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있는리뷰] ‘캡틴 마블’, 마블식 페미니즘 (스포일러 포함)

입력 2019-03-20 14:00   수정 2019-04-03 23:36


[김영재 기자] 3월6일 ‘캡틴 마블’이 개봉했다.

★★★☆☆(3.1/5)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는 슈퍼 히어로 간의 연속된 세계관이 책을 떠나 스크린에서도 존립 가능함을 보여줬다. 상업 영화의 클리셰는 따르되 작품 개개가 저마다 다른 콘셉트를 주장하는 게 주효했다. 이를 테면,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블랙 팬서’는 둘 모두 영웅 탄생의 서사를 그리되 그 결이 다르다. 전자가 “고향, 가족, 평범한 삶” 등을 잃은 루저들이 생애 단 한 번의 단합을 위해 ‘우주의 수호자’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그렸다면, 후자는 오락 영화가 다루기에 다소 버거울 수도 있는 흑인 인권에 주목했다. 두 주인공 트찰라와 은자다카가 각각 마틴 루터 킹과 맬컴 엑스의 노선을 따른 것이다.

스페이스 오페라부터 시의성 띤 현대물까지. 카멜레온 MCU의 다음 차례는 페미니즘이다. 시대는 1995년이고, 이는 ‘퍼스트 어벤져’를 제외하면 가장 앞선 시대다.

크리 문명의 수도 할라. 비어스(브리 라슨)는 반복되는 꿈에 또 잠을 못 이룬다. AI 리더 슈프림 인텔리전스(아네트 베닝/이하 슈프림)는 고귀한 전사 크리족이 임무에 앞서 정신 단련을 위해 만나는 존재. 그는 스크럴 때문에 기억을 잃은 비어스를 향해 크리족의 “의무” 그리고 “이익”을 함께 언급한다. 그리고 크리족이 비어스에게 대단한 능력(Gift)을 줬다고 강조한다. 비어스에겐 다른 크리족이 가지지 못한 강력함이 있다. 스승 욘-로그(주드 로)는 비어스에게 손에서 불을 뿜는 대신 머리를 사용하라고 주지시킨다.

이 가운데 임무 수행을 위해 변방 행성으로 떠난 비어스는 스크럴의 간계에 빠져 C-53(지구)에 불시착하고, 지구에서 쉴드 요원 닉 퓨리(사무엘 L. 잭슨)과 함께 기억의 잔존을 한 데 취합하기 시작한다. “형태 변환자” 스크럴의 위협에도 불구, 점차 완성되어 가는 퍼즐은 과거 비어스가 지구에서 조종사 캐럴 댄버스로 활약했음을 가리키는데….


비어스는 1990년대 미(美) 비디오 대여점 ‘블록버스터’에 불시착한다. 영화 ‘트루 라이즈’에 출연한 배우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입간판은 비어스가 쏜 블래스트를 맞고 한 줌 재가 된다. 쇼핑몰 경비가 차에서 듣고 있는 음악은 솔트 앤 페파의 ‘와타 맨(Watta Man)’이고, 비어스는 지난 2015년 파산한 ‘라디오쉑’에 가서 닌텐도 ‘게임 보이’ 등을 재조립해 욘-로그와 우주 통신을 주고받는다. 인터넷 카페에 가서 구글 대신 ‘알타비스타’로 기억 속 술집을 찾는 비어스. 그가 훔친 티셔츠에는 나인 인치 네일스의 로고 ‘NIN’이 새겨져 있다.

가비지의 ‘온리 해피 왠 잇 레인즈(Only Happy When It Rains)’를 들으며 가게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2’가 있고, “내 AOL 암호를 원해(Want my AOL password)?” 하는 닉 퓨리도 있다. TLC의 ‘워터폴스(Waterfalls)’, 데지레의 ‘유 가타 비(You Gotta Be)’가 일상의 배경 음악으로 흘러나오는 것은 기본. 컴퓨터 주 저장 매체는 시디롬이고, 왜 파일이 안 열리냐고 하는 비어스에게 닉은 “로딩 중”이라고 짤막히 말한다.

