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새 농토·풍성한 수확물…2000년 전 쪽배·뗏목 타고 바다를 건넜다

입력 2019-11-01 18:01   수정 2019-11-02 00:05


우리는 정말 1000회 가깝게 침략만 받았는가? 우리는 한 번도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거나 개척한 적이 없었는가? 이렇게 자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기이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고대에 망망대해를 건너 일본열도에 상륙한 사람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일본인들의 주장처럼 ‘귀화인’일까, 또는 ‘도래인’일까. 아니면 ‘개척자’나 ‘정복자’였을까.

<삼국사기>에는 신라가 처음 세워질 때부터 ‘왜’ ‘왜인’ ‘왜병’ 등으로 표현된 집단에 쉴 새 없이 침략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반면 일본열도를 공격하거나 진출한 기록은 없다. 실성왕 때(407년) 대마도를 정벌하려는 계획을 빼놓고는 그랬다. <삼국유사>가 그나마 ‘연오랑과 세오녀의 설화’를 실었다.

이와 달리 일본의 <고사기>(신화를 담은 역사책의 일종, 712년)와 <일본서기>(역사책, 720년)에는 초기부터 외부 사람들이 일본열도를 정복한 상황이 표현돼 있다. 일본의 국기인 히노마루로 상징된 태양여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폭풍(또는 대지)의 신인 스사노오 노미코토, 천손(天孫)인 니니기노 미코토처럼 ‘천(天)신’ ‘해(海)신’ ‘지(地)신’들은 일본열도의 바깥에서 온 집단들을 상징한 것이다. 그러면 지금껏 풀기 어려운 미묘한 관계로 남은 일본 민족과 일본 문화는 언제부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우리와는 어떤 관계로 출발했을까.

일본열도에는 군마현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구석기 시대인들이 살았다. 신석기 시대에는 조오몽인들이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크고 문양이 복잡한 토기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기원전 4~3세기 무렵부터 낯선 사람들이 배를 타고 물밀듯 몰려오더니 이들을 쫓아냈다. 이렇게 해서 600년에 걸쳐 질적으로 다른 ‘야요이(彌生)시대’가 시작됐다. 그렇다면 바다 건너에서 상륙한 그 항해자들, 정복자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다양한 일본인 기원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기원을 이야기할 때 ‘양자강 하구설’ ‘오키나와 및 동남아시아설’ ‘남태평양설’ ‘극동 시베리아설’ 그리고 대륙이라고 수상쩍게 포장한 ‘한반도설’ 등을 내세운다. 물론 모두 다 근거는 있다. 하지만 일본 학자들이 쳐놓은 덫에 빠지지 않고 사실을 확인하려면 빈도, 규모, 영향력 등을 놓고 경중을 따져봐야 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총, 균, 쇠>에서 일본어는 신라어로 이어지는 현대 한국어와 다르다고 했다. 일본인이 현대 한국과 관련이 적다는 뉘앙스를 담은 주장이다. 최근 이렇게 인식하는 지식인이 늘고 있다. 동아시아의 상황과 한민족의 역사, 그리고 일본의 고대역사와 지리 등을 모르기 때문이다.

일본은 고대(7세기 중엽)를 기점으로 성격이 크게 변할 뿐 아니라, 영토도 규슈와 혼슈의 중부까지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도쿄 일대 등도 7세기 말에 들어와 개척됐고, 혼슈도 서쪽 해안과 삼림지대에서는 8세기 내내 하이(아이누로 추정)와 전투가 벌어졌을 정도였다. 오키나와(유구국)는 1879년에, 홋카이도는 메이지 시대에 전투를 벌여 빼앗은 곳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개척자들은 최종적으로 한반도 남부의 여러 항구에서 출항한 사람들이다.

지리적 조건과 생물학적 유사성

우선 지리적 조건 때문이다. 그 시대에는 원양항해를 할 수 있는 항해술이 부족했고 대규모 인원과 물자를 운반하는 배를 건조하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가장 가깝고, 대마도와 이끼섬을 징검다리처럼 이용할 수 있는 한륙도(韓陸島·한반도를 새롭게 인식한 용어) 남부가 양질의 출발지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본의 창세신화, 건국신화, 심지어는 지방설화의 주인공들까지 죄다 한륙도 남부와 연관이 깊다.

또 이 시대에 시작된 최고의 첨단산업인 벼농사는 기술자 집단이 이주해 장기간 시험 재배를 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규슈의 유적지에서 발견된 탄화한 볍씨들은 김해 패총의 단립미와 같은 종류다. 출토된 돌낫, 반달형 돌칼, 절구, 호미, 괭이 같은 농기구도 우리 것과 너무 닮았다. 농사용어들도 비슷한 것이 많다. 무덤도 우리 것과 유사한 고인돌, 상자식 석관묘, 옹관묘 등이 많고 한국식 (세형)동검 등도 발견된다.

