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업의 규모화'에 답 있다

입력 2020-01-13 17:22   수정 2020-01-14 00:25

과거 고도성장에 힘입어 한국의 소득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중위권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지만 노동생산성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2018년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OECD 36개국 중 21위에 해당하는데, 취업자 1인당 국내총생산(GDP)으로 측정한 노동생산성은 25위,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2위로 최하위권에 속한다. 노동생산성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1인당 GDP가 중위권에 속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나라들보다 근로시간이 길고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법정근로시간 단축이 이뤄지고 있고, 급속한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예상되고 있어 소득개선 전망은 비관적이다. 그러므로 향후 소득개선을 위해서는 이런 제약요인을 상쇄할 만한 노동생산성 개선 또는 고용률 증가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 경제의 낮은 생산성은 구조적 요인이 크다. 가장 큰 특징은 대다수 취업자가 저생산성·저임금의 소규모 사업체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 경제총조사에 의하면 제조업의 경우 10~49인 사업체의 노동생산성은 300인 이상 사업체의 30%에 불과하고, 임금은 51.3%에 그친다. 그런데 50인 미만 사업체의 고용 비중은 58.1%에 이르러 고용이 소규모 사업체에 집중돼 있다. 비제조업도 20인 미만 소규모 사업체의 고용 비중이 54.0%에 달하는데, 평균 임금은 소규모 제조업체 평균 임금에 크게 못 미친다. 이런 구조는 2000년 이후 고착화됐고 영세업체의 고용 비중은 오히려 더 늘어나는 형편이다.

사업체 규모가 작을수록 노동생산성과 임금이 낮은 것은 미국과 일본에서도 관찰된다. 하지만 한국이 미국 일본과 뚜렷하게 다른 점은 사업체 규모에 따른 격차가 상대적으로 클 뿐 아니라 고용이 영세업체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국가 간 비교를 위해 10인 이상 제조업체로 한정하면 10~49인 사업체의 고용 비중이 일본은 27.9%, 미국은 17.9%인 데 비해 한국은 41.5%로 현격히 크다. 영세업체 고용 비중이 크지 않았다면 임금격차나 저생산성이 큰 이슈로 부각되지 않았겠지만, 지금과 같은 저생산성 구조는 교육 및 주거문제 등 다른 사회적 이슈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작은 사업체 규모가 반드시 낮은 혁신성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효율성 개선, 신제품 개발, 거래 협상력, 규모의 경제 등 기업 부가가치 창출에 필요한 역량이 상대적으로 미흡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중소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제조 중소기업 중 직접 수출을 하는 기업이 10.3%에 그쳐 국제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이 희소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체의 규모화를 통해 기업 역량을 높이고 중소업체의 고용 비중을 줄이지 않으면 현재의 저생산성 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향후 노동생산성 개선도 요원할 것이다.

그동안 정책당국은 중소기업 성장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이 대기업과의 불공정 거래에 있다고 보고 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시각에 기초해 정책을 운용해왔다. 하지만 영세기업이 대기업 유무와 상관없이 산업 전반에 광범위하게 분포해 있다는 점, 중소기업의 평균적인 규모가 외국에 비해 매우 영세하다는 점, 대기업을 포함한 타 기업과 거래하지 않는 제조 중소기업이 50.7%에 달한다는 사실 등을 볼 때 대기업과의 공정거래 확립만으로 구조가 정상화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본다.

기업 규모의 영세성과 한국 경제의 저생산성 구조를 초래한 더 중요한 원인은 기업 규모에 따른 차별적 제도들에 있다고 판단한다. 여러 정부를 거치며 누적된, 과도한 중소기업 보호 및 지원정책으로 말미암아 혁신성 낮은 다수 영세기업이 규모화에 성공하지도 못하고 퇴출되지도 않은 채 한계기업으로 남아 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이행할 때 새로 부과되는 규제는 2019년 기준 47개 법률에서 188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신(新)산업 규제, 기업 간 합병 규제, 정부 정책의 비일관성과 불확실성 등은 기업의 혁신과 규모화를 방해하고 있다. 공정거래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대기업을 창출해내기 위한 제도 개선과 구조 개혁에 몰두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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