말 그대로 ‘1999년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이다. 닉이 아직 안대를 차기 전, 6년 차 쉴드 요원은 크리족 전사 비어스를 만난다. 제작진은 CG를 이용, 닉 퓨리뿐만 아니라 영화 ‘어벤져스’에서 로키에게 희생당한 필 콜슨(클락 그레그)의 신입 시절까지 재현해냈다. 만 70세의 노배우가 중년의 닉 퓨리를 연기하는 게 이색 포인트. 표정도 자연스럽다. 반면 필 콜슨의 표정은 로봇을 보는 듯하다. 어색한 CG가 그의 수줍은 듯 얕은 미소를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한 탓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로난(리 페이스)과 코라스(디몬 하운수)도 거꾸로 돌아간 시곗바늘의 힘을 빌려 재등장한다. 하지만 마블스튜디오는 무자비하다. 두 배우 모두 전작에 비하면 비중 없는 배역으로 출연, 후속작을 기약하며 퇴장한다.

90년대 영화답게 ‘캡틴 마블’은 각종 그때 그 영화들을 한 자리에 집합시킨다. 욘-로그와 대련하는 비어스의 모습은 클리셰지만, 영화 ‘매트릭스(1999)’에서 네오와 모피어스의 가상 대련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비어스에 의해 박살난 우주선이 진공 상태가 되는 신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스파이더맨이 언급한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를 생각나게 한다. ‘에이리언2’에서도 ‘에이리언4(1998)’에서도 에이리언은 압력을 못 이기고 우주 밖으로 아스라이 사라져간다. 할머니로 변신한 스크럴과 전투하는 비어스의 모습은 또 어떤가. 쳐다보는 즉시 상대를 복사하는 모습은 ‘터미네이터2(1991)’ T-1000의 특기가 아니던가.

열차 지붕에서 추격전을 벌이는 비어스를 보면 ‘미션 임파서블(1996)’에서 TGV 지붕에 매달린 이단 헌트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주인공이 오토바이와 가죽 재킷을 훔치는 일은 ‘터미네이터2’ T-800의 행동과 흡사하다. 흑인 닉 퓨리가 백인 동료와 함께 운전하는 신과 탈로스가 음료수를 마시며 등장하는 신은 ‘펄프 픽션(1994)’에서 배우 사무엘 L. 잭슨이 연기한 그것의 오마주다. 마침 영화마다 극 중 등장인물이 내뱉는 욕설로 유명한 사무엘 L. 잭슨은 이번 영화에서 구스를 향해 ‘이 망할 플러큰(Mother Flerken)’까지 크게 외친다.

다른 MCU 영화가 떠오르는 신도 여러 개다. 손에서 나오는 블래스트를 비행에 이용하는 캐럴의 모습은 아이언맨의 첫 비행과, 주인공이 판초스 바에서 기물을 파손하는 신은 토르가 “한 잔 더”를 외치며 잔을 깨는 것과, 비어스와 닉 퓨리가 기록실에 잠입하는 장면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서 두 남녀 주인공이 초기 쉴드 기지에 들어서는 것과 유사하다. ‘할라’ ‘토르파’ 등으로 배경이 이동될 때마다 등장하는 하단 자막은 앞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장소 전환마다 삽입되는 자막과 사용법과 형태 등이 같다.

그러나 90년대 액션 영화를 인용해 소소한 재미를 만드는 것에 그칠 뿐이다. 스파이더맨이 닥터 스트레인지를 고문 중이던 에보니 모를 진공 상태를 이용해 우주 미아로 만드는 일이 흥미롭지 관객의 ‘에이리언’ 인식 여부는 하등 중요하지 않다. 그 점에 있어 ‘캡틴 마블’은 악수를 두고 있다. 대련만 따왔을 뿐 스승과의 유대는 없고, 고가 다리를 달리는 열차 위에서의 추격은 비어스가 웬만한 충격에도 끄떡없는 크리족인 탓에 박진감이 덜하다. 이단 헌트는 열차에서 떨어지면 죽겠지만, 비어스는 아마 옷에 먼지를 훌훌 털 테다. 그리고 T-1000이 무서운 이유는 그가 ‘냉정한 복사기’이기 때문이었다. 반면 스크럴은 크리족에게 쫓기는 난민임이 극 중반 드러나며 그간의 긴장감을 단번에 휘발시킨다.

