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낙동강·한강 내륙 수로망 확보한 신라…삼국통일 기선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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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12-13 17:26   수정 2019-12-14 00:10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낙동강·한강 내륙 수로망 확보한 신라…삼국통일 기선 잡았다


한민족의 근대 이후 100여 년의 과정은 불가사의하기 짝이 없다. 35년의 긴 식민지 생활을 자초했고, 다시 동족상잔이라는 자기파멸을 시도하면서 죽음과 폐허, 가난을 남겼다. 그런데 또 50여 년 만에 근대화, 민주화, 정보화에 성공하면서 기적을 만들었다. 500년 이상 약소국이었던 신라는 약 60년 만에 강국이 됐고, 다시 100여 년이 지나 최후의 승자가 됐다. 신라는 도약할 수 있는 시대 상황이 6세기 내내 지속됐고, 해양발전이라는 국가전략의 선택과 김이사부 같은 뛰어난 리더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기 500년, 지증 마립간이 등장했다. 그는 곧 ‘으뜸 되는 간(칸)’이라는 고유 명칭을 버리고, 중국식인 ‘왕’으로 고쳤고, 나라 이름도 ‘사로’ ‘사라’ ‘신라’ 등에서 ‘신라’라고 고정시켰다. 신라는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 網羅四方), 즉 ‘덕업이 날로 새로워지고, 그물처럼 사방으로 펼쳐진다’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512년에 본격적인 영토 확장전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해, ‘김이사부’라는 20대 초의 젊은 왕족이 지휘하는 신라 수군은 동해 중부의 항구를 출항해 망망대해를 항해한 끝에 160여㎞ 떨어진 우산국(울릉도)에 당도했다. 그리고 배 이물(앞머리)에 나무를 깎아 세운 사자로 위협하면서, 강력하게 저항하는 이 해양소국을 점령했다. 그는 새로 설치한 실직주(삼척)와 하슬라주(강릉)의 군주가 돼 해양작전을 준비했고, 고구려가 혼란스러운 틈을 이용해 자주(自主) 획득과 실지 회복전에 성공했다. 이로써 고구려는 일본 열도로 진출하는 울진, 삼척, 강릉 등 몇 개의 좋은 항구와 동해 중부 횡단 항로를 빼앗겼고, 반대로 신라의 해양활동 범위는 확장됐다.

512년에 영토확장 신호탄

이어 등장한 법흥왕은 517년에 병부를 설치해 군사력을 강화했다. 고구려의 힘을 빌려 양나라에 사신을 파견했으며, 522년에는 가야와 혼인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527년에 조카인 젊은 ‘박이차돈’의 순교를 이용, 불교를 공인하면서 구체제와 구사상을 개혁하고, 왕권을 강화했다. 이어 529년에는 낙동강 하구의 김해에 터를 둔 금관가야와 바다를 건너온 왜를 공격했다. 결국 532년에 이르러 김수로왕과 허황옥이 세운 금관가야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로써 신라는 남해안 일대의 물류망과 해양력을 흡수했으며, 일본열도와 교류할 수 있는 교두보까지 확보하면서 국제적으로 위상이 높아졌다.

뒤를 이어 540년에 조카인 진흥왕이 임금이 됐다. 7세였으므로 19세까지 어머니가 섭정을 했는데, 그녀는 김이사부와 재혼한 사이였다. 당연한 일이지만 김이사부는 다음 해에 병부령으로 승진했으며, 이후 각간이며 상대등으로서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 562년까지 활약한 그는 신라를 마침내 강대국의 반열에 올리고, 훗날 삼국을 통일하는 토대를 만든 큰 역할을 했다.

6세기는 동쪽 유라시아 세계의 질서가 재편되는 중이었고, 중국 지역은 남쪽은 분열시대가 계속됐고, 북쪽도 북위가 멸망한 후에 또 분열돼 싸우고 있었다. 한편, 광대한 초원을 통일한 돌궐 부족은 몽골계의 유연을 멸망시키면서 552년에 제국으로 발돋움했다. 이들은 북중국 지역의 선비족들이 세운 국가들을 수시로 공격했고, 이런 정세는 신라의 국경지역에 진주했던 고구려 병력을 북방전선으로 이동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랫동안 고구려의 영향권에 있었던 신라는 548년 백제와 연합해 고구려의 공격을 격퇴했다. 550년에는 고구려와 백제가 충남 지역을 놓고 1년 이상 전투를 벌이는 혼란을 절묘하게 이용해 이 지역을 차지했다. 나아가 551년에는 고구려가 돌궐과 랴오둥지역의 백암성 등에서 전투를 벌일 때를 이용, 한강 상류인 죽령(소백산맥) 이북의 10개 군을 고구려로부터 탈취했다. 1978년에 단양군 적성면의 남한강가 언덕에서 돌비가 발견됐다(단국대 정영호 교수팀). 비문에는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한 사실과 김이사부를 비롯한 공훈을 세운 사람들의 이름이 있다.

