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습격에 '21세기 흑사병' 공포…'하나의 EU' 흔들린다

입력 2020-03-09 17:19   수정 2020-06-07 00:02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럽 대륙 전체로 급속히 퍼지면서 유럽연합(EU)이 지향해온 ‘하나의 유럽’이 흔들리고 있다. 프랑스 독일 체코 등이 마스크·소독약 수출을 금지하자 다른 국가들은 “연대 대신 자국민 보호를 택했다”고 비난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난민 문제 등으로 한계를 드러낸 EU 체제가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벼랑 끝에 섰다는 분석이다.

유럽에서 코로나19 확진자는 9일(현지시간) 기준 1만 명을 넘는다. 이탈리아의 확진자가 7375명으로 전체의 70% 가량을 차지했다. 프랑스와 독일도 이날 확진자가 각각 1209명, 1151명으로 집계됐다.

스페인(확진자 979명) 네덜란드(265명) 스웨덴(204명) 벨기에(239명) 등 다른 국가들도 확진자가 적지 않다. 유럽 지역에선 확진자가 전일 대비 20~30% 늘어날 정도로 확산세가 빠르다. 코로나19 진원지인 중국과 인접국인 한국의 증가세가 꺾인 것과 대조적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EU 보건 체계에 대한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EU 27개국 보건부 장관들은 지난 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긴급회의를 열었지만 구체적 조치를 내놓지 못했다.

EU 내부에선 코로나19 사태로 의약품이 부족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인도와 중국이 의약품 원료 생산을 크게 줄이거나 중단하고 있어서다. 3일 인도 정부는 의약품 주성분 26종의 수출을 제한했다. CNN방송은 “유럽 전역은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이전부터 호흡기 관련 약품 부족이 심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 불안으로 EU 회원국 간 갈등이 표면에 드러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체코는 잇따라 마스크, 일회용 장갑 등 위생용품에 대해 수출 제한령을 내렸다. 자국 내 공급 부족을 막기 위한 조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3일 ‘마스크 징발령’을 내리고 정부가 마스크 생산과 유통을 관리하겠다고 했다. 일반인은 의사 처방이 있어야 마스크를 구할 수 있다.

다른 국가들은 이 조치를 강하게 비판했다. 매기 드 블록 벨기에 보건부 장관은 “회원국 간 수출을 차단하는 것은 EU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야네즈 레나르치치 EU 위기관리담당 집행위원은 “수출 금지 조치는 위기에 대처하려는 EU의 공동 접근법을 약화할 위험이 있다”며 수출 금지 철회를 요구했다. 그러나 프랑스 독일 등은 조치를 철회하지 않았다.

국경을 둘러싼 EU 회원국 간 분열도 심화하는 모양새다. EU 회원국은 솅겐 조약에 따라 회원국 간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대거 확진자가 나온 이후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전선의 마리 르펜 대표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간 국경을 폐쇄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민주적이라고 자부해온 일부 유럽 국가가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다”며 “EU가 대륙 전체에 걸쳐서 발생하는 공중 보건 위기에 대응하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EU의 경제 상황이 더 악화하면 결속력은 더 약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탈리아가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1600만 명의 이동을 막는 고강도 정책을 내놓자 산업 전문가들은 자동차 공급망 등 산업 생태계가 마비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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