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30% 시절 아십니까…'한강의 기적' 저물자 고금리 시대도 '굿바이'

입력 2019-11-22 17:23   수정 2019-11-24 15:07

“각하, 금리는 줄 넘기와 비슷합니다.”

식량 자급화와 공업화를 목표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던 1960년대 후반. 경제계획 자문을 맡은 남덕우 서강대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난데없이 금리 이야기를 꺼냈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가 건전한 경제 성장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려는 취지였다.

남 교수는 당시 정부가 통제하던 대출금리를 ‘줄의 높이’에 빗대 성장 위주의 정책을 비판했다. “줄을 뛰어넘는 수익을 낼 수 있는 건강한 사업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업도 있습니다. 그런데 별도의 낮은 줄을 만들어 놓으면 허약한 사업이 건강한 사업을 제치고 넘어옵니다. 그런 기업들이 원자재와 고용 등에 돈을 쓰며 물가를 끌어올릴 겁니다.” 물가 상승과 경제 비효율을 자극하는 별도의 낮은 줄인 ‘수출기업 우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던 박 대통령은 1969년 그를 재무부 장관으로 발탁해 벌겋게 달아오른 성장 엔진을 식히는 냉각수 역할을 맡긴다. 경제 개발이란 목표를 향해 뜨거운 철로를 폭주 기관차 같이 달리던 한국 경제는 그로부터 불과 50년 뒤 ‘줄을 바닥까지 내려도’ 성장하지 못하는 낯선 터널로 진입한다.

“줄을 높여 물가를 잡아라”

고도 성장기인 1960~1970년대 금리정책의 초점은 주로 물가 안정에 맞춰져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65년 9월 30일의 ‘금리 현실화’ 조치다.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를 기존 연 15%에서 무려 30%로 단숨에 올린 이 전무후무한 조치는 서민 경제의 파탄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964년까지 2년 동안 연 20%를 웃돌면서 치솟는 곡물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가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봄이면 쌀독이 바닥나는 가난한 농가는 보리가 여물 때까지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허기를 견디며 살아야 했다. 박봉의 서울 직장인들도 1965년 봄 기존 30원에서 40원으로 뛴 짜장면값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삐 풀린 듯이 치솟던 물가는 금리 현실화 조치 등에 힘입어 1970년대 평균 상승률 10%대로 내려온다. 1978년까지 10년간 재무부와 경제기획원 수장을 맡은 남덕우 장관도 일반대출과 우대금리의 격차 축소에 힘썼다. 이 같은 안정화 정책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고도성장의 장기 지속을 뒷받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성장 지상주의’ 정부에서 오랜 물가안정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1972년 ‘8·3 사채 동결조치’로 다시 낮아진 ‘줄’은 경쟁력 없는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도록 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결국 1978년 정부는 과열 경기의 진정을 이유로 일반대출 금리를 연 19%로 3%포인트 인상(6·13 조치)해야 했다. 이때 인기 저축상품이었던 ‘특별정기가계예금’ 금리도 연 20%로 2%포인트 올랐다. 한국 금융사에 남은 마지막 20%대 예금 금리였다.

금리인하로 경기부양

‘대출금리 연 10%로 4%포인트 인하.’

얼어붙은 경기를 부양할 목적으로 금리를 파격적으로 내리는 정책은 1980년대 초 등장했다. 전두환 정부는 제2차 오일쇼크 충격으로 1980년에만 30% 가까이 치솟았던 물가가 안정을 되찾은 1982년 6월 28일에 대출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10%로 전격 인하했다.

신문들은 “한국이 마침내 저물가·저금리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대서특필하면서 ‘저금리 혁명’으로 묘사했다. 주식시장도 환호했다. 발표 당일 주식시장에선 거래종목의 80%가 상한가로 직행했다. 종합주가지수는 173.1로 1972년 지수 출범 이래 최대인 9.3포인트(5.7%) 급등했다.

낮아진 이자비용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른 중화학·전자 기업의 기술 및 시설 투자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때맞춰 엔화 대비 낮은 원화 가치, 낮은 유가까지 겹쳐 나타난 ‘3저(低)’ 현상은 한국 경제를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떠오르게 했다. 자신감을 되찾은 대기업은 고용을 확대했다. 실업률은 1980년 5.2%에서 1988년 2.5%로 뚝 떨어졌다. 졸업을 앞둔 80년대 학번 대학생들은 어떤 기업에 취업할지 행복한 고민을 해야 했다.

