인내의 훈장이라는 결론이 머릿속을 스친다. 사실 ‘틈이 없다’란 향을 ‘향이 없다’로 곡해했다. 때문에 경계선 위의 향은 부정의 향으로 변질됐고,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깨닫는다. ‘틈이 없다’는 인간적 향인 것을.

‘틈이 없다’는 무게를 견디기 위해 완벽을 추구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또한, 감내(堪耐)는 미래지향적 동물 인간의 특징이다. 그래서 박신혜의 향 ‘틈이 없다’는 사람다운 향이다.

그는 ‘침묵’이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영화로 남을 것인지 묻는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경우의 수를 참 많이 알려준 영화이자, 내재된 감정을 얼마나 사용할 수 있을지 연기의 한계에 도전한 영화라고 소개했다. 사람다운 향의 주인공 박신혜가 마지막까지 부딪힌 영화 ‘침묵’은 11월2일부터 상영 중이다. 15세 관람가. 손익분기점 225만 명. 순제작비 63.9억 원.(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솔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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