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학생 인턴십에 대한 오해

입력 2019-09-09 17:14   수정 2019-09-10 00:10

인턴(intern)이란 용어는 원래 의료계에서만 쓰던 용어였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난 첫해에 하나의 전문 과목을 전공하기 전 여러 과목을 경험하는 수련의를 일컬었다. 그다음에 한 전문 과목의 전문의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는 수련의는 레지던트(resident)라고 부른다. 필자가 인턴 근무를 한 시절인 1980년대 중반의 인턴 과정은 말이 의사지 극한 직업에 속하는 직업군이었다. 사흘 밤낮을 한잠도 자지 못하고, 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들 정도로 일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사회 전반적으로 열악한 노동환경 영향도 있었겠지만 나름 전문가가 되기 위한 필수과정이라 생각하고 견뎌낸 것 같다.

인턴이란 용어가 일반인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그즈음인 것 같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수기 형식의 소설 <인턴 X>라는 책을 통해 대중에 확산됐다. 이후 국내 의학 드라마를 통해 인턴은 의사가 되는 전문가 과정이지만 군기가 센 조직 문화의 말단으로도 비치곤 했다.

의료계 밖에서 인턴이란 직종이 보편화된 시점은 외환위기 이후라고 한다. 일종의 수습사원으로,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국제기구나 비영리단체에도 인턴십(internship)이 있다. 대부분 인턴 과정을 통해 그 분야 일에 대한 경험과 인맥을 쌓도록 하고 나중에 정직원으로 채용한다. 몇 년 전 안식년 때 다녀온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많은 한국인 대학생 인턴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소득이 적었을 때는 외국에 나오기조차 힘들었는데, 그 사이 높아진 국력을 느낄 수 있어 뿌듯했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2000년대 들어 인턴이란 용어가 이상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름 친분이 있는 지인의 부탁이 많이 들어왔다. 자녀들에게 교육 목적을 위한 병원의 외국인 진료소, 장애인을 치료하는 재활치료실에서 봉사하거나 일할 기회를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좋은 일이니 흔쾌히 관련 부서에 소개하거나 필자가 일하는 곳에서 자원봉사할 기회를 주곤 했다. 자격이나 면허가 없는 학생들인지라, 환자 진료와 관련된 업무에는 참여시킬 수 없고 단순 통역이나 심부름 정도의 일밖에는 기회를 줄 수 없었다.

일정 기간 과정이 끝나고 나면 지인들은 처음 말과는 달리 모두 다 영문으로 된 인턴십 증명서를 요구했다. 매번 필자는 지인들에게 인턴십이 아니라 봉사활동일 뿐이라고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누구에게 들었는지 꼭 인턴십이란 표현과 영문 서명을 요구했는데, 서명하더라도 자원봉사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 몹시 실망하고 서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원봉사를 어린 자녀의 해외 유학을 위한 스펙 쌓기 도구로 여겼던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영문이라 기관장 직인이 찍힌 문서는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직업상 전공의 선발이나 보건 직종 채용에 면접위원으로 나선 적이 많다. 1990년대에는 학교 성적이 중요했는데 점차 토플, 토익 등 영어시험 점수 비중이 커지더니 너도나도 면접서류에 각종 자격과 자원봉사, 인턴 경력 등을 첨부하기 시작했다. 필자가 보기에는 직무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자격과 경력 심지어 잘못된 사이비 자격이나 불확실한 단체에서의 봉사, 인턴 기록까지 첨부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아이들에게 이런 쓸모없는 스펙을 쌓게 하느라 지원자 부모의 등골이 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상황을 보니 필자의 생각이 틀렸다는 느낌이 든다. 쓸모없는 스펙 쌓기가 아니라 입시에는 이미 입증된 효과적인 전략이었다는 점에서다.

성적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다방면의 재능을 평가해 학생을 선발하려고 도입한 다양한 입시제도가 낭비적이고 잘못된 인턴십 등 어린 학생들을 스펙 쌓기에 내몬 것 같다. 어린 학생이 할 수 있는 인턴십, 자원봉사 등의 개념부터 명확히 정리했어야 했는데, 덜컥 시행부터 하니 부작용은 쌓이고 사회는 혼란에 빠져들고, 그 와중에 정보에 빠르고 영리한 사람들만 덕을 봐온 것 같아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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