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리서치센터 "벌어야 산다"…비용만 쓰는 조직 '눈칫밥'

입력 2019-12-06 17:46   수정 2019-12-07 01:01

2000년대 초 애널리스트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증권사의 꽃’ ‘억대 연봉’ 등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1년 이후 주식시장이 ‘박스피(박스권+코스피)’에 들어가며 투자자들의 관심은 주식시장에서 멀어졌다. 온라인 최저수수료 경쟁이 가열되면서 위탁매매가 증권사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었다. 증권사 사세를 대변하던 리서치센터는 비용만 쓰는 부서로 ‘눈칫밥’을 먹기 시작했다.

리서치센터의 선택지는 결국 ‘변화’였다. “리서치의 역할이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감 때문”(오현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이었다. 업종과 종목, 시황 분석 리포트만 쓰는 리서치는 옛말이 됐다. 변화 방향은 수익 창출이다. 10대 증권사 중 일곱 곳이 해외·자산관리(WM)·4차 산업혁명 관련 조직을 꾸려 운영 중이다.

한국투자증권은 해외 주식뿐 아니라 원자재 채권 등을 분석하는 팀을 구성했다. NH투자증권은 증권사로는 처음 ESG(환경·사회·지배구조)위원회를 설치했다. KB증권은 EMP(상장지수펀드 자문 포트폴리오)팀과 해외부동산팀을 신설했다. 삼성증권은 연말 조직개편에서 미래 산업 관련 팀을 두기로 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생존 위해 확 바꿨다"...달라진 리서치센터


종목 및 시황 분석, 경제 전망, 경영 현황에 대한 조사·분석 업무가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본업인 시절은 지났다. 증권사 수익 구조가 위탁매매(브로커리지)에서 투자은행(IB)·자산관리(WM) 위주로 빠르게 옮겨가면서다. 비용이나 쓰는 부서로 인식되던 리서치센터는 수익을 창출하는 부서로 변신하고 있다. 투자자에게 맞춤형 자산관리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다. 자산운용사에 투자자문을 해주고 연간 수십억원의 수입을 내는 리서치 조직도 생겼다. 2010년 1500명을 웃돌던 애널리스트 수가 2019년 현재 1000여 명으로 줄어들 정도로 조직도 홀쭉해졌다.

맞춤형 자산관리에 펀드 자문까지…리서치센터 "돈 되는 사업 집중"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업무는 종목 추천을 위한 기업 분석이 주를 이뤘다. 애널리스트의 역할도 기업 탐방 후 리포트 작성이 전부였다. 보고서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컸다. 리포트 하나에 주가가 춤을 추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투자자의 시선이 국내 주식시장을 떠나고 있다. 주식 리포트 영향력도 크게 떨어졌다. 리서치센터는 결국 변화를 선택했다. 종목이나 시황 리포트는 일부분으로 축소됐다. 해외 자산, 자산관리(WM), 미래 산업이 새로운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주식 분석은 옛말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해외 주식 직접투자 규모는 369억달러(약 43조8741억원)로 4년 만에 세 배로 늘었다. 국내 주식시장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해외 주식에 관심을 갖는 투자자가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해외 부동산,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 등에 대한 투자도 증가세다. 리서치센터들은 앞다퉈 해외 자산 분석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글로벌 리서치부를 신설했다. 미국 일본 베트남 중국 등의 원자재, 채권까지 분석 범위를 넓혔다. 2017년부터 해외 기업 분석 전문조직인 ‘글로벌기업분석실’을 증권사 최초로 설립한 미래에셋대우는 지난달 ‘원아시아(One-Asia)’ 리서치팀을 신설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홍콩 등 아시아 지역 주식 관련 분석을 제공한다. 올 들어 해외 채권으로 분석 영역을 넓힌 삼성증권은 내년에는 해외 리츠, 인프라 등도 포함시킬 계획이다. 신한금융투자는 지난해 12월 해외 주식과 대체투자를 다루는 해외주식팀을 새로 구성했다.

윤희도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리테일 영업뿐 아니라 법인 영업, 국제본부, 투자상품본부, 퇴직연금본부 등에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며 “투자자들의 다양한 수요를 반영해 변화하는 시장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 고객에게만 독점 공급

증권사와 고객에게 모두 ‘돈이 되는’ 자산관리에 대한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 자산관리 부문 수익은 지난해 1조원으로 2년 만에 10% 넘게 늘었다. 수수료 무료 경쟁으로 위탁매매 매출 비중이 계속 줄어드는 것과 대비된다.

리서치센터들은 증권사에 돈을 맡긴 자산가를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신영증권 리서치센터는 지난달부터 해외 배당주 관련 리포트를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과 일반에는 공개하지 않는다. 자산관리(WM)센터와 자기자본 투자 부서에만 제공한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해외 주식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관련 리포트는 많아졌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원하는 신영증권 고객의 수요에 맞는 보고서는 없었다”며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이 높아진 성장주보다 꾸준히 배당을 늘려가는 배당 성장주 중심으로 맞춤형 정보를 제공 중”이라고 말했다.

KB증권은 EMP(상장지수펀드(ETF) 자문 포트폴리오)팀을 조직했다. 글로벌 ETF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시장 상황에 따라 적극적으로 자산을 배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한국투자증권도 올해 자산전략부를 신설해 고객에게 자산배분 전략을 제공하고 있다.

리서치센터가 다른 금융회사에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연간 수십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곳도 있다. ‘비용 부서’로 인식되던 리서치센터가 ‘수익 부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나금융투자는 자산운용사의 펀드 운용 투자자문 역할을 맡아 포트폴리오 구성에 도움을 주고 매년 30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메리츠종금증권도 리서치센터가 해외 시장 자산배분 전략을 제시하는 ‘메리츠펀드마스터랩’을 선보였다.

전통적 섹터 넘어서는 정보 제공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부상하는 새로운 기술과 산업을 분석하기 위한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하나금융투자는 지난해 ‘4차 산업팀’을 신설했다. 정보기술(IT)과 반도체, 미디어와 자동차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종목을 하나로 모으고 관련 애널리스트 간 시너지를 내겠다는 의도다.

NH투자증권은 올초 TMT(Tech, Media and Telecom)팀을 신설했다. SK증권은 지난해부터 스마트시티팀을 구성해 보고서를 내고 있으며, 하이투자증권은 FO(Future·Foreign·OTC)팀을 두고 미래 산업과 해외 주식 관련 분석을 하고 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기존 산업 구분으로 미래 사회를 분석하는 것은 무의미해진 상황”이라며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과 기술에 맞춰 차별화된 투자 전략을 제공해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강영연/설지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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