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걸이로 질병 예측…수학적 모델 더해 완벽하게 해달라"

입력 2019-12-20 17:31   수정 2019-12-21 00:30


정형외과 등 의학계에선 ‘걸음걸이가 건강의 척도’라는 말이 있다. 걸음걸이를 수학적으로 분석해 향후 발병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을까. 국가수리과학연구소가 지난 18일 부산 벡스코에서 연 ‘산업수학 문제해결 워크숍’에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번 워크숍에선 제이어스, 시드테크, 에스씨티 등 중소·벤처기업이 각자의 해묵은 기술적 난제를 “수학으로 해결해달라”고 의뢰했다. 전국 각지 수학자와 공학자, 업계 관계자 등 150여 명은 세 개 그룹으로 나눠 2박3일 동안 머리를 맞댔다.


공학으로 안 되는 난제, 수학으로 푼다

경기 부천에 본사를 둔 벤처기업 시드테크는 ‘관성측정장치(IMU)의 누적오차’를 최소화하는 알고리즘을 수학으로 개발해달라고 제안했다. 관성측정장치는 우주선, 로켓(발사체), 비행기, 휴머노이드 로봇, 자율주행 자동차, 드론 등 모든 첨단 기계에 들어간다. 휴대폰에도 있다. 가속도 센서, 균형유지 센서인 자이로, 지자기 센서 등으로부터 얻은 데이터를 합해 작동한다. 이 데이터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좌우 흔들림(롤: roll), 앞뒤 흔들림(피치: pitch), 위에서 봤을 때 회전력(요: yaw)이다.

롤과 피치의 경우 측정값 오차가 거의 없다. 그런데 요는 시간이 지날수록 오차가 급격히 증가(일명 ‘요 드리프트’)한다. 요 드리프트가 심해지면 관성측정장치에 문제가 발생한다. 이 경우 로켓 드론 등이 궤도를 벗어나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칼만필터, 매드윅 등 기존 알고리즘으로 요 드리프트를 보정할 순 있지만 불완전하다.

양길태 시드테크 기술연구소장은 “요 드리프트를 완전히 해결한 기업이 아직 세계적으로 없다”며 “지난 3년간 공학적으로 접근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데 도저히 안 되는 난해한 측면이 많아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국에 문의해 보니 수학으로 이를 해결하려는 트렌드가 보였다”며 “산업수학 워크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기대를 갖고 왔다”고 덧붙였다. 시드테크는 요 드리프트 문제 해결 알고리즘이 개발되면 웨어러블(입는) 의료기기에 바로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의사들에게 확신 주려면 수학이 있어야”

의료기기 인공지능(AI) 솔루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제이어스는 자사 제품 ‘모션코어’를 수학으로 업그레이드해 달라고 제안했다. 모션코어는 걸음걸이를 분석해 현재 건강 상태와 향후 어떤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지 보여주는 의료용 소프트웨어다. 걸음걸이의 롤, 피치, 요를 분석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보행속도, 보폭, 골반 및 무릎의 경사·회전·기울어짐·굽힘·폄 등을 0.01초 단위로 측정해 수만 개의 데이터를 뽑아낸다. 이를 행렬에 넣고 분석해 결과를 도출한다.

기자가 이 업체의 부산 본사를 방문해 모션코어를 직접 체험했다. 특수 설계된 신발을 신고 트레드밀에서 3분간 걸으니 체성분 분석기 ‘인바디’처럼 결과가 나왔다. 근골격계, 전정계, 심혈관계, 신경계 등 네 가지 계통에서 향후 위험도를 %로 보여줬다. 근육, 관절, 신경 건강 나이도 나왔다. 심지어 당뇨, 어지럼증, 치매, 파킨슨병 발병 위험까지 알려줬다.

전진홍 제이어스 대표는 “부산시 등의 협조로 3만 명의 건강한 사람, 유질환자(병원 외래환자 등), 노인 등을 대상으로 데이터를 모아 수년간 비교분석한 결과 걸음걸이와 건강 간 상관관계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현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부산대병원 등에서 모션코어를 사용 중이다.

전 대표는 “아직 (모션코어를) 반신반의하는 의사들을 완전히, 그리고 간단하게 설득하려면 데이터와 결과값을 바로 연결하는 수학적 모델 개발이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DTN인베스트먼트, 마젤란기술투자 등에서 투자를 유치한 이 업체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신의료기기 품목허가 신청을 준비 중이다.

양질의 데이터 확보와 전처리가 중요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벤처기업 에스씨티는 노인들의 나이, 성별, 혈압, 혈당, 소변, 뇌파, 체성분, 심박수 등 계량적 데이터와 흡연·음주·운동·약복용 유무 설문조사 등 비정형 데이터를 분석해 건강예측모델을 개발해달라고 의뢰했다. 이 업체는 2010년부터 최근까지 지역사회 경로당 300여 곳의 노인 1만여 명을 대상으로 17만여 개 데이터를 확보했다.

그러나 문제해결 조언자(모더레이터)로 나선 조기필 부산대 산업수학센터 연구원은 “데이터가 일관성이 부족하고 결측치가 많아 (수학적 모델 정립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소변은 노인 대부분 채취를 꺼려 데이터 수가 너무 적었다.

수리연은 다음달 21일까지 한 달간 상세연구를 통해 세 업체가 의뢰한 문제가 수학적으로 해결이 가능한지 여부를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해 7월 정순영 수리연 소장 주도로 시작된 산업수학 문제해결 워크숍은 이번이 네 번째다.

정 소장은 이날 워크숍에서 “산업적 난제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수학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미래를 개척하길 바란다”고 참석자들에게 당부했다.

부산=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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