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부터 골목길까지…다양한 색으로 빛나는 '시네마 천국' 서울

입력 2019-12-29 15:42   수정 2019-12-29 15:43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서울의 풍경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 속 배경이 돼 다채로운 빛깔을 드러낸다. 영화의 감동이 그대로 전해지는 삶의 현장, 영화 속의 명장면을 따라 여행을 떠나보자.

‘기생충’ 속 현실 사회의 서울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제72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제66회 시드니 국제영화제 대상,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후보 등 세계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드높였다. ‘기생충’은 모두가 백수여서 살길이 막막한 기택 가족과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최고경영자(CEO)인 박 사장 가족이 서로 기묘하게 얽히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건 속으로 빠져드는 이야기다. 영화는 극과 극으로 대비되는 두 가족이 결코 공생하며 살 수 없는 현실을 비판한다.

기택의 장남 기우는 교환학생으로 떠나게 된 명문대생 친구로부터 박 사장의 딸 과외 자리를 소개받는다. 기우가 먼저 저택에 입성하고 여동생 기정은 박 사장 막내아들의 미술 선생으로, 아버지 기택은 박 사장의 운전기사로, 어머니 충숙은 가사도우미로 차례차례 부자의 삶 속에 기생하게 된다. 독특한 스토리에 스릴러가 가미된 탄탄한 구성으로 세계인의 찬사를 받았다. 영화 속 많은 장면은 서울시내 곳곳에서 촬영됐다.

기우가 과외 면접을 가기 위해 고급 주택가로 올라가는 길은 성북동이다.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문화예술의 향기가 가득한 성북동을 걷다 보면 한적한 주택가에서 영화 속 장면을 만나게 된다. 기택 가족이 사는 동네에 있는 ‘우리슈퍼’는 기우가 친구에게 과외를 제안받는 장소이자 기정이 박 사장네 가사도우미를 쫓아내기 위해 복숭아를 훔치는 장소다. 아현동에 있는 이 슈퍼는 영화 속 이름이 아닌 원래 이름(돼지슈퍼)으로 운영 중이다. 바로 옆 골목으로 들어서면 기우가 골목 계단을 내려오다가 생각에 잠기는 곳이 나온다. 촘촘한 계단이 있는 좁은 골목은 변화가 빠른 서울에서 아직도 옛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기우가 부촌을 오르는 장면과 동네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은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계층을 상징하는 듯하다. 영화 속 풍경에서 빈부격차와 함께 엄연히 현실에 존재하는 계층 사다리가 뼈아프게 드러난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속 첨단 서울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미국 액션 영화로 아이언맨, 헐크 등 영웅의 집합체인 어벤져스와 인공지능 울트론의 결투를 다룬 영화다. 어벤져스의 두 번째 시리즈로 나온 영화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인공지능을 개발했지만 악으로 폭주하는 인공지능 울트론을 어벤져스들이 힘을 모아 무찌른다는 내용으로 화려한 액션이 볼거리다.

한국 여배우 수현이 헬렌 조 박사로 출연하고 서울이 영화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도 흥미롭다. 헬렌 조 박사의 연구실로 반포구 세빛섬이 등장한다. 울트론이 세빛섬에서 비전을 탈취해 트럭을 타고 도주하는 장면에서는 첨단도시 이미지가 가득한 빌딩 숲, 청담대교 등이 배경이 된다.

한강을 아름답게 밝혀줄 세 개의 빛나는 섬을 의미하는 세빛섬은 한강에서 색다른 수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 공간이다. 밤이 되면 황홀한 빛을 뿜어내는 세빛섬은 어벤져스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세계 최초로 물 위에 떠 있는 부체 위에 지은 건물은 채빛섬, 솔빛섬, 가빛섬으로 이뤄졌다. 꽃봉오리를 형상화한 채빛섬은 수중 카페 등이 있는 복합문화 공간이다. 씨앗을 형상화한 솔빛섬은 공연, 전시 등을 즐길 수 있는 문화체험 공간이다. 활짝 핀 꽃을 형상화한 가빛섬은 국제행사나 다양한 이벤트를 열 수 있는 컨벤션홀과 레스토랑, 카페가 있다. 미디어아트 갤러리 예빛은 은은한 달빛 같은 예술의 장을 펼친다.

‘암살’ 속 근대역사의 서울

영화 ‘암살’은 1933년 일제강점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애국지사들이 친일파 암살 작전을 펼치는 이야기다. 1933년 3월에 실제로 벌어진 일본 육군대장 출신 조선 총독 암살 작전을 모티브로 삼았다. 영화 속에서는 한국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 폭탄 전문가 황덕삼이 작전을 수행하는 암살단이다. 조선주둔군 사령관 가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강인국을 암살하는 작전 속에서 인물들의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이 펼쳐진다.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백인제 가옥은 ‘암살’에서 친일파 강인국의 집으로 나온다.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쌍둥이 딸의 운명이 바뀌면서 동생인 안옥윤이 아버지 강인국을 암살하러 집으로 들어간다. 다양한 사건이 벌어지는 영화 속 무대인 백인제 가옥은 근대 한옥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일제강점기 한옥이다. 1913년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이 압록강 흑송(黑松)을 건축재료로 삼아 건립했다고 한다. 1932년 27세로 조선중앙일보를 인수해 민족운동가 여운형을 사장으로 추대하는 등 언론 역사에 발자취를 남긴 최선익도 이 가옥을 거쳐갔다. 이후 1944년 백병원 설립자이자 당시 외과수술의 1인자였던 백인제 박사와 그 가족이 소유하게 됐다.