금리 인하 효과에 남달리 주목한 인물 중 하나는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 후보였다. 그는 1993년 ‘한 자릿수 대출금리’ 공약을 내세워 정권을 잡는 데 성공한다. 물가 불안 탓에 끝내 지키지 못한 이 공약은 그의 임기 말에 현실로 다가온다. 한국의 ‘두 자릿수 대출금리 시대’에 마침표를 찍는 사건, 외환위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48년 만의 한 자릿수 금리시대

‘콜금리 연 8%→7%로 인하.’

국제통화기금(IMF)의 고통스러운 고금리 처방 끝에 외환시장이 안정을 되찾은 1998년 9월 30일, 한국은행은 처음으로 ‘기준금리(콜금리)’ 목표값을 제시하는 역사적인 통화정책을 발표한다. ‘시장금리의 단계적 자유화’ 완성으로 초단기금리의 공개 조작을 통한 경기 조절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날의 금리 인하로 한국 경제는 전후 48년 만에 처음으로 한 자릿수 대출금리 시대로 접어들었다. 신문은 시중은행의 대출금리 9%대 인하 소식을 전하면서 “우리도 선진국처럼 한 자릿수 금리 시대에 들어섰다”고 보도했다. 이후 꾸준한 금리인하는 IMF 체제의 조기 졸업에 기여했지만 1980년대 후반과 같은 장기 호황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대기업그룹은 정부의 ‘부채비율 200% 이하’ 압박에 몸을 잔뜩 움츠렸고, 구제금융으로 살아난 은행들도 안전한 가계 대출 영업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는 ‘닳아빠진 제조업 성장엔진을 갈아끼운다’는 취지로 벤처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였지만 2000년 ‘닷컴 거품’ 붕괴라는 큰 상처를 남긴다.

이후 내림세를 타던 기준금리는 2006년 부동산 가격 폭등에 놀라 상승으로 방향을 튼다. 그러다가 2008년 10월부터는 전례없는 속도로 수직 낙하하는 국면에 빠져든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계기로 전 세계 중앙은행이 경쟁적으로 기준금리를 낮추는 ‘양적완화(QE) 시대’의 시작이었다.


유동성 함정과 자산 거품

‘한은, 기준금리 사상 최저로 인하.’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경제성장률이 5년 연속 연 3%대를 뛰어넘지 못했던 2016년 6월 9일, 결국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1.25%까지 내렸다. 기업의 대출(회사채) 금리도 연 2% 안팎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줄’을 바닥 가까이 낮춰도 기업들이 넘어오려 하지 않는 기현상이 이어졌다. 두 차례의 위기를 겪은 기업들이 경기를 비관하며 움켜쥔 현금을 놓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금리를 낮춰도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쏟아졌다.

저금리 환경에서 불어난 대출은 경기 활성화 대신 각종 대체 투자자산의 가격을 부풀리는 부작용을 몰고왔다. 유난히 빠른 금리 하락에 적응하지 못한 투자자들이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다른 상품을 찾아 이동했기 때문이다. 주가연계증권·파생결합증권(ELS·DLS)처럼 특정 조건을 맞추면 시장금리보다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상품이 ‘중위험·중수익’ 마케팅을 타고 인기를 끌었다. 희소가치를 찾는 글로벌 자금은 ‘비트코인’이라 불리는 생소한 자산으로 대거 흘러들었다. 2010년 피자 두 판의 가치였던 1만 비트코인 가격은 일확천금을 꿈꾸는 투기자금이 가세하면서 2017년 12월 한때 2000억원을 뛰어넘었다. 특히 한국의 투자 열기가 높아 ‘김치 프리미엄’이란 신조어가 유행했다. 서울 아파트 가격도 2018년 13.6% 급등했다. 2006년의 24.1% 이후 최대 상승폭이었다.

제로금리를 향해

장기간 고도성장과 물가상승에 익숙했던 한국 경제는 이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늘 낮춰야 하는 대상이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9월 사상 처음으로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0.4%)를 나타냈다.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은 사상 최저수준의 기준금리에도 불구하고 마이너스 성장(전분기 대비 -0.4%)했다. 성장 잠재력을 반영하는 합계 출산율도 지난해 0.98명으로 처음으로 0명대에 진입했다.

이처럼 낯선 숫자들은 한국 경제가 일시적 부진이 아니라 구조적인 침체에 빠졌다는 진단을 낳고 있다. 반세기 압축성장의 역사가 ‘잃어버린 시대’로 넘어가는 마지막 장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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