특히 ‘터미네이터2’는 일명 ‘액체 로봇’ T-1000과 구형 터미네이터 T-800의 대비, 즉 악역과 선역의 확실한 비교와 상대적으로 약세에 놓인 주인공이 적을 어떻게 물리칠 것인지가 흥밋거리였다. 반면 후에 캡틴 마블이 되는 비어스는 너무 강한 게 문제다. 테서렉트에서 가져온 광속 엔진의 동력을 온몸으로 흡수한 비어스 앞에서는 스타포스 사령관 욘-로그는 물론, 행성을 초토화시키는 로난의 공병대조차 속수무책일 뿐이다.

캡틴 마블의 강력함은 두 가지 문제를 만들어낸다. 하나는 캡틴 마블이 사용하는 무기 포톤 블래스트가 결국은 인간이 쏘는 거대한 레이저 빔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인물 간의 합이 존재할 수 없을 뿐더러, 액션 신에서 호쾌함을 제외한 타격감 등을 느낄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다른 하나는 빌런의 무효화다. 욘-로그는 비어스를 속였으나 개인의 악날함보다 크리족의 안녕에 집중하는 인물. 순간의 변명에 급급한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이기보다 주인공 성장에 도움을 주는 어리벙벙한 상관이다. 앞서 언급한 비어스와 욘-로그 간의 느슨한 유대 때문에 관객은 그의 거짓말이 밝혀지는 순간, 놀라움보다 당연함을 느낀다. 또한, 정서적으로 무효화된 악역 욘-로그는 캡틴 마블이 쏜 포톤 블래스트에 바위에 내리꽂히며 물리적으로 무효화되기까지 한다. 낙제점에 가까운 액션 신은 해마다 두 편 내지 세 편이 개봉하는 마블 영화에 대해 관객이 피로도 호소를 부르짖게 만든다.


하지만 90년대 액션 영화의 맛보기 인용, MCU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는 시시한 빌런, 정도를 넘는 주인공의 강함에도 불구하고 ‘캡틴 마블’에 주목해야 이유는 이 작품이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처럼 작품 해석의 힘을 관객에게 안기는 것에 있다.

특히 ‘캡틴 마블’은 페미니즘에 주목한다. 카트 사고를 낸 어린 캐럴에게 아버지는 “여긴 네가 올 곳이 아니다(You don’t belong out here)”고 고함친다. “오빠는 운전하게 했으면서” 하는 아이의 울먹임을 보면 아버지는 아들의 카트 운전은 큰 문제 삼지 않은 모양. 밧줄 타기 중 떨어진 훈련병 캐럴을 보고 동료들은 응원은커녕 “넌 날 수 없어”, “여잔 조종석에 안 어울려” 등의 비아냥만 던져댄다. 이는 사회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일부 여성의 경우를 보여주고, 또 사실이다. 배우 브리 라슨은 캐럴의 모티프가 된 1993년 미 공군 최초 여성 조종사이자 전투 부대 첫 여성 지휘관 지니 M. 리빗 준장과 훈련을 같이 하기도 했다. 전투기를 몰지 못한 극 중 두 조종사의 고뇌는 지극히 현실적 고민이었다.

여성이 남성 못지않다는 주장은 극 내내 등장한다. 공군 시절 캐럴의 친구 마리아 램보(라샤나 린치)의 딸 모니카 램보(아키라 아크바)는 캐럴에게 과거 할로윈 때 사진을 자랑하며 그는 아멜리아 에어하트를, 캐럴은 재니스 조플린으로 분장했다고 자랑한다. 아멜리아는 여성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이다. 재니스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등 음악계에 영향을 끼친 여성 싱어송라이터다. 정의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 여성과 남성을 비교하기도 한다. 웬디 로손으로 위장한 크리족 출신 마-벨(아네트 베닝)의 연구 목적은 크리족과 스크럴과의 부끄러운 전쟁을 끝내는 것이고 때문에 그는 광속 엔진을 빼앗기기보다 부수려 하지만, 욘-로그가 쏜 총에 심장을 관통 당한다. 전쟁의 부끄러움을 깨닫는 이는 여성이나, 진실의 추악함을 감추는 자는 남성이라는 암시가 담겼다. 마리아가 미네-르바(젬마 찬)의 우주선을 격추하는 신은 그 의도가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슈프림이 그 사용을 허락도 안 해줄 능력(포톤 블래스트)을 왜 자신에게 줬는지 묻는 비어스에게, 욘-로그는 충동을 다스리라고 조언한다. 여기서 포톤 블래스트는 사회가 ‘남성다움’으로 규정한 것들, 이를 테면 수염이나 굵은 목소리 같은 선천적 신체적 특징이 아닌 ‘진취’ ‘주도’ ‘권위’ ‘용기’ 등을 뜻한다. 여성(비어스)은 그것의 사용법을 이미 알고 있으나, 사회(슈프림)는 여성이 갖고 있는 그 남성다움을 그의 통제 아래 사용하길 원하는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욘-로그의 “충동을 다스려”라는 대사 중 ‘충동’은 ‘반성 없이 행위를 하는 경향. 원시적 반응, 폭발 반응, 동기 없는 행위 따위에서 볼 수 있다’로 설명되는 단어로, 그 사용은 비어스에게 내재된 ‘남성다움’의 발현을 심리적으로 제한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다시 말해 욘-로그의 충고는 남성과 사회의 가시 돋친 조언인 셈이다.