위풍당당한 조선 사대부가에서 볼 수 있는 솟을대문에 들어서면 중문을 거쳐 정원과 사랑채가 나온다. 영화의 장면에도 자주 등장하는 사랑채는 가옥을 대대로 소유한 사람들이 사회 활동을 펼친 곳이었다. 사랑채 뒤쪽으로 난 오솔길을 오르면 가옥의 가장 높은 곳에 아담한 별당채가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 북촌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백인제 가옥은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한 전통한옥과 달리 복도로 두 공간을 연결했다. 일본 양식이 혼재된 건축물은 붉은 벽돌을 사용했다. 건물 내부에는 다다미방이 있고, 일본 양식의 건축물답게 유리창도 많다. 안채 일부를 2층으로 건축하는 등 전통 한옥에 근대문화를 덧댄 가옥은 건축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7년 서울시 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1987’ 속 격동의 현대사를 지닌 서울

영화 ‘1987’은 1987년 1월 경찰 조사를 받던 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 열사가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는 과정을 다룬 영화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받던 박종철이 사망하자 경찰은 사인을 쇼크사로 조작하려 했다. 당시 경찰 치안본부장이 기자회견에서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고 한 말은 지금도 회자된다. 그러나 양심을 지닌 사람들의 증언으로 고문치사 사건의 내막이 드러났다. 분노한 시민들은 군사독재 정권에 맞섰고,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1970~1980년대의 고문 기관으로 악명을 떨친 남영동 대공분실 7층 건물 입구에는 이중 철문이 있었다. 안쪽 철문이 열리면서 탱크 소리처럼 굉음을 내 연행돼 온 민주인사나 학생들은 그 소리만으로 공포심을 느꼈다고 한다. 건물 뒤편 연행자 전용 출입문은 입구가 외부에서 보이지 않도록 설계됐다. 이 문으로 들어가면 나선형 계단이 있고 연행자들은 나선형 계단을 통해 5층 조사실로 끌려갔다. 5층 15개의 조사실은 아주 좁은 창문이 있고, 복도에서 내부를 감시하도록 설계됐다.

박 열사가 고문으로 스러져간 509호실에는 물고문이 자행된 욕조를 그대로 전시해 놓았다. 4층 박종철 기념관에는 박종철 열사가 썼던 안경과 기타를 비롯한 유품, 1980년대 시대 상황이 실린 사진과 신문자료가 전시돼 있다. 영화 ‘1987’을 통해 인권 탄압의 공간으로 조명된 옛 남영동 대공분실은 박 열사를 기억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배우는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조성하고 있다.

‘건축학개론’ 속 낭만적 서울

‘건축학개론’은 숫기 없던 스무 살 대학생의 풋풋한 로맨스를 그린 영화다. 건축학과에 다니던 승민은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처음 만난 음대생 서연에게 반한다. 승민은 서연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지 못하고 오해가 생기면서 서연과 멀어지게 된다. 15년 후 다시 만난 두 사람, 서연은 건축가가 된 승민을 찾아가 자신의 집을 설계해달라고 부탁한다. 함께 집을 완성하면서 첫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당시의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아련한 영화다.

지나간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승민과 서연이 다니던 대학교의 배경은 회기동에 있는 경희대 서울캠퍼스다. 종합문화예술 공연장인 평화의전당과 아름다운 캠퍼스의 문과·이과대학 건물이 승민과 서연이 만나는 장면에 등장한다.

‘자기가 사는 곳에 애정을 가지고 이해를 시작하는 것, 이게 바로 건축학개론의 시작이다’는 교수님의 말대로 동네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승민과 서연이 마주치는 곳이 정릉이다.

성북구에 있는 정릉은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으로 조선 제1대 태조의 두 번째 황후 신덕고황후의 능이다.

신덕고황후는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조선 최초의 왕비로 책봉됐다. 1396년 태조가 사랑했던 신덕고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태조는 시호를 신덕왕후라 정하고 궁궐과 가까운 현재 정동 영국대사관 부근에 정릉을 조성했다. 신덕고황후의 둘째 아들이 세자로 책봉됐지만 첫 번째 왕비의 소생이었던 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다. 신덕고황후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있던 태종은 즉위한 뒤 1409년(태종 9년) 정릉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이런 사연을 지닌 정릉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속세와 성역의 경계 역할을 하는 금천교가 나온다. 작은 돌다리 금천교를 건너 숲이 우거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홍살문이 나온다. 이 길이 영화 속 장면으로 등장한다. 홍살문을 지나 ㄱ자로 꺾여 있는 향·어로를 따라가면 정자각에 이른다. 정자각 너머에는 커다란 봉분이 있고 그 앞에는 고려 양식을 계승한 사각 장명등이 있다. 조용한 동네 한가운데에 있는 세계유산 정릉, 그 오솔길에서 영화의 한 장면이 교차하며 순수했던 시절의 첫사랑이 떠오른다.

글·사진=이솔 여행작가 leesoltou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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