한반도 최고 수로망 충주 점령

단양 하류인 충주는 전근대까지도 한반도 내부에 있는 최고 교통요지였다. 낙동강 수로망이 시작되는 문경에서 육로로 조령(문경새재)을 넘어오면 충주에서 남한강의 수로망과 만난다. 따라서 충주는 낙동강과 남한강이라는 한반도 최고의 수로망, 거기에 육로망이 교차하는 수륙교통의 요지이고, 내륙 최고의 항구도시였다. 이 때문에 고구려도 이곳을 점령한 직후에 ‘중원경’을 설치했고, 그 유명한 ‘충주 고구려비’를 세웠을 정도였다. 이후 신라는 남해안과 낙동강 수로망, 남한강과 서울지역을 낀 한강 본류의 수로망을 유기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윤명철, <해양활동과 국제질서의 이해>). 조금 훗날이지만 가야금을 만든 우륵(于勒)은 신라로 투항했고, 충주의 탄금대로 이주해 살았다. 뛰어난 음악으로 가야의 마음을 통일시키려 했던 그는 운명을 따라 신라에서 자기 뜻을 펼쳤다.

신라 사회는 자신감에 가득 찼고, 진흥왕은 친정을 시작했으며 ‘개국(開國)’이라는 특별한 연호를 사용했다. 2년 뒤인 553년에는 백제와 맺은 혼인동맹을 깨고, 기습공격을 감행해 공동 점령지였던 서울을 포함한 한강 하류를 빼앗았다. 그리고 신속하게 ‘신주’를 설치했는데, 초대 군주로 임명된 김무력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셋째 아들이고, 훗날 신라 통일의 주역인 김유신의 할아버지다. 당연히 점령지를 빼앗긴 백제와 멸망 위기에 몰린 대가야는 동맹을 맺고 554년에 신라를 협공했다. 하지만 백제의 중흥군주였던 성왕이 관산성(충북 옥천)에서 전사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동해안에 북진 발판


신라는 승리했지만 백제와는 영원한 원수가 됐고, 가야·고구려와는 적대관계가 되면서 사방이 포위된 위기상황에 놓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의 정복활동은 멈출 줄 몰랐다. 555년에는 경남 창녕과 함안 등에 관청을 설치해 서부 낙동강 하류의 수로망, 동부 남해의 물류망과 해양능력을 완벽하게 획득했다. 다음 해에는 동해안을 따라 북상을 추진해 비열홀(안변)을 설치했고, 북진의 발판을 만들었다. 이어 557년에는 서울과 광주 지역에 북한산주를 설치해 더욱 공고하게 지배했다. 이제 신라는 남양만 등 경기만을 이용해 중국 지역과 해양교류를 펼치면서 국제질서에 능동적으로 진입했고, 훗날 삼국통일의 강력한 군사력이 된 서해 수군을 육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숨을 고른 후인 562년에 김이사부는 어린 화랑인 사다함의 분전에 힘입어 가야의 500여 년 역사를 완전하게 끝내고 말았다. 이후에는 이사부가 활동했다는 기록이 없다. 어느덧 70대 중반에 이른 그는 병사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어쩌면 이어지는 전투에서 전사했을지도 모른다. 신라는 발전을 멈추지 않았다. 566년에는 통일의지를 담은 황룡사를 완공했고, 북진을 계속해서 황초령비, 마운령비에서 보이듯 함경남도 해안지방을 점령했다.

서해 수군 육성·중국과 해양교류

불가사의하다. 만성적인 약소국이 빠른 시간에 부국강병을 이루려면 군사력과 경제력이 급속하게 팽창해야 하며, 내부의 통일은 필수적이고, 끝없이 요구되는 인재를 공급할 수 있어야만 한다. 많은 나라가 이런 위업에 도전했지만, 대부분은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신라는 줄기찬 정복 작전과 피아를 가리지 않는 전방위 외교활동, 정통성 확립과 자의식 고양을 위한 <국사>의 편찬, 통일을 선언하고, 의지를 집약시킬 황룡사 건축 그리고 백성의 마음을 모을 음악의 발달과 화랑도의 개시라는 엄청난 일들을 단기간에 실현했다. 거기에는 김이사부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내부적으로는 동해 중부와 남해 동부, 서해 중부의 핵심 항구를 장악하고, 낙동강과 한강의 내륙 수로망을 확보했다. 국제적으로는 해양력을 이용해 분단된 중국의 남북조를 상대로 등거리 외교를 추진하고, 일본열도의 왜국과도 관계를 맺었다. 이렇게 갖춘 해륙국가의 토대는 100여 년 뒤에 삼국의 통일이라는 결실을 낳았다. 강대국으로 도약하다 멈춘 채로 분열되는 지금의 한국에 신라의 정책과 김이사부라는 인물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윤명철 < 동국대 명예교수·한국해양정책학회 부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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