이렇게 이주민이 늘어나고 생산력이 확장되고 무기 성능까지 향상되면서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규슈 일대에만 100여 개의 소국이 생겼다(<후한서 동이전> 참고). 이어 빠른 속도로 동진해 넓은 지역에 걸쳐 야요이 문화를 발전시켰다. 마치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의 동부 해안을 장악한 뒤 서부개척에 나선 것처럼 말이다.

그들의 정체는 생물학적인 성격을 분석하면 더욱 확실해진다. 유골들은 키가 크고, 얼굴이 길며, 코가 높다. 하니하라 가즈로 일본 도쿄대 교수는 몇 가지 실험을 했다. 인구 모델을 적용했더니 기원전 300년 경부터 기원후 700년까지 원주민의 비율과 도래인(진출자)의 비율은 1 대 9.6이었다. 또 두개골의 형태를 비교했더니 원주민과 이주계의 혼혈 비율이 서부 일본은 1 대 9 내지 2 대 8에 가깝고, 간토(關東) 지방은 3 대 7이었다. 1000년 동안 사람들이 대규모로 험한 바다를 건너와 정착한 것이다. 또 신라계 주민들이 주로 개척한 돗토리현의 야요이인들의 유골에서 DNA를 추출해 조사한 결과는 놀랍게도 혼슈지역 사람들은 물론이고, 현대 한국인들과 유사했다.

이런 역사를 안 일본인들은 ‘내선일체론’ ‘일선동조론’ ‘동조동근론’, 즉 일본과 조선은 한 뿌리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천황의 신민인 우리는 창씨개명해야 한다며 동화정책을 폈다. 하지만 그들은 주(主)와 부(副)를 속였다. 우리가 주이고, 일본인의 원형이었다.

조한(朝漢)전쟁과 한민족의 대항해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확인하는 일은 재미가 있고, 의미도 크다. 하지만 지금 더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가 있다. 왜 선조들은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넜을까? 그 동기를 알고, 신천지를 개척한 이들의 용기와 지혜를 배우는 일이다.

우선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동아시아 세계는 대혼란기에 접어들었다. 중국 대륙은 진시황이 통일전쟁을 계속했다. 북방의 흉노가 침공하면서 숱한 유민이 생겨 동쪽으로 이주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원조선(고조선)에서는 이주민인 위만이 왕위를 찬탈하자 준왕이 주민들과 함께 한륙도의 남쪽으로 피신했다. 이어 동아지중해의 무역권과 질서를 둘러싸고 ‘조·한전쟁’이 벌어졌고, 멸망한 원조선의 유민들도 남쪽으로 밀려들었다(윤명철, <고조선 문명권과 해륙활동>).

자연스럽게 신기술과 발전된 문화들이 전파되면서 제철산업과 군수산업이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벼농사가 활성화되면서 경제력 또한 급상승했다. 사료와 각종 유물이 증명하듯 상업과 무역이 활발해졌으며, 김해 사천 창녕 등 남부해안 일대는 중계무역 거점으로 부상했다. <삼국지> 변진전과 <통전> 마한전에는 왜가 진한에서 철을 사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일본열도에 대한 정보들이 축적되고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일본열도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상인들은 부를 거머쥐기 위해, 농민들은 새 땅을 얻거나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며, 그리고 젊은이들은 장보고처럼 야심을 갖고 떠났다. 동아지중해의 남쪽 바다에는 금속으로 만든 날카로운 창과 칼을 든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들과 샛노란 볍씨들이 가득 담긴, 소박하지만 단단한 김해식 토기를 든 여인들이 탄 배의 행렬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한민족의 대항해시대, 대탐험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바다를 여러 차례 항해하고 현장들을 조사하면서 2000여 년 전 쪽배나 뗏목을 타고 일본열도에 상륙한 선조들의 용기와 개척정신에 감동받아 부르르 떨곤 했다.

국제정세 분석가로 유명한 조지 프리드먼은 <넥스트 데케이드(Next Decade)>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역사적인 이유로 한국은 일본을 멸시하며 중국을 불신한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세뇌로 왜곡된 역사, 그늘진 자의식, 근거 없는 굴레들은 진짜로 부숴버려야 한다. 봉인됐던 진짜 유전인자를 발아시켜 가며, 더욱 더 침착하고 의연하게 중국과 일본에 대응할 시대가 됐다.

윤명철 < 동국대 명예교수·한국해양정책학회 부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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