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대통령제와 어울리지 않는 연동형 비례제

입력 2019-12-26 18:21   수정 2019-12-27 00:20

부분적인 연동형 비례제를 골자로 하는 선거법 개정은 한국 정치에 어떤 영향을 줄까? 판세는 알 수 없지만, 다당제(多黨制)를 가져올 것만은 확실하다.

선거 제도가 정당제에 미치는 결과는 거의 기계적인 예측이 가능할 정도로 연구가 축적돼 있다. 소선거구제·다수대표제는 양당제를 가져온다. 프랑스 정치학자 모리스 뒤베르제가 처음 주장한 내용인데, 이후 많은 연구에 의해 입증돼 이제는 ‘뒤베르제의 법칙(Duverger’s Law)’이라고까지 불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각 선거구에서 1등만 당선되기 때문에 군소정당이 살아남기 힘들고, 투표자들도 자신의 표가 사표(死票)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거대정당 후보들에게 투표하기 때문이다. 반면 대선거구제나 비례대표제는 거의 확실하게 다당제를 가져온다.

연동형 비례제로 인해 한국에서도 내년 4월 총선에서 다당제가 출현할 것이 확실하다. 이미 바른미래당에서 갈라져 나온 ‘새로운보수당’과 민주평화당에서 떨어져 나온 ‘대안신당’ 그리고 이언주 의원이 중심이 된 ‘미래를 향한 전진 4.0’ 등이 창당을 준비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자유한국당도 소수정당에 유리한 연동형 비례제의 효과를 중화시키기 위해 위성정당인 ‘비례한국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비례한국당이 연동형 비례의석의 다수를 가져가는 것을 막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또한 비례용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연동형 비례제가 가져올 다당제가 대통령제와는 어울리지 않는 정당 체계라는 점이다. 대통령제는 국민의 대표기관이 대통령과 의회로 양분돼 있고, 이 양자 사이의 충돌이 정치적 마비를 가져올 가능성이 상존한다. 대통령중심제의 권력 구조가 원활히 작동하려면 이 ‘이중 정당성(dual legitimacy)’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제도적 요소들이 양당제와 의원 중심의 정당 운영 즉, 느슨한 정당 내부 구조다. 양당제는 여소야대(분점 정부)의 출현 가능성을 그나마 낮춰주고 의원 중심의 정당 구조는 정당을 초월한 교차투표를 용이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비례대표제는 중앙당과 정당 지도부의 힘을 강화시켜 역시 대통령제 권력 구조의 작동을 방해한다.

따라서 대통령제와 비례대표제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제도적 결합이라는 게 정치학자들의 지배적인 평가다. 정당 체계와 헌법공학의 세계적 권위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이렇게 말한다. “대통령제와 비례대표제를 결합하는 것은 실수다. (중략) 비례대표제에 의해 가장 곤란하게 되는 제도가 대통령제다.”

우리나라의 정당은 이미 지구당을 없애고 중앙당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국회도 유럽 의회를 본떠 이런 정당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당 간 합의가 없으면 국회 자체를 열기도 어렵다. 당론이 정해지면 의원들은 그에 따라 투표해야 할 만큼 규율도 강하다. 이런 유럽식 정당 운영 방식은 대통령제 정부 형태에서는 자칫 독이 될 수 있다. 대통령제 연구의 권위자 후안 린츠는 “규율이 강한 책임 정당 체계는 대통령제와 양립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구조적으로 갈등관계에 있다”고 한다. 그는 정당이 느슨해야 대통령제가 잘 작동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제 비례대표제는 당의 규율과 위계적 운영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정당은 대의민주주의의 필수요건이다. 하지만 정부 형태가 내각제냐, 대통령제냐에 따라 바람직한 정당의 구조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대통령제 민주주의가 기능한 데는 양당제와 더불어 미국 정당정치 권위자인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가 ‘4당 정치’라고 일컬을 만큼 느슨한 정당 규율과 그에 따른 정당 간 교차투표가 한몫하고 있다. 우리는 자꾸 미국식 정부 형태에 유럽식 정당 제도를 접목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저 예쁘다는 이유로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입히는 격이다.

연동형 비례제로 인해 다당제라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정치판이 열릴 것이다.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커다란 문제점들이 불거져 우리 사회가 극심한 혼돈에 빠져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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