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AI를 배우려면 생물학과에 가라?

입력 2020-02-03 18:29   수정 2020-02-04 00:25

“아래위로 5년 선후배 중 창업한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지난해 말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글로벌 정보기술(IT) 전시회에서 만난 한양대 전자컴퓨터통신공학과 대학원생 박모씨가 들려준 얘기다. ‘박사 5년차’인 그는 담당 교수가 갓 창업한 스타트업에 합류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자외선 광선을 활용해 피부 트러블을 손쉽게 진단할 수 있는 혁신 기술을 갖고 있다. 박씨는 스타트업 직장 생활이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털어놨다. “부모님은 삼성, SK 등 번듯한 직장 대신 이름도 모르는 중소기업에 취직하려는 이유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애플,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은 젊은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제2의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를 꿈꾸는 이들도 이에 못지않게 많다. 기업들도 이런 노력과 열정을 평가한다. 대학 시절 창업했다 실패한 경험은 대기업 이력서에서 단점이 아니라 가점이 된다.

미국 사회는 기본적으로 ‘다양성’의 힘을 믿는다. 글로벌 기업들은 성별, 인종, 학력, 전공 등 분야에서 다양성을 확보하려고 애를 쓴다. 마이크로소프트(사티아 나델라), 구글(순다르 피차이) 등 미국의 간판 기업이 줄줄이 인도인 출신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하는 것은 우연의 결과물이 아니다. 이들 인도인 출신 CEO가 가장 강조하는 조직 문화가 ‘다양성과 포용성’이다.

이런 다양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미국의 대학이다. 미국 대학들은 대개 학부 입학 때 전공 구별 없이 학생을 선발한다. 2학년 또는 3학년 말 전공을 선택한 이후에도 자유롭게 전공을 바꿀 수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전공을 미리 정해야 하는 한국과는 다른 시스템이다.

다양성은 혁신과 진보의 밑거름이 된다. 지난해 말 미국 보스턴의 바이오테크산업을 취재하기 위해 찾아간 로버트 랭어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의 연구실. 가장 놀라웠던 건 연구원들의 다양한 전공 분야였다. 생명과학, 전자공학, 화학 등 다양한 분야의 박사급 연구원 140여 명이 한 연구실에 있었다. 랭어 교수의 전공도 화학공학이다. 그는 당뇨병, 고혈압과 같은 난치병을 치료할 때 약품 효과를 인체에 제대로 전달하도록 해주는 메커니즘을 만들어 제약산업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 의학만으로 접근하던 연구 방식을 탈피한 게 성과의 비결이다.

‘미래 산업의 게임 체인저’라는 인공지능(AI) 분야도 이와 다르지 않다. 머신러닝, 딥러닝 등 AI 학계 혁신을 가져온 기술은 대부분 인간의 뇌 연구와 협업 과정에서 나왔다. AI를 연구하는 미국의 공대 대학원들이 앞다퉈 의학, 생물학, 생명과학 전공자를 끌어들이는 이유다.

이런 다양성은 자연스럽게 형성되지 않는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시작한 뇌 연구 프로젝트인 ‘브레인 이니셔티브’는 초기 5년 동안 서로 다른 전공의 연구팀 두 곳 이상이 파트너를 이뤄야 연구자금을 줬다. 의대와 공대 출신 전문가들이 서로 섞이려 하지 않자 나온 ‘고육책’이다.

살아온 경험이 비슷하고 동일한 가치관을 가진 구성원만으로 이뤄진 조직과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미래 엘리트들이 죄다 의사나 공무원처럼 번듯한 직장만 구하려는 사회의 미래도 밝지 않다. 다양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대책들을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다.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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