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교수들, 기업인 앞에서 직접 PT…"기업과 소통이 158년 전통"

입력 2019-10-08 17:12   수정 2019-10-09 01:19

지난달 30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시에 있는 매사추세츠공대(MIT) 나노 빌딩. 캐주얼 정장에 노란 넥타이를 맨 알베르토 로드리게스 기계공학과 교수가 회의장에 모인 기업인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PT)을 시작했다. 주제는 ‘로봇의 섬세한 촉각 기술과 조작 기술에 관한 비전’. 논문처럼 어려워 보이는 주제지만 PT가 시작되니 대학생, 기업인과 같은 비전공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파워포인트를 통해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고 전문 용어도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콘퍼런스에서 PT를 한 MIT 교수는 총 9명. PT가 끝난 뒤 교수, 기업인, 투자자 간 즉석 토론이 벌어졌다. 세계 2위 화학업체 다우케미칼의 빌리 바딘 글로벌 기술운영책임자도 이날 연단에서 “세계 130여 곳 화학공장 내부의 가스 성분 구성과 비율, 위치 등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며 “도움이 될 만한 기술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달라”고 요청했다.

콘퍼런스에 참석한 윤송이 엔씨소프트 최고전략책임자(CSO사장)는 “미국 교수들은 대체로 학생에게 연구를 맡기지 않고 직접 연구과제를 수행하며 기업인과 소통하는 데도 능한데, 그중에서도 MIT가 최고”라고 했다. MIT에서 박사학위를 딴 윤 사장은 MIT 이사회 멤버 중 한 명이다.

세계 바이오IT 빨아들이는 켄들스퀘어

대학과 기업 간 협력은 158년 역사를 지닌 MIT의 오랜 전통이다. “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연구하라(Mind and Hand).” 라틴어에서 유래된 MIT의 ‘좌우명’이다. 로버트 랭어 MIT 교수는 “MIT에선 교수, 의사, 기업인, 투자자들의 크고 작은 모임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열린다”며 “다양한 학문과 기업의 공존이 혁신을 이뤄내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바이오와 인공지능(AI)을 연구하는 전 세계 기업의 연구개발(R&D) 인력이 이런 산학(産學) 인프라를 찾아 켄들스퀘어로 몰려들고 있다. 켄들스퀘어는 MIT가 터를 잡고 있는 켄들역부터 중앙역까지 4차선 도로 2㎞를 따라 늘어선 클러스터(산학집중지)다. 세계 20대 제약사 중 19곳의 본사 또는 R&D센터가 이 지역에 자리잡았다. 2008년 구글을 시작으로 마이크로소프트, IBM, 아마존, 페이스북 등 정보기술(IT) 기업도 경쟁적으로 이 지역에 R&D 근거지를 세우고 있다. 김종성 보스턴대 경영학과 교수는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데도 기업들이 물밀듯 들어오고 있다”며 “최근 5년간 이 지역 고층 빌딩 스카이라인이 몽땅 바뀌었다”고 전했다.

이런 변화는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됐다. 스탠퍼드대 등을 앞세운 미국 서부의 실리콘밸리가 구글, 애플과 같은 혁신기업을 배출하면서 MIT의 위기감이 팽팽해지기 시작했다. MIT는 2004년 뇌과학 분야의 권위자인 수전 호크필드 당시 예일대 부총장을 신임 총장으로 전격 선임했다. MIT 역사상 첫 여성 총장이자 첫 비공대 출신 총장이었다. MIT는 이후 철저하게 바이오와 IT 기반 기업을 선별해 협력하기 시작했다. 하버드대와 공동으로 설립한 생명공학 연구소인 브로드연구소와 MIT의 AI 연구소(CSAIL)인 스타타센터가 들어선 게 2004년이다. 정부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더발 패트릭 매사추세츠주지사는 2007년부터 10년 동안 매사추세츠 지역의 생명과학과 바이오테크 분야 R&D에 10억달러를 지원했다. 연방정부도 MIT의 든든한 후원자다. 지난해 7억3151만달러 규모의 MIT 연구비 중 66%가 연방정부에서 나왔다. 기업 비중은 20%에 그친다. 칼 코스터 MIT 기업협력 총괄전무는 “기업이 2달러를 내면 10달러의 성과를 공유할 수 있다”며 “기업들이 MIT와 협력하려는 이유 중 하나”라고 전했다.

모든 학문은 AI로 통한다

MIT는 또 다른 혁신에 나섰다. AI로 상징되는 컴퓨터 과학을 키우는 원대한 전략을 세웠다. 그 첫 단계가 지난달 가동되기 시작한 MIT 슈워츠먼 컴퓨팅 칼리지다. 1950년 MIT에 인문사회과학단과대가 출범한 이후 69년 만에 세워진 새로운 대학 조직이다. AI 인재 양성을 위해 개인 돈 3억5000만달러를 기부한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의 이름을 땄다. 예일대와 하버드대 출신 금융인인 슈워츠먼 회장이 굳이 MIT를 기부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대학, 기업, 정부가 똘똘 뭉쳐 AI를 연구할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을 갖췄다”는 이유에서다. MIT는 “앞으로 AI가 모든 학문을 연구하기 위한 일종의 언어와 도구가 될 것”(라파엘 리프 MIT 총장)이라며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AI와 관련된 각종 연구 조직은 모두 슈워츠먼 컴퓨팅 칼리지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게 된다. MIT는 이 대학에 10억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케임브리지=좌동욱 특파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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