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기의 데스크 시각] 청와대가 더 커진다는 경고음

입력 2019-10-27 17:31   수정 2019-10-28 00:26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러면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지난 25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다. 내달 9일 임기 절반을 지나게 되는 소회에 대한 질문의 답변이었다. “우리 나름으로는”이라고 몸을 낮췄지만 “포용과 혁신에서 어느 정도 토대는 쌓았다”고 평가했다.

임기 반환점을 앞둔 청와대는 분주하다. 대통령의 일정은 더 빡빡해지고 있다. 17일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는 경제사령탑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없이 열렸다. 청와대는 공개하지 않았을 뿐 미리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25일에는 교육관계장관회의가 취임 후 처음 열렸다. 임기 후반부의 국정 방향을 ‘공정’에 둔 국회 시정연설(22일) 뒤에 잡힌 일정이다.

내각이 안 보인다

앞서 16일에는 김오수 법무부 차관을 청와대로 불렀다. 문 대통령은 그날 오전 부산에서 열린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서울로 돌아온 뒤 곧바로 김 차관에게 차질 없는 검찰 개혁을 지시했다. 두 번이나 “나에게 직접 보고하라”고 했다.

대통령의 강행군에서는 조바심이 느껴진다. 다음달로 예정된 두 차례 해외 순방 일정 중 하나를 접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내치(內治)에 올인하는 모양새다. 정치권의 한 지인은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부터 경제·교육부총리까지 다하는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청와대 물밑 분위기는 70% 안팎의 전례없는 고공 지지율을 유지하던 때와는 다르다. 최근 만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기 청와대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 “초반만큼 흥이 나지 않는다”는 푸념도 했다. “그때는 뭐를 해도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는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외견상 청와대는 더 견고해지고 있다. 노영민 비서실장부터 말단 행정관까지 440여 명(경호처 제외)의 비서진은 빈틈없이 현안을 챙긴다. 청와대 직원은 300명대인 미국의 백악관보다 훨씬 많다. 미국의 연방정부 공무원 수는 한국보다 3배가량 많다. 이를 감안하면 청와대 몸집은 백악관보다 4배 가까이 큰 셈이다.

내각에 대한 ‘그립’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경제부처 사이에서 “과거엔 청와대가 정책의 큰 방향을 제시했다면 지금은 구체적인 설계도가 내려온다”는 얘기가 나온 지 오래다. 이른바 내각 패싱이다. 교육부는 대통령의 대입 정시 확대 방침을 국회 시정연설에서 처음 들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소장파 의원들 사이에선 “여당이 거수기 노릇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벌써'와 '아직' 사이

청와대의 독주만큼 외부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한 여권 인사는 민심을 읽는 자신의 척도를 이렇게 소개했다. 주변에 “대통령 임기가 절반 남았다”고 말한 뒤 반응을 보는 것이다. 그러면 예외 없이 “벌써?” 또는 “아직도…” 둘 중 하나의 대답이 돌아온다고 했다. ‘아직도’는 부정적인, ‘벌써’는 긍정적인 평가다. 최근 들어 ‘아직도’라는 응답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단순하지만 어떤 여론조사보다 정확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가야 할 길이 멀다”고 한 이유로 “(포용과 혁신에서 어느 정도 쌓은 토대가) 국민이 다 동의할 만큼 체감될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방향성의 문제가 아니라 속도의 문제라는 뜻으로 들린다. 청와대는 국정운영의 방향을 잡는 조타수여야 한다. 속도를 내는 ‘엔진’은 내각과 여당의 몫이다. ‘만기친람’ 청와대는 조바심만큼이나 위험하다. ‘낮은 청와대’는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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