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태의 데스크 시각] 장병규는 왜 좌절했을까

입력 2019-12-25 17:51   수정 2019-12-26 00:18

2017년 추석 연휴가 막 시작되던 날,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초대 수장이 된 장병규 위원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고향 대구로 가는 KTX를 타고서야 겨우 짬이 났다는 그의 목소리는 흥분 때문인지 다소 떨렸던 기억이 난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주변에서 잘 도와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2년3개월이 지났다. 위원장직을 내려놓고 민간 기업인으로 돌아온 그와 최근 다시 연락이 닿았다. “이제 홀가분하지 않냐”고 했더니 “개운치만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쉬움이 잔뜩 묻어났다. 그의 속내를 정확히 알 길은 없지만 어느 정도 짐작은 간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리는 역할을 맡았지만 결과로 내놨어야 할 성과물은 변변치 못했다.

2년 만의 씁쓸한 퇴장

지난 2년 동안 그는 매번 국회와 시민사회단체 등의 반대에 부딪혔다. 부처 공무원들도 꿈쩍하지 않았다. 빅데이터 시대의 초석이 될 데이터 3법은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고 ‘타다 금지법’이 생기면서 모빌리티 혁신도 멈춰선 상태다. 기존 규제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혁신 기술이나 서비스를 키우기 위해 시작한 ‘규제 샌드박스’ 역시 기존 틀과 기득권의 반대에 부딪혀 지지부진하다.

장 전 위원장은 합의를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공동 창업했던 네오위즈를 박차고 나온 배경도 이런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충분한 토의와 협의 없이 최대주주의 뜻대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이 때문에 그는 검색회사 첫눈, 게임업체 크래프톤 등을 창업한 뒤에는 이사회 역할을 무척 중시했다. 최대주주였지만 독단적으로 일 처리를 하지 않았다.

4차산업혁명위원장을 맡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해커톤이라는 의사결정 방식을 만들었다.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모여 끝장토론으로 합의를 이끌어내는 시스템이다. 기존 제도의 틀을 깨는 혁신을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기도 했다. 지난해 4월 열린 3차 해커톤에서는 누구인지 분간하기 힘든 비식별 개인정보의 활용 방안에 대한 합의를 어렵사리 이끌어냈다. 국회 통과를 여전히 장담할 수 없는 데이터 3법이 나온 출발점이 됐다.

기업 설 자리 없는 혁신성장

혁신의 본질은 갈등 조정이다. 승차공유, 디지털 헬스케어, 자율주행 등 신산업은 기존 산업과 충돌하기 일쑤다. 그런 만큼 국회와 정부 같은 공적인 영역에서의 중재자 역할이 중요하다.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그런 중재자 역할에 방점을 둔 이유다.

지금까지의 성과는 그렇다 치고 앞으로의 문제는 지금보다 더 크다. 소신껏 중재자 역할을 할 주체조차 보이지 않아서다. 기득권과 시민사회단체의 눈치만 보는 정부는 무능함만 드러내고 있다. 국회는 여야 모두 득표 계산에만 바쁘다. 혁신가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바이오헬스케어 업계는 정부에 더 이상 기댈 게 없다는 분위기다. 혁신성장산업으로 키우겠다고 공언해놓고도 수년째 희망고문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격의료, 소비자 의뢰 유전자검사(DTC) 등이 대표적이다. 마크로젠 등 4개 유전체 업체의 규제 샌드박스 사업은 1년 가까이 시작도 못 하고 있다.

정부부터 변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산업계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야 한다. 규제시스템도 손질해야 한다. 허용 대상을 정한 뒤 나머지는 무조건 통제하는 포지티브 시스템을 버리고, 할 수 없는 것만 정한 뒤 다른 모든 것을 풀어주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혁신과 창의가 꽃필 수 있다. 새해에 정부의 변화된 모습을 기대해본다.

py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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