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혼돈의 시대…자유로운 무한 경쟁서 답을 찾다

입력 2019-10-03 18:06   수정 2019-10-04 00:33

전직 대통령은 권한 남용으로 탄핵됐다. 그 이전 대통령은 부패 혐의로 수감 중이다. 소수가 대부분의 부를 갖고 있고 기업가정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일반 주민의 생활수준은 장기간 정체 상태다.

한국 얘기가 아니다. 대통령 탄핵 후 부통령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올 1월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한 브라질의 상황이다.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았고 지속되는 저성장에 빈부 격차는 커졌다. 브라질뿐 아니라 많은 나라가 마주한 현실이다. 탈출구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좌파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 빈곤층에 주택과 의료,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파는 국영기업의 민영화, 세금 감면과 규제 철폐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어떤 문제든 진영 논리에 따른 해결책은 결국 모두 같다.

<래디컬 마켓>은 ‘좌우의 공식’을 벗어나 새로운 답을 내놓는다. 엉뚱해 보이지만 기존 제도와 생각의 틀을 깨는 대담한 제안을 담은 이 책은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돼 큰 화제를 모았다. 저자는 에릭 포즈너 시카고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글렌 웨일 마이크로소프트연구소 수석연구원이다. 제목의 ‘래디컬(radical)’은 문제의 근원을 파고든다는 의미에서 ‘근본적’이고, 시장의 영역을 무한대로 넓힌다는 의미에선 ‘급진적’이다. 저자들은 애덤 스미스와 제러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헨리 조지의 이론으로 시장의 근원을 찾아간다. ‘급진적인 시장’(래디컬 마켓)이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곳에서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이다.

좌파와 우파의 전통적인 담론들은 고착화된 위기 타개와 새로운 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저자들의 판단이다. 대신 그들은 ‘합리적인 효율성’ 그 자체에 집중한다. 책을 구성한 다섯 개의 장은 다섯 가지 혁신적인 제안을 담고 있다.

가장 먼저 다루는 것은 재산권이다. 입찰 경쟁을 벌여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가져가는 경매가 래디컬 마켓의 ‘정수’다. 래디컬 마켓에서는 자신의 토지와 집 등 부동산에 스스로 가격을 매기고 그에 따라 세금을 낸다. 재산 가치를 높게 매기면 그만큼 많은 세금을 내야 하고 가치를 낮게 평가하면 세금은 줄겠지만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양도해야 한다. 세금은 공공재와 복지, 사회적 배당금으로 활용된다. 항시적 경매 시스템으로, 저자들은 ‘공동 소유 자기평가세(common ownership self-assessed tax·COST)’라고 부른다. COST를 통해 부동산의 공정가치를 실현하고 소유권 이전은 자유로워져 독점은 막고 시장의 긴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정치에는 ‘제곱 투표(quadratic voting)’라는 개념을 적용한다. 찬성이나 반대가 아니면 무관심만 표현할 수 있는 1인1투표의 한계를 인지해서다. 저자들은 아젠다의 중요성에 대한 유권자별 가중치를 고려하지 않아 여론 쏠림 현상이나 투표를 통한 민의 왜곡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들이 제안한 제곱 투표는 모든 유권자에게 정책 참여에 사용할 수 있는 크레디트 총량을 지급하고, 추가 투표권을 행사하려면 제곱으로 늘어나는 크레디트를 쓰게 하는 투표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1표를 위해서는 1개의 크레디트가 필요하지만 어떤 사안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2표를 행사하고 싶으면 4개의 크레디트, 3표를 던지고 싶으면 9개 크레디트를 쓰는 것이다. 저자들은 “개인의 선호 강도를 반영해 투표할 수 있다”며 “열정적인 소수가 무관심한 다수를 투표를 통해 이길 수 있어 다수의 횡포 문제가 해결된다”고 설명한다.

저자들은 노동 시장과 이민제도, 금융산업과 투자, 디지털 경제와 데이터 가치에 대한 획기적이고 도발적인 제안을 이어간다. 국가 단위가 아니라 작은 커뮤니티나 지역부터 실험해 볼 수 있는 제안도 덧붙인다.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부분도 있지만 정교한 논리로 설득력을 높인다. 저자들은 책에 담은 제안들이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라 ‘논의의 시작점’이 됐으면 한다고 밝힌다. 그들의 바람대로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뿌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새로운 틀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고민을 해볼 수 있게 이끌어주는 책이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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