또한, 슈프림은 대상이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게 보통. 하지만 기억을 잃은 비어스에게 슈프림의 외형은 그가 존경하는 이에게서 따왔음에도 그 이유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이다. ‘캡틴 마블’에서 슈프림은 사회 혹은 그 규범으로 은유되는데, 그렇다면 여성에게 사회 규범은 과거에는 존경했으나 혹은 과거에는 존경해야 한다고 교육 받았으나 지금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는 허상으로 종합된다. 슈프림은 비어스에게 “우리는 네게 대단한 재능(Gift)을 줬어” 하지만, 그 능력은 실은 비어스가 캐럴 댄버스였던 시절 본인의 희생과 용기로 얻은 우연한 선물(Gift) 혹은 그가 본래 가지고 있던 재능(Gift)이고 슈프림이 발현을 막고 있는 상태일 뿐이다. 사회는 여성에게 재능(남성다움)을 줬다고 하나, 그 재능은 여성 본래의 것이고 실은 사회가 그것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극 말미 슈프림은 비어스를 찾아내 그들의 일원이 되게 했다고 말하지만, 비어스는 슈프림이 가족으로부터 친구들로부터 그를 훔쳤다고 말한다. 바꿔 말하면 사회는 여성이 사회에 소속됨으로써 그들이 평화와 안녕 그리고 안전을 보장 받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회적 관념(비어스 목에 붙은 통제 장치)에 바탕한 거짓―슈프림은 “넌 그 능력을 통제할 힘이 없지”, “우리 없이는 넌 약해. 무력하지” 등의 비방으로 비어스를 약하게 만든다.―일 뿐이다. 슈프림의 “넌 단지 인간일 뿐이야”는 어쩌면 사회의 “넌 단지 여성일 뿐이야”로 치환이 가능하고, “할라에서 넌 다시 태어났어, 비어스”란 슈프림의 대사는 사회가 바라는 모습으로 태어나고 살고 있는 여성을 향한 사회의 의미심장한 감탄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손에 쥔 반쪽 이름표를 확인 후 “내 이름은 캐럴이야” 하는 캐럴의 외침은 사람이기 이전에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짊어 진 여자, 친구가 엄마일 수 있도록 도와준 최고의 친구이자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한 파일럿, 똑똑한 이, 재밌는 이, 손에서 불을 뿜기 전부터 가장 힘 있는 사람’인 캐럴이 있다는 주장처럼 들린다.

그리고 이는 ‘여성스러움’을 요구 당하는 여자이기 이전에 사회의 구속이 없다면 성별에 묶이지 않는 능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여성이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마침 슈프림이 듣는 음악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강조한 너바나의 노래 ‘컴 애즈 유 아(Come As You Are)’. 비어스가 과거의 자신이 매 위기 때마다 부당한 타인의 시선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좇는 것을 통해 통제를 풀고 진정한 힘을 각성하는 모습은, 사회가 바라는 모습에 갇혀 그 진가를 모르고 지내는 어린 여성 ‘아무개들’이 혹은 어린 시절을 잊고 지낸 지금의 성인 여성 ‘아무개들’이 각성하길 바라는 ‘캡틴 마블’의 메시지이다.


하지만 ‘캡틴 마블’의 페미니즘은 한순간 잠시 발을 삐끗한다. 캡틴 마블이 “불쇼를 끄고 증명해! 네가 날 이길 수 있다는 걸 증명해” 하는 욘-로그를 쓰러뜨린 후 내뱉는 “난 네게 증명할 게 없어(I have nothing to prove to you)”란 대사 탓이다.

