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공교육 혁신의 핵심 '논술형 수능', 첫 단추 잘 끼워야

입력 2019-12-09 18:19   수정 2020-02-27 21:26

교육부가 지난달 28일 16개 대학의 정시 확대 방침을 발표하면서 현 수능으로는 시대가 요구하는 역량을 기를 수 없다는 점을 인지한 듯하다. 2028년부터 국제바칼로레아(IB)식 논술형 수능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공언한 사실에서 그렇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방향을 바로 잡을 희망이 보여 반갑다. 그러나 전 과목 논술형 수능은 현재 학교 교육 방법과 평가의 전면적 패러다임 전환이 불가피하므로 10~15년 장기 로드맵으로 첫 단추부터 잘 끼우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시험 형태가 객관식에서 논술로 바뀐다고 해서 ‘집어넣는 교육’을 넘어 ‘꺼내는 교육’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다산북스, 2014)에 의하면 서울대에서는 객관식 시험을 치르지 않는데도 자신의 의견이 아니라 교수의 의견을 쓸수록 학점이 높았다. 즉 형태가 논술이라도 사실상 정답이 정해져 있는 시험이라면 그건 바칼로레아식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 충남교육청 지원으로 100명의 고등학생에게 IB 시험을 치르는 실험을 했을 때 대다수 학생이 IB 논술이 한국의 논술과 매우 다르다고 했다. 한국의 논술은 출제자의 의도와 채점자의 기대를 예측해서 써야 하는 사실상 정답이 정해져 있는 또 다른 형태의 객관식일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미래 역량을 위해 논술형 수능을 검토한다면 미래 역량을 제대로 기를 수 있도록 ‘사실상 정답이 정해져 있는 논술’이 아니라 ‘내 생각을 수준 높게 써내는 역량’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교원 역량 강화다. 논술형 평가를 아이들이 제대로 준비할 수 있으려면 학교 교사들이 이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1회 연수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전 과목 논술형 평가인 IB를 도입하는 전 세계 학교는 IB 학교로 인증될 때까지 약 2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 기간은 교사가 연수를 받고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변화하는 시간이다. 교사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으면 기형적 사교육만 유발할 뿐이다. 교원 연수는 현직 교사 대상의 단기 연수를 넘어 1~2년 학위 과정의 중장기 연수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 이를 위해 사범대와 교대의 교원양성 생태계도 리모델링해야 한다. IB를 우리보다 먼저 공교육에 도입한 일본은 주요 사대와 교대에서 대학원 과정으로 IB 교원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셋째,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채점관 양성 및 운영 체제는 제도의 존폐를 가를 것이다. IB는 세계 각국에서 나온 수십만 개의 답안지를 걷어서 영국 채점센터에서 모두 스캔해 온라인으로 전 세계 채점관들에게 배포한다. 채점의 공정성을 위해 매 시험 표준화된 채점 기준을 새로 만든다. 채점관이 로그인하면 한 세트에 10개씩인 여러 세트의 답안지가 할당되는데 매 세트에는 미리 채점된 한두 개의 스파이 답안지가 포함돼 있다. 채점관은 어떤 것이 스파이 답안지인지 알 수 없으며 이는 채점관의 신뢰도를 걸러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스파이 답안지에서 비정상적인 채점이 감지되면 채점관은 로그아웃되고 그 10개의 답안지 세트는 다른 채점관에게 배당된다. 모든 답안지는 2인 이상 교차 채점하고 채점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학생은 재채점을 신청할 수 있다. 공정성을 위해 일반채점관, 선임채점관, 수석채점관, 책임채점관 등 여러 단계의 검증 체계를 운영하고 있는데, IB를 비롯해 논술형 대입을 치르는 서구 선진국 대부분이 대학교수와 함께 현직 교사를 채점관으로 둔다.

다행히 제주교육청과 대구교육청에서 먼저 시동을 걸었다. 약 2년간의 검토 끝에 지난 7월 IB 한국어화 협약각서를 체결했고, IB본부와 함께 교원 연수를 담당할 연수 강사를 한국인 교사로 양성하기 시작했다. 영어가 가능한 한국인 교사를 채점관으로 양성, 이들을 먼저 영어권 채점에 투입해 검증한 뒤 한국어판 채점에 투입할 예정이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도 교육청의 IB 시범 도입이 한국 공교육 개혁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글로벌 표준으로 논술 채점을 할 수 있는 우리 채점관이 양성되면 이들은 교육부가 추진할 논술 수능 체제를 개발하는 데 큰 자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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