셍겐조약이 뭐길래…이탈리아發 코로나에 무방비 노출된 유럽

입력 2020-02-26 10:18   수정 2020-05-26 00:03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 확산되고 있다. 이탈리아 내 확진자가 300명을 넘어선 데 이어 인접 국가인 오스트리아·크로아티아·스위스 등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EU 회원국 간 자유로운 인적·물적 이동을 보장한 셍겐조약이 이탈리아발(發) 코로나19를 유럽 전역으로 확산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하루 동안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스위스 등에선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이탈리아 북부를 다녀왔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이탈리아 북부는 인접국가인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등과 왕래가 활발하다. 매일 수만명의 이탈리아인들이 국경을 건너 일하러 오는 등 밀접한 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다.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의 한 고급 호텔에서도 이날 이탈리아 북부에서 온 투숙객 부부의 코로나19 감염이 확인됐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도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 베르가모와 밀라노를 방문한 이력이 있는 이탈리아 국적 30대 여성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프랑스에서도 롬바르디아주에서 돌아온 프랑스인 남성이 이날 확진 판정을 받았다. 독일서도 확진 판정을 받은 20대 남성도 이탈리아 밀라노를 여행하면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탈리아에선 코로나19 확진자가 이날 기준 322명으로 집계됐다. 전날 229명에서 93명 급증했다. 사망자도 4명 추가돼 11명으로 늘었다.

EU는 지난달 말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진 이후에도 상대적으로 느긋한 반응을 보여왔다. EU 회원국들은 지금까지 중국과 일부 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만 입국 제한 및 검역강화 조치를 실시했다. EU 회원국에서 발생한 확진자는 중국인이나 중국을 다녀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EU 회원국인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의 지역사회 전파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코로나19 확진자 누구도 최근 중국 여행 경력이 없다는 점에 비춰볼 때 지역사회 감염이 기정사실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탈리아 정부는 코로나19 확산 경로를 파악할 수 있는 ‘0번 환자’도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EU 보건당국은 역내 한 국가가 뚫리면 다른 국가도 잇따라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EU 회원국들은 역내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 셍겐조약으로 국경 간 이동에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출입국 절차를 간소화한 셍겐조약으로 인해 인적·물적 이동이 자유로운 유럽 특성상 바이러스가 유럽 전역으로 퍼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95년에 채택된 셍겐조약은 EU 27개 회원국 중 22개 회원국과 스위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등 비(非)EU 4개국 등 26개국이 가입돼 있다. 셍겐조약 가입국은 국경 검문을 최소화해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셍겐조약에 가입한 한 국가에 입국하면 다른 25개국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셍겐조약이 유지되는 한 특정 국가가 다른 국가와의 국경을 일방적으로 폐쇄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탈리아의 인접국인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등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이탈리아에 대한 한시적 국경통제도 한때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EU 행정부인 집행위원회가 제동을 걸었다. 스텔라 키리아키데스 건강·식품안전 담당 EU 집행위원은 지난 24일 “현재 회원국 간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 셍겐조약을 수정할 계획이 없다”고 발표했다. 키리아키데스 집행위원은 “여행 제한은 과학적 근거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며 “세계보건기구(WHO)는 여행이나 무역 규제를 권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스위스, 산마리노 등의 보건장관들도 이날 로마에서 회의를 열고 회원국 간 이동을 막지 않고 지금처럼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기로 했다. 영국과 EU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온 입국자들은 신고를 의무화하고, 14일간 자가격리하는 조치만 시행하고 있다.

EU는 회원국들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이탈리아아의 국경을 폐쇄할 경우 ‘하나의 유럽’을 추구하는 EU의 존립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2015년 시리아 등 중동으로부터 대규모 난민이 유럽으로 유입될 때도 EU 집행위와 회원국들이 셍겐조약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에 이어 이탈리아의 EU 탈퇴를 뜻하는 ‘이탈렉시트’의 가능성을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EU의 고민거리다. 이탈리아 정부는 인접 국가들이 국경을 폐쇄하고 입국을 제한하려는 시도에 대해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국경폐쇄 등을 통해 이탈리아를 고립시킬 경우 이탈리아 내 반(反) EU 감정을 더욱 부추겨 이탈렉시트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코로나19가 확산될 경우 국경 개방이라는 EU의 근본적인 원칙이 중대한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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