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위원 칼럼] 무슨 염치로 또 票 달라고 하나

입력 2020-02-12 18:10   수정 2020-02-13 00:17

‘식물 국회’ ‘사상 최악의 성적표’. 20대 국회에 따라붙는 수식어다. 지난달 ‘데이터 3법’과 민생법안 일부를 처리한 데 이어 이달 임시 회기에서도 몇몇 법안이 처리될 예정이다. 하지만 4·15 총선 국면을 맞아 여야의 관심은 온통 선거구 획정에 쏠려 있다. 대부분 법안은 20대 국회와 운명을 함께할 처지다.

20대 국회 성적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 그간의 국회 학적부부터 보자. 정치적 혼란기였던 3~5대(1954~1963년)를 제외하면 15대(1996~2000년)까지는 의안 처리 성적이 비교적 괜찮았다. 처리 비율은 80%대 이상을 유지했다.

민생 철저히 외면한 20대 국회

부진이 시작된 시점은 2000년이다. 2000~2004년의 16대 국회가 74.1%로 80%를 밑돌더니 17대 60.0%, 18대 56%로 급전직하했다. 19대(2012~2016년)는 46.4%였다. 자동 폐기된 의안이 절반을 넘었다는 의미다. 마구잡이식 발의도 처리 비율 하락에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20대 국회에선 지금까지 2만4597건이 제출됐고 34.9%(8583건)가 처리됐다. 최종 성적은 30%대를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국회가 일손을 놓고 있을 때 경제와 산업을 비롯해 우리 사회의 전 부문이 구조적 변화와 위기의 소용돌이에 맞닥뜨려왔다. 두 차례의 경제위기에 이은 4차 산업혁명의 높은 파고가 그렇다. 올해는 출생인구가 사망인구를 밑도는 인구 자연 감소의 원년이다.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인구 문제는 벼랑 끝을 지나 ‘인구절벽’에서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4년 뒤엔 대학의 4분의 1 이상이 신입생을 못 뽑는다. 고령인구 부양과 기초연금 지급에 지난해 15조원이 들었지만 5년 뒤엔 30조원이 필요하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700조원을 쌓아놓은 국민연금 기금은 30여 년 뒤인 2053년에 고갈된다. 1년 전의 정부 예상보다 4년 앞당겨졌다. 연금 보험료를 높이고 급여를 낮추는 등의 개혁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고갈 시기는 더 빨라질 것이다. 병역자원 감소에 대비해 모병제로의 전환 등 국방개혁도 시급히 논의해야 한다. 노동시장 구조 변화에 따른 노동개혁도 빼놓을 수 없다.

모든 분야에서 개혁은 절체절명의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회는 개혁과제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개혁은 고사하고 무리한 입법과 정책에 대한 보완책 마련조차 내팽개쳤다. 주 52시간제 도입에 따른 혼란과 부작용을 줄이고자 노·사·정이 어렵사리 합의한 탄력근로제 법안은 국회에서 ‘동작 그만’이다. 내년 최저임금 심의가 코앞인데도 최저임금 결정 구조 개편 내용을 담은 법안은 논의조차 실종됐다.

국회는 개혁과제의 블랙홀

4·15 총선을 앞두고 민생법안은 선거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다. ‘동물국회’를 막으려고 도입한 국회 선진화법이 ‘식물국회’의 주범이라고 탓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맨바닥에 헌정질서를 세운 제헌국회(1948~1950년)도 의안의 87.7%를 처리했다. 국회의원 개개인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무슨 염치로 또 표를 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게 유권자들의 심정일 것이다.

이쯤 되면 개혁 리스트 최상부에 국회를 올려야 한다는 비난이 어색하지 않다. 정부는 연공서열 대신 생산성 위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라고 민간에 주문한다. 생산성(성적)에 따른 인건비(세비) 지급을 국회 개혁 방안의 하나로 검토해봄 직한 때다.

js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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