인간이라면 으레 가지고 있는 특징조차 손수 증명해야 하는 게 지금 사회의 여성이지만, 스스로 슈프림이 목에 씌운 통제를 깨고 그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게 된 캡틴 마블이, 그 이전부터 힘겨루기 상대가 안 되던 욘-로그를 포톤 블래스트로 한 방에 날려버리는 신은 통쾌하기보다 불쾌하다. 억압 받아온 그간의 시간, 혹은 진실을 숨긴 채 거짓으로 일관해온 욘-로그에게 속아온 시간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는 듯 손에서 ‘불’을 날린 캡틴 마블의 모습은 여성스러움에서 해방돼 ‘나’를 찾은 여성은 사회와 남성에게 그 우위를 자랑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는 그릇된 심상을 심어준다. 혹은 “난 네게 증명할 게 없어”란 대사로 말미암아 때론 폭력성을 보여줘도 상관없다는 것에 추측이 미치기도 한다.

현실에서 여성이 매 순간 마주하는 ‘증명의 순간’의 일부는 남성 역시 인생에서 늘 마주하는 순간이고, 그것은 곧 기회다. 또한, 여성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캡틴 마블’이 제공하는 용기는 영원할 것만 같던 족쇄에 굴하지 않고 인간의 보편적 가치 ‘평등’을 주장한 용기 있는 자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그렇다면 그 선물이 그간 자의든 타의든 여성을 억압해온 사회 및 남성을 향한 폭력 발현의 기회로 거듭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신체 조건이 다를 뿐 여성도 남성만큼 할 수 있으니 차별은 안 된다’는 옳지만, 마치 승전국이 약탈, 방화, 폭력 등으로 전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듯 ‘한남’ 등의 비하어로 남성을 지칭하는 일은 중도층이 여성 주권 회복에 응원을 보내기보다 조소를 보내게 만든다.

비아냥도 문제다. 특히 브리 라슨은 ‘마블의 아버지’로 유명한 만화가 스탠 리를 추모하는 SNS 글에 가방과 신발을 자랑하는 듯한 사진을 함께 올려 다수의 지탄을 받았다. 사망 전 일명 ‘미투 사건’에 휘말린 스탠 리의, 죽음을 비꼬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추측이 이어졌다. 더군다나 ‘캡틴 마블’은 MCU 인트로 영상이 ‘고마워요 스탠(THANK YOU STAN)’으로 방점을 찍는 스탠 리 추모 영상으로 대체된 영화. 그 지탄이 더욱 거셌다. 여성이 증명의 연옥에서 벗어나 그 가치를 회복하는 일은 옳은 일이나 일부 과격주의자들의 물리적, 언어적, 사회적, 직접적, 간접적 폭력은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크럴을 테러리스트로 규정 후 멸종까지 몰아붙인 크리족의 만행과 그 과격함이 흡사하다.


친구 마리아는 스크럴과 지구에서 같이 살면 안 되냐고 묻는 딸 모니카를 다음과 같이 타이른다. “여기는 그들에게 안전하지 못해, 모니카. 이모 말이 맞아. 그들은 ‘자신들의 집’이 필요해.” 아마 2019년의 몇몇 여성에게도 ‘캡틴 마블’은 ‘자신들의 집’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조심해야 할 점은 이 영화가 월트디즈니컴퍼니 산하 마블스튜디오가 제작한 영화라는 것. 다시 말해, 그들이 ‘캡틴 마블’에 페미니즘을 군데군데 입힌 이유는 매년 수억 달러를 안정적으로 벌어들이고 있는 MCU의 성공이 목적이지 슈퍼 히어로 남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이 어려운 어린 소녀들의 자긍심 고취가 이유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말이 있다. 자본은 순수하고, 또 순수하지 않다. 자본에는 의지가 없다. 자본가에게 의지가 있을 뿐이다. 작품에는 죄가 없다. 하지만 작품 속 그릇된 의도는 죄가 된다. 우리 모두 캡틴 마블이 그랬듯 ‘각성’한 관객이 되어야 하겠다. 그래야 영화사는 그 ‘돈’보다 더 주된 것에 집중할 테니 말이다. 3월6일 개봉. 12세 관람가.

(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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