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산업혁명기의 혼돈, 자동화 시대에도 되풀이될까

입력 2019-09-19 17:26   수정 2019-09-20 00:59


“대도시의 점등 업무는 지나친 발전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1924년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사의 한 문장이다. 당시 미국 뉴욕시에선 600여 명의 점등원이 일했다. 거리 곳곳의 기름등과 가스등에 불을 붙이는 게 그들의 업무였다. 하지만 변전소가 제어하는 전기 가로등의 등장은 그들의 노동 가치를 떨어뜨렸다. 1920년대를 기점으로 점등원이란 직업은 자취를 감췄다.

그로부터 100년 후 자동차 운전기사들이 점등원과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2016년 12월 백악관이 발간한 보고서는 자율주행자동차가 상용화되면 미국에서만 220만~310만 개의 택시·버스·화물차 기사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시급 20달러 미만 일자리 중 83%는 자동화되거나 기계로 대체될 것이란 예측도 포함됐다.

영국 옥스퍼드대 마틴스쿨에서 기술 및 고용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경제사학자 칼 베네딕트 프레이는 <테크놀로지의 덫>에서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 가져온 사회 변동의 역사적 맥락을 짚어간다. 농업의 발명부터 영국의 산업혁명, 미국이 기술 주도권을 쥐기 시작한 2차 산업혁명, 새로운 컴퓨터의 시대를 거쳐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주축이 되는 자동화 세상을 그려본다. 기술이 한 단계씩 발전을 거듭할 때마다 이 같은 진전이 생계에 위협이 될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의 불안과 반발은 컸다. 영국 산업혁명기의 러다이트(기계 파괴운동)까지 갈 것도 없다.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의 2017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85%가 ‘로봇의 부상’을 제한하는 정책에 찬성했다고 한다.

긴 역사를 돌아보면 산업혁명은 ‘결정적인 순간’이었지만 당시 그 영향력을 짐작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그때와는 또 다른 기술 혁명을 마주하고 있다. 저자는 책에서 “미래를 다루지만 예측하진 않는다”며 “역사로부터 얻는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한다. 책은 기술의 힘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사회가 어떻게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는지를 보여준다. 역사가 그대로 되풀이되진 않는다. 다만 반복되는 흐름은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일어난 이유를 언급하면서 “노동 대체 기술의 차단 여부는 거기서 이익을 얻는 위치에 있는 게 누구인지와 정치권력의 사회적 분배에 달려 있다”고 분석한 대목도 시사점을 준다. 그에 따르면 러다이트는 정치적 영향력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당시 지주들이 쥐고 있던 부의 패권을 넘겨받은 상인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면서 신흥 산업 계급으로 떠올랐다. 기계화로 이익을 볼 수 있는 이들이 정치력이 있었기에 영국 산업혁명의 불씨는 커졌다.

저자는 중산층이 몰락하고 불평등이 심해졌음에도 노동자들이 재분배적인 정책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도 연관 지어 설명한다. 빈부 격차 심화로 정치적 영향력이 줄어들고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에 취약해진 노동자들은 장기적인 정책 참여보다 단기적인 혜택 제공에 관심을 쏟게 된다는 것이다.

컴퓨터 혁명과 함께 부상한 자동화 시대는 기계를 앞세운 공장이 장인들을 대체한 산업혁명기와 겹쳐지는 장면이 많다. 중간 소득 일자리는 줄고 실질 임금은 정체 상태다. 산엽혁명이 결과적으로 세계를 부유하게 만들었듯이 저자는 인공지능 기술이 지닌 잠재력을 인정한다. 하지만 자동화기술에 뒤처진 많은 사람의 반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저자는 “자동화는 2020년 대선에서 중심 화제가 될 공산이 크다”며 “세계화에 맞서 포퓰리즘 역풍이 일었듯 자동화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증폭되는 불안을 포퓰리스트들은 필시 효과적으로 이용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저자는 농업의 발명부터 인공지능의 부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지만 기술의 역사 자체에 집중하진 않는다. 기술 발전에 따라 노동 인구가 치른 대가와 경제, 사회적 여파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추적한다. 책은 기술의 ‘덫’에 걸려 과거에 반복했던 극심한 사회 혼돈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오늘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과거를 좀 더 오래 되돌아볼수록 미래를 더욱 멀리 내다볼 수 있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에 충실한 책이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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