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감염병이 만든 격리 공간

입력 2020-03-15 18:29   수정 2020-03-16 00:05

건축 공간은 사회의 제도에서 비롯한다. 공간은 곧 제도이며 제도는 공간으로 나타난다. 병원 건물 그 배후에는 환자를 공동체에서 배제하고 격리하는 근대의 의료제도가 있다. 병원만 그럴까? 주변 환경에 무심하게 서 있는 수많은 상자 모양의 건물 유형도 대체로 일종의 격리시설이다. 벽을 두고 바깥 사회로부터 아이들을 지킨다고 굳게 믿는 학교나 작품을 지키는 미술관이 있다면 모두 그런 교육 제도와 미술관 제도가 함께 만든 격리시설이다.

19세기 탄생한 근대 집합주택도 마찬가지다. 1855년 프랑스 뮐루즈에는 2000명이 사는 최초의 대규모 노동자 주택이 완성됐다. 이 주택은 주변에 밭을 두고 벽으로 확실히 나눈 뒤 서로 간섭하지 않도록 모두 다르게 출입하게 했다. 주민끼리 공유하는 게 전혀 없이, 자기 가족만이 그 안에서 친밀한 사생활을 보장받는 주택, 모두 평등한 듯 보여도 결국 격리된 주택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강타한 이탈리아 밀라노는 1484년과 1485년 사이에도 중국에서 시작한 페스트가 실크로드를 거쳐 들어와 시민의 3분의 1인 5만 명이 희생당했다. 이를 경험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90년 과밀상태 해소와 위생을 위한 도시계획안을 제안했다. 그는 10개의 거리에 3만 명을 이주시키고 통풍이 잘되는 집을 지어 페스트를 퍼뜨리는 사람들이 지금처럼 한곳에 모이지 않도록 물리적으로 분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19세기 전반 폭넓은 교역으로 사람과 물자가 빠르게 왕래하던 영국에서는 콜레라가 이전과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급속히 전파됐다. 이때 리버풀은 인구 23만 명 중 약 5000명이 감염됐고 1500명이 사망했다. 이에 1845년 실험적인 공중목욕탕과 세탁장을 건설하고, 1846년에는 공중목욕탕과 세탁장법을 만들었다. 이어 1848년엔 유해물을 제거하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공중위생법을 제정했다. 이 공중위생법을 배경으로 과밀 주거, 불완전한 배수 등 위생적이지 못한 주택을 확인하는 주거법이 생겼고 도로의 폭, 벽면선, 건물 주위의 공지, 건물의 높이 등을 정한 건축법과 건축조례도 처음 나왔다. 역설적이게도 건축과 도시를 획기적으로 바꾼 제도는 무서운 감염병 때문에 생겨났다.

영국의 벤저민 리처드슨이 1876년 출간한 《하이게이아: 건강 도시》도 근대 도시계획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공기 전염을 막기 위해 분동(分棟)을 했던 근대 병원처럼 도시를 16㎢마다 기능별로 나눴다. 주거지역, 공업지역이라는 근대 도시계획의 지역지구제가 감염병을 방지하려는 위생 문제에서 나왔다. 전체 인구를 균질하게 분산하기 위해 격자 도로를 뚫고 건물의 거리를 균일하게 뒀다. 형태가 똑같은 병원 20개를 같은 간격으로 배치하며, 병원에서 감염병이 발생하면 병실을 부수고 소독한 뒤에 새 병실을 다시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격리’를 영어로 ‘quarantine’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어 ‘40일(quaranta giorni)’에서 나온 말인데, 감염병이 돌았을 때 문제가 되는 배를 40일 동안 항구에 격리한 채로 있게 했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우려가 있어 자기 집에서 ‘자가격리’하는 사람은 가족과도 다른 방에서 일정 시간 떨어져 있어야 한다. 심지어는 식기와 수건, 침구도 공유하지 않은 채 따로 써야 한다. 또 다른 병원이 된 집에서조차 공간과 사람과 도구가 모두 분리되고 단절된다. 다른 사람과 접촉하지 않는 것, 2m 정도의 거리를 두는 것,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가지 않는 ‘사회적 거리두기’도 마찬가지다.

감염병은 건축을 격리하고 도시를 분단하도록 하는 제도로 바꿔놨다. 그 제도로 계획된 격리된 공간은 계속 남아 우리를 구속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북적이던 도시의 대형건물은 텅 비었고 사회적 관계는 모두 정지돼버렸다. 이 감염병은 연속해서 이어져야 할 우리의 일상생활을 분단하고 집 안으로 몰아넣고 격리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최후의 방어선인 마스크에 의지한 채 공간의 격리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몸으로 실감하며 하루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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