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베트남이 놓친 세 번의 기회 그리고 절치부심

입력 2020-02-24 18:05   수정 2020-02-25 00:23

베트남엔 세 가지 미스터리가 있다. ‘오토바이 천국’인 나라에 자국 브랜드가 없다는 게 첫 번째다. 베트남 오토바이제조협회에 속한 5개 기업 중 3개는 일본계다. 나머지 2개는 이탈리아와 대만 업체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3444㎞나 되는 해안선을 끼고 있는데도 대형 선박 한 척 제대로 생산하지 못한다. 베트남 조선소에서 건조할 수 있는 건 할롱베이에서 관광객을 태우고 다니는 유람선 정도다.

마지막 미스터리는 삼성과 관련돼 있다. 삼성전자가 2008년 하노이 인근 박닌성에 휴대폰 제조 공장을 지은 지 올해로 12년째인데, 삼성에 납품하는 베트남계 협력사는 포장지 제조업체 정도다. 물론 삼성이 한국에서 기존 협력사를 데려온 영향도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베트남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협력사로부터 부품을 조달할 때 삼성의 기준으로 99점은 0점과 똑같다”고 말했다. 완벽해야 한다는 의미다. 베트남식 사고는 ‘99점이면 100점과 다를 바 없지 않느냐’는 식이다.

이 스토리는 베트남 시장경제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다는 점에서다. 1986년 도이머이 개혁개방 이후 30여 년이 흘렀지만, 베트남은 자신들만의 제조업 역량을 축적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경험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삼성이 자체 기술로 TV 브라운관을 처음 생산한 게 1970년이다. 현대자동차는 포니1을 1972년 양산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D램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건 6·25전쟁의 포화가 멈춘 지 30년이 지난 1983년이었다.

이런 상황을 놓고 베트남 내에서도 자성론이 일고 있다. 태국처럼 이른바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공장만 유치할 게 아니라 기술도 배워야 한다는 요구가 강해지는 추세다.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한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총리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반도체 공장을 지어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베트남 재계 1위인 빈그룹은 자동차, 가전, 휴대폰을 자체 생산하겠다며 공장을 가동 중이다.

베트남의 절치부심은 한국엔 딜레마이기도 하다. 도와주자니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셈이고, 외면하자니 이미 발을 깊숙하게 들여놨다. 삼성만 해도 올해 하노이에 1억6000만달러를 들여 연구개발(R&D) 센터를 짓는다. SK는 빈그룹에 1조원가량을 투자했다.

최근엔 한국의 일부 전자부품 업체가 연구인력을 베트남으로 옮긴 사례도 있다. 한 업체 대표는 “R&D 인력과 시설만큼은 베트남에 안 보내려 했는데, 주 52시간제 이후 그마저도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도 크다. 중국의 공급망이 무너지자 한국 기업들은 앞다퉈 부품·소재 공급처를 베트남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베트남 최초의 산업기술 연구소인 V-KIST의 금동화 원장은 “최선의 시나리오는 베트남으로 중간 단계의 기술을 이전하고 한국은 첨단산업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은 그렇게 공생했다. 최악은 한국이 혁신에 성공하지 못한 채 베트남에 추격을 허용하는 상황이다. ‘0%대 성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가득한 한국을 보고 있자니,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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