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증세는 복지재원 해법 아니다…조세감면 줄이고 재정낭비 막아라

입력 2020-01-22 17:46   수정 2020-01-23 07:35


대한민국 조세정책을 총괄했던 전직 기획재정부 세제실장들은 “증세에 앞서 재정지출 구조조정 및 조세감면 축소를 통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복지 재원을 충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증세가 불가피한 시점이 오면 ‘부자 증세’가 아니라 부가가치세율 인상 또는 소득세 면세자 감축 등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경제신문이 22일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 등 역대 세제실장 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명이 복지 재원 확보 방안으로 재정지출 구조조정과 조세감면 축소를 꼽았다. 최경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재정 낭비 요소를 없애고 비과세·감면만 제대로 정비해도 증세 시점을 크게 늦출 수 있다”고 했다.

윤 전 장관은 “세금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식으로 납세자 수용성을 고려해 천천히 올려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고소득층과 대기업을 겨냥해 몰아치듯이 증세했다”며 “증세를 한다면 부가가치세 인상이나 소득세 과세 기반 확대 등 보편적 증세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세의 78.5%를 내는 반면 근로소득자의 38.9%가 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내는 ‘비정상’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윤영선 전 관세청장도 “이미 너무 많은 세금을 내고 있는 부자들을 겨냥해 또다시 ‘핀셋 증세’하는 건 ‘징벌’에 가깝다”고 했다. 이들은 감세가 필요한 세목으로 법인세와 상속세를 꼽았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경제활력 위해 법인세 인하해야…증세한다면 부가세부터"
역대 세제실장 8인의 제언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대한민국 조세정책을 빚고 다듬는 ‘총책’이다. 각종 세율 인상에서부터 잡다한 비과세·감면 확대에 이르기까지 세제실장의 ‘OK’ 사인 없이 실행되는 조세정책은 없다. 세제실장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조세이론과 실무능력뿐 아니라 나라살림과 경기흐름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넓은 시야’가 꼽히는 이유다.

이런 일을 맡았던 8명의 전직 세제실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요즘 조세정책에 불만이 꽤 있다고 했다. 세원 확충보다 손쉬운 ‘부자증세’만 택한 점, 부작용을 알면서도 법인세를 올린 점, 증세에 앞서 비과세·감면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일부는 자신이 세제실장으로 일할 때도 긴 안목으로 세제개혁을 하지 못했다면서 “후회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비과세·감면부터 정비하라”

역대 세제실장들은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향후 재정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전체 인구의 14.9% 수준이었던 고령인구(65세 이상)가 10년 뒤에는 25.0%로 늘어난다. 고령자가 늘어날수록 기초연금, 건강보험 등에 들어가는 나랏돈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세제실장들은 그러나 “아무리 복지재원이 많이 들어도 증세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 전에 쓸데없는 재정지출을 없애고 각종 비과세·감면부터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은 “현금성 복지를 너무 늘리면 경제에 별 도움도 안 되고 재정건전성만 갉아먹는다”며 “기왕 나랏돈을 쓰려면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쪽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원칙에 어긋나고 효과도 없는 조세 감면부터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조세 감면액은 50조원 안팎. 이 중 상당수가 ‘무원칙·무효과’ 감면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대표적인 게 중소기업특별세액 감면 제도다. 고용 확대 등 세금을 깎아줄 만한 명분이 없어도 그저 중소기업(제조업 등 48개 업종)이란 이유로 최대 1억원을 깎아준다. 농민도 마찬가지다. 자경농지 양도세 감면, 농업용 석유류 개별소비세 면제, 농업용 기자재 부가세 면제 등 3대 항목에서만 지난해 4조4000억원을 깎아줬다. 지난해 중소기업과 농민에 대한 세금 감면 규모는 12조2000억원으로, 대기업 감면액(2조원)의 여섯 배가 넘었다. 문창용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은 “도시 서민과 비교할 때 농민에 대한 예산지원과 세제혜택은 지나치게 많아 형평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윤영선 전 관세청장은 “최근 들어 정부가 각종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조세 감면을 끼워넣는 바람에 너무 많이 늘었다”며 “이로 인해 오히려 비효율이 생길 정도”라고 꼬집었다. 현재 조세감면사업은 모두 274개다. 2010년 177개에서 10년 동안 100개 가까이 늘었다.

“법인세 내리고 부가세 올려야”

향후 증세 1순위 세목으로 부가가치세(세율 10%)가 꼽혔다. 특정한 타깃 없이 소비에 대해 매기는 보편적 세금이어서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덜하다는 점에서다. △1977년 도입 후 한 번도 인상하지 않은 점 △세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9.3%)의 절반에 불과한 점 △2018년 세수 규모가 70조원인 만큼 세율을 1%포인트(10%→11%)만 올려도 세수가 7조원 늘어난다는 점도 증세 1순위로 꼽힌 배경이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저소득층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 때문에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백운찬 전 관세청장은 “지난 10년간 36개 OECD 회원국 중 22개국이 부가세(소비세)를 올렸다”며 “부가세를 올리면서 예산으로 저소득층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병행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득세 과세기반 확대를 꼽는 의견도 많았다. “월급쟁이 10명 중 4명이 근로소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는 ‘비정상’을 ‘정상화’해야 한다”(주영섭 전 관세청장)는 얘기다.

세제실장들이 뽑은 감세 1순위는 법인세였다. “법인세를 낮춰야 기업 경쟁력이 높아지고 국가 경쟁력도 함께 살아난다”(김낙회 전 관세청장)는 게 이유였다. 또 “이익을 많이 낼수록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누진제 구조를 단일세율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최영록 전 세제실장)는 지적이 있었다.

상속세 인하 필요성도 제기됐다. 최경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상속세 과세표준과 세율, 공제를 20년째 손대지 않은 건 사실상 증세와 같다”며 “공제를 대폭 늘리지 않으면 앞으로 서민층도 상속세를 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전 청장은 “당장 상속세를 대폭 완화하기 어렵다면 최고세율(50%)만이라도 소득세 최고세율(42%) 수준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상헌/성수영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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