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실, 스크린 속으로…코리안 리얼리즘 열풍

입력 2020-02-12 17:34   수정 2020-02-13 00:24


지난 10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오스카 4관왕에 오르자 중국 SNS도 떠들썩했다. 중국도 한국처럼 영화 검열을 없애고, 낡은 애국주의 일색에서 벗어나 ‘기생충’처럼 사회적 현실과 비판적 메시지를 영화에 담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SNS를 통해 쏟아졌다.

‘기생충’의 오스카 석권을 계기로 ‘한국적 현실’을 영화 서사에 담아내는 ‘코리안 리얼리즘’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역사적 사건이나 시대적 불화, 사회적 갈등 등 당대 한국의 이슈와 관심 사항을 장르 영화의 스토리텔링으로 담아내는 코리안 리얼리즘이야말로 한국 영화의 두드러진 특징이자 경쟁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재난·코미디 같은 대표적 장르 영화에도 현실을 반영한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녹여내는 점에서 가족애를 앞세우는 할리우드 장르 영화와 차별화된다는 얘기다.

‘기생충’을 비롯한 봉 감독의 주요 영화가 대표적이다. 블랙코미디 ‘기생충’은 한국 사회의 빈부격차와 계층 갈등 문제를 유머와 공포를 혼합한 탄탄한 스토리텔링으로 그려냈다. 관객 1092만 명을 모은 ‘괴물’은 괴수영화 공식에 공권력의 무능을 비판하면서 가족만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살인의 추억’도 연쇄 살인범을 쫓는 범죄 스릴러물에 열정은 있지만 무능한 경찰 이야기를 혼합했다.

봉 감독의 영화들은 관객이 지루하지 않도록 짜임새 있는 스토리 구성과 유머를 적절히 배합해 공감대를 넓혀준다. ‘살인의 추억’과 ‘괴물’ 등 봉 감독 영화들은 그동안 칸국제영화제 측으로부터 너무 상업적이란 이유로 경쟁부문 출품이 거절됐다.

봉 감독의 영화뿐이 아니다. 재난·액션·코미디 등 뚜렷한 장르의 특색을 내세운 한국의 많은 상업영화가 서사에 한국적 현실과 사회적 이슈를 녹여낸다. 화산 폭발과 지진 재난을 그린 ‘백두산’은 남북한 요원이 협력해 문제를 해결한다. 남북 분단 현실과 화해의 열망을 새겨넣은 플롯이다.

지난해 943만 명이 관람한 ‘엑시트’는 가스테러 재난 영화지만 집안에서 괄시받는 백수 청년의 고민을 곳곳에 넣으며 청년실업 문제를 부각시켰다. 지난해 최다 관객(1625만 명)을 동원한 범죄 코미디물 ‘극한직업’은 척박한 자영업 현실과 소상공인의 애환을 담아 공감을 자아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할리우드 재난 영화들은 위기의 가족을 구하는 영웅담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회적 모순을 드러내지는 않는다”며 “한국 영화 속 리얼리즘은 독특하다”고 설명했다.

‘국제시장’은 돈을 벌기 위해 베트남으로, 독일로 떠났던 산업화시대의 역군 이야기로 1426만 명을 동원해 흥행에 대성공했다. 검찰과 언론, 기업인의 유착관계를 흥미롭게 펼친 ‘내부자들’, 금융관료들의 비리를 파헤친 ‘블랙머니’, 역사적 비극과 민주화 운동을 정면으로 그린 ‘택시운전사’와 ‘1987’ 등도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적 현실’을 상업영화의 틀에 담아내 영화적 재미를 잃지 않은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기획자와 제작자의 힘이 할리우드보다 상대적으로 강한 한국 영화 제작 시스템도 코리안 리얼리즘을 담아내고 살릴 수 있는 요소로 꼽힌다. 할리우드처럼 투자배급사의 힘이 강하면 사회적 비판의 강도가 약해져 두루뭉술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코리안 리얼리즘은 분명 한국 영화 서사의 커다란 힘”이라며 “할리우드 영화들이 오락성에 치우치는 것과 차별화된다”고 말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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