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원전생태계 파괴, 더 이상은 안 된다

입력 2019-11-29 17:43   수정 2019-11-30 00:12

정부가 탈(脫)원전을 선언한 지 2년 만에 국내 원전 생태계가 속절없이 허물어지고 있다. 대표적 원전 기업인 두산중공업은 임원을 절반 이상 줄였고, 곧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할 것이라고 한다. 이미 직원 3분의 1 이상이 순환휴직에 들어갔고, 250여 명은 그룹 내 다른 기업으로 전출됐다. 공장가동률은 50%대로 떨어졌는데, 신고리 5·6호기 물량이 끝나는 내년에는 10%도 안 될 전망이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지로 7000억원 정도의 손해도 떠안고 있다.

한전기술, 한전KPS, 한국수력원자력에서는 올 들어 100여 명 가까운 인력이 빠져나갔다. 말이 좋아 인력 해외진출이지, 실상은 인력 유출이다. 그래도 두산중공업이나 한전 자회사들은 언론의 관심이라도 받지만 중소업체는 관심조차 못 받고 조용히 사라져 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결국 안타까운 소식이 되고 만 낭보가 있다. 우리가 독자 개발한 차세대 원전 모델 ‘APR1400’이 미국의 설계인증을 받은 것이다. 우리의 경쟁 상대인 일본, 프랑스도 실패한 것을 해냈다. 이는 미국 어디에 건설해도 ‘안전성 합격’이라는 인증을 받았다는 뜻이다. 탈원전 상황이라, 기쁘면서도 슬픈 합격증이다.

한국 원전 기술의 우수성은 이미 건설 실적으로 증명됐다. 제작과 건설이 빠르고 정확해 한국 원전은 세계에서 가장 경제적이다. 경제성은 국내와 해외(UAE)를 가리지 않는다. 르몽드지가 보도한 프랑스 정부 자료도 한국 원전 기술의 우수성을 재확인해줬다. 미국이 자국의 차세대 중소형모듈원전 프로젝트에 우리나라 제작업체가 참여하기를 바라는 이유는, 그래야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원자로 제작을 맡길 수 있는 국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의 원자로 제작을 러시아나 중국 업체에 맡길 수는 없고, 미국 업체는 할 능력이 없다. 우리나라 원자로 제작업체가 미국의 희망이 된 것이다. 그러나 원전 생태계가 무너지는 속도로 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미국이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전을 수주하더라도 실제 제작(착공)은 5년은 더 지나야 가능하다. 지금 수주했다고 해도 앞으로 5년을 어떻게 버티겠는가. 정부의 전기사업허가를 받고 건설 중에 중지된 신한울 3·4호기의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에너지 전환이다.

에너지 전환은 기후변화 위기를 막기 위해 화석연료에서 비화석연료로 전환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만 유독 탈원전과 같은 의미로 변질돼 있다. 석탄발전과 가스발전 대신 신한울 3·4호기를 건설하면 온실가스도 미세먼지도 줄일 수 있고, 비싼 연료를 사오지 않아도 된다. 국내 원전산업은 5년 정도 시간을 더 벌 수 있다. 탈원전으로 잃어버린 5년을 늦게나마 다시 돌려받을 수 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하면 해외에서도 우리 원전 기술의 미래에 대한 의구심을 버릴 것이다. 수출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한전의 원자력 자회사들과 두산중공업 문제는 빙산의 일각이다. 그 아래에 보이지 않는 중소협력업체들은 녹아내리고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신한울 3·4호기 건설부터 재개하고 원전 생태계 파괴를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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