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억새·허브향·싱싱한 방어…늦은 가을, 내가 제주를 찾는 이유

입력 2019-11-10 15:58   수정 2019-11-10 15:59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제주다. 제주의 늦가을은 운치가 있다. 여름철의 짙푸른 바다는 아니지만 향긋한 바람이 불어와 가슴을 설레게 한다. 감귤의 상큼한 맛처럼 혹은 허브 향처럼 온통 아름다운 향기가 둥둥 떠다닌다. 유명 오름에 비해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력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까끄래기 오름을 오르거나 방어 축제에 참여해 싱싱한 방어를 맛보면 왜 가을에 제주를 가야 하는지 해답을 찾게 될 것이다.

매력적인 허브 체험부터 지구지킴이 체험까지

주민 대부분이 귤 농사를 짓는 작고 아담한 마을인 표선면 세화3리는 허브마을로 불린다. 오랫동안 정성으로 가꿔온 허브가 이곳의 자랑이기 때문이다. 쓰레기와 잡초가 무성하던 마을길을 향기로 채우자는 아이디어가 주민들의 꾸준한 노력을 입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마을의 옛 이름 ‘강왓’을 내건 허브쉼팡에서는 허브 아로마캔들과 허브비누를 만들어 볼 수 있고, 버려진 빈병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체험은 물론 다양한 허브 제품도 만날 수 있다. 마을주민 해설사와 함께 산담부터 감귤원, 농가 등을 둘러보는 투어프로그램도 진행한다. 허브미래공원과 세화3리 국가정원을 산책하며 지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내려놓을 수도 있다. 봄철에는 라벤더와 로즈마리의 향을 마음껏 음미할 수 있는 허브축제도 열린다.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도시 재생과 환경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여행도 있다. 제주도 지속가능환경교육센터는 자원 절약과 폐기물 자원화의 소중함을 알리고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해 쓰레기 매립장과 재활용품 선별장, 음식물 쓰레기 자원화센터와 에코센터 등을 둘러보는 환경기초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쓰레기 분리가 놀이로, 자전거 페달을 돌려 친환경 전기를 만드는 체험으로 이어지며 제주를 넘어 지구를 지키는 마음도 깨운다. 마치 플래시몹처럼 함께 모여 바다를 청소하기도 한다. 사전 신청이나 가입 없이 그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를 찾으면 되기 때문에 점차 참여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갓전시관서 전통을, 기당미술관서 예술을

햇볕을 가리는 실용성부터 신분을 드러내고 멋을 내는 용도로 쓰이던 옛 모자, 갓의 본고장이 제주다. 말 꼬리털이나 갈기털로 갓모자를 만들고 실처럼 가는 대나무살로 양태를 제작하던 공예는 이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4호 갓일 양태보유자 장순자 장인과 전수자의 손끝에서 전해지고 있다. 갓의 역사와 변천사, 작품을 만나고 선비체험을 원한다면 갓전시관을 찾을 만하다. 벼가 귀했던 제주에서 지푸라기 대신 억새와 띠를 이용한 풀 공예품 맹탱이는 제주식 바구니다. 대나무 용기 차롱은 요즘의 도시락 역할을 맡곤 했다.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든 공예품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고 오래된 멋이 요즘 감성에도 잘 어울린다.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라탄 바구니와도 많이 닮았다.

눌(쌓아 놓은 볏짚 단) 형상의 외관과 서까래 구조의 인테리어가 이채로운 기당미술관도 이 가을 꼭 한 번 가볼 만한 곳이다. 제주 출신 재일동포 사업가 기당 강구범 선생에 의해 설립된 국내 최초 시립 미술관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미술의 흐름을 지역에 전하기 위해 현대 미술사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을 선정해 발 빠르게 전시하고 있다. 폭풍의 화가 변시지 화백의 작품과 기당 선생의 형 강용범의 서예작품이 상시 전시 중이다. 제주도 내 최대 규모 아트페어인 아트제주 2019가 28일부터 나흘간 마련된다. 김성오를 비롯한 제주작가 특별전을 통해 제주미술의 흐름도 살펴보고, 갤러리로 꾸며진 호텔 객실에서 로버트 인디애나, 제프 쿤스, 이왈종 등 국내외 유수 작가의 작품 전시와 판매가 이뤄진다. ‘아트제주위크’ 기간에는 도내 여러 문화예술 기관의 무료 입장 또는 입장료 할인 이벤트가 열린다.

칠십리 시공원서 산책하고 까끄래기 오름도 오르고

숙소를 벗어나 잠시 자연 속을 걸으며 풍경의 한 부분이 되는 것도 나만의 소소한 여행이 된다. 서귀포 이중섭거리를 지나 천지연폭포 사이를 잇는 칠십리 시공원에서 자연과 어우러지는 조형물, 철따라 피고 지는 꽃과 열매를 눈에 담으며 걷다 보면 어느덧 지나온 걸음만큼 추억도 겹겹이 쌓인다. 필요한 건 그저 여유로운 마음과 시간뿐! 수십 년 전 제주 최고의 신혼여행 명소가 문을 닫은 지 10여 년 만에 ‘허니문 하우스’라는 독특한 카페로 태어나 인기몰이 중이다. 긴 복도를 지닌 하얀 건물에 서귀포 앞바다를 품은 파노라마 뷰, 주상절리를 전망할 수 있는 외부 산책로까지 이 모든 것을 커피 한 잔 값으로 누릴 수 있다.

동부 중산간의 유명한 오름들 사이, 독특한 이름의 까끄래기 오름이 있다. 억새군락으로 잘 알려진 산굼부리를 지나 동쪽으로 약 2㎞. 까끄래기 오름을 알리는 버스정류장 덕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여행자도 편안하게 오를 수 있다. 높이 50m 정도의 낮은 오름을 오르다 보면 땀이 날 때쯤 정상에 도착하는 성취감을 얻고, 멀리 웅장한 한라산을 배경삼아 오밀조밀한 오름 군락을 마주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조릿대와 억새가 군락을 이룬 분화구가 보이고 억새들이 핀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여행정보

가을 제주의 최고 먹거리는 역시 윤기 좔좔 흐르는 통통한 방어다. 싱싱한 방어를 자연스럽게 즐기기엔 회가 우선. 두툼한 회 한 점 입에 넣는 순간, 입안 가득한 고소함에 먼저 놀라고 살살 녹는 부드러움에 감동이 밀려온다. 회를 뜨고 남은 뼈대와 머리, 꼬리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뼈에 붙은 살은 매운탕이나 맑은 탕, 김치 혹은 시래기를 넣어 푹 끓이는 찜으로도 좋고, 머리는 감자나 무를 곁들여 달콤 짭조름한 간장 양념 조림으로도 좋다.

모슬포의 강한 물살을 헤치며 통통하게 살 오른 방어들이 돌아오면, 그 풍성함을 나누는 축제가 시작된다. 제주를 대표하는 축제 중 하나로 매년 성황리에 열리는 최남단 방어축제는 오는 21일부터 시작된다. 짜릿한 방어 맨손잡기, 싱싱한 방어를 저렴하게 구입하고 즉석에서 맛보는 현장 경매, 누구나 낚시왕이 될 수 있는 가두리 방어낚시와 릴낚시. 여기에 소라 잡기와 불턱 체험, 보말 까기 등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가요제, 대방어 해체 쇼, 건강체크 등 부대행사도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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