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낭만(浪漫)과 소신(所信) 사이

입력 2020-03-26 17:07   수정 2020-03-27 00:07

“힘 빼세요, 무릎은 펴시고요.” 수영을 배우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물에만 들어가면 잔뜩 굳어지니 힘을 빼라는 것은 어불성설. 따라서 무릎도 펴질 리가 없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매일 훈련하다 보면 거짓말처럼 힘이 빠지며 무릎이 펴지는 순간이 온다. 이른바 물아일체의 경험. 한 번이라도 체험하면 이후 수영은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 되는데 마치 영화 ‘취권’의 청룽이 술 취한 듯 비틀거리며 강력한 권법을 구사하는 득도의 순간과도 같다.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2’(SBS)에 등장하는 김사부(한석규 분)는 완급 조절에 능한 수영선수나 권법의 달인 못지않다. 그는 성공지향적인 의료계를 인본주의의 장으로 이끌어가며 하자 있는 후진들에게 기회를 부여하는 외과의사. 안위와 타협이 아니라 도전과 소신의 상징이어서 온갖 정은 다 맞는다.

위급한 외상 환자들을 오랜 경험과 연구를 통해 공격적으로 치료해온 그의 행보는 동료 의사들의 견제와 질투의 대상이다. 방어적인 의료계 관행은 김사부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는 오로지 사람 살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결국 그의 이 절체절명인 철학은 신실한 사람들을 이끈다. 독불장군처럼 군림하는 것이 아닌, 대의를 위해 어느 정도의 타협도 수용하는 김사부의 행보는 그 앞에 늘 붙는 수식어 ‘낭만’으로 부연된다.

‘킹덤’ 시리즈(넷플릭스)의 세자 창(주지훈 분)과 의녀 사비(배두나 분)는 흔들리는 소신을 바로잡으며 위기를 극복해 낭만을 누리는 성장형 캐릭터다. 나약하고 외로웠던 세자 창은 대립하는 영의정(류승룡 분)의 악행을 드러내며 역병으로 좀비가 된 백성을 구하는 과정에서 생사를 넘어선 동지애를 경험한다. 개인보다는 전체를, 위압과 봉쇄보다는 참여와 이해를 구하는 창은 왕위보다 더 소중한 사람들을 얻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 중인 작금의 상황은 ‘킹덤’ 속 왕정시대와 닮아 있다. 넷플릭스에 시즌2가 공개되자마자 각국의 코로나19 대처 상황과 비교되며 SNS를 통해 화제를 낳는 중이다. 바이러스 치료제를 연구하고 원인을 찾아내며 사람을 얻어가는 수많은 세자 창과 의녀 서비가 세계 각국에 있기 때문이다.

‘이태원 클라쓰’(JTBC)는 박새로이(박서준 분)라는 21세기형 소신의 아이콘을 내놓았다. 옳다고 생각한 일에서는 어떤 권력자와도 타협하지 않았던 새로이는 그로 인해 아버지를 잃고 옥살