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유럽 최고 富者왕실의 자산운용 비법

입력 2019-11-29 17:26   수정 2019-11-30 01:25


스위스 취리히에서 남동쪽으로 1시간가량을 달리면 파두츠라 불리는 조용한 마을에 깎아지른 절벽 위 고성(古城)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 이름을 따 ‘파두츠성’으로 불리는 이 웅장한 12세기 건축물에는 주민들이 “전하(Durchlaucht)”라고 부르는 한스 아담 2세가 살고 있다. 유럽에 남아 있는 12개 입헌군주제 국가 중 하나인 리히텐슈타인 공국을 다스리는 대공(大公·작은 나라의 왕)이다. 이 왕실의 자산관리기법이 글로벌 금융투자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유럽 왕실 가운데 가장 많은 자산을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연 7%씩 불리고 있어서다.

400년간 이어 온 약속

“400년 전부터 자산은 후손을 위한 것이라는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리히텐슈타인 왕실 자산을 운용하는 LGT캐피털파트너스의 피우스 프리치 매니징파트너는 왕실 자산관리의 핵심 전략으로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장기투자’를 강조했다. 신성로마제국 시대인 1608년 처음 대공 작위를 받은 리히텐슈타인 카를 1세는 형제들과 “자산을 나눠 갖지 말고 후손에게 대대로 물려주자”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이후 왕가는 재단을 만들고, 후대를 위한 자산 증식을 최우선 목적으로 정했다.

한스 아담 2세는 유럽 군주 중 최고 부자로 꼽힌다. 현재 100% 왕실 소유 금융그룹인 LGT그룹을 통해 파악된 재단의 금융 자산은 최소 76억스위스프랑(약 9조원)에 이른다. LGT그룹의 자기자본이 지난 6월 말 현재 43억스위스프랑, 그룹에 운용을 위탁한 별도의 재단 위탁자금이 33억스위스프랑이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개인 자산으로 알려진 4억파운드(약 6000억원)를 크게 웃도는 규모다.

위탁자금은 1998년 출연 당시 10억스위스프랑으로 시작해 20년 동안 순수 운용 수익만으로 연 7%씩 불어났다. 프리치 파트너는 “형제들의 서약에 따라 장남이 정치를, 차남이 자산관리를 맡는 역할 분담이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유럽 최고 부자 왕실로 성장하는 주춧돌이 됐다”고 설명했다.

히틀러 눈을 피한 자산관리

왕실 자산관리의 또 다른 핵심 원칙은 분산투자다. LGT캐피털파트너스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현재 왕실 자금의 60% 정도는 주식과 채권이 아니라 대체투자자산으로 운용하고 있다. 매입한 대체자산 중에는 사모주식(PE)이 약 40%로 가장 많고 헤지펀드가 30%, 기타 부동산과 사모대출(PD) 등이 나머지 30%를 차지한다. 다양한 투자 상품에 고루 분산돼 있다. 채권(50.2%)과 주식(37.8%)에 자산 대부분을 넣고, 대체투자 비중이 11.5%에 머물고 있는 한국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투자 자산군)와는 대조적이다.

자산을 나눠 안전하게 지키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왕실의 운용 철학에 따른 것이다. 이 철학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확고한 신념으로 자리 잡았다. 1938년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면서 이 지역에 퍼져 있던 가문의 부동산을 몰수당한 경험 때문이다. 당시 전가의 보물까지 모두 전리품으로 빼앗길 위기에 처했던 선왕(先王) 프란츠 요제프 2세는 나치의 눈을 피해 ‘유동자산’이었던 진귀한 미술품들을 오스트리아 곳곳에 숨겼다.

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면서 그는 작품을 열차에 실어 모두 지금의 리히텐슈타인으로 옮겨왔고, 이 중 일부를 팔아 가문을 재건하는 종잣돈으로 썼다. 프리치 파트너는 “가문 자산이 불어나자 한스 아담 2세는 부친이 팔았던 작품을 되사오는 등 다시 소장 보물을 늘렸다”고 전했다. 유럽 최고로 꼽히는 리히텐슈타인 왕실 컬렉션은 작년 한국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환경·사회’ 고려하는 DNA

‘사회와 환경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를 고려하는 왕실의 투자 대상 선정 원칙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고려하는 ‘ESG 투자’다. 유엔 사회책임투자원칙(PRI) 이사회의 일원인 티코 스나이어스 LGT캐피털파트너스 매니징파트너는 “왕실에선 수백 년 전부터 나무를 베기 전에 더 많은 나무를 심도록 하고, 도박 등 해악을 끼칠 만한 분야에는 투자를 기피해왔다”며 “이런 투자 DNA는 각종 규제 등 위험을 회피하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내왔다”고 했다.

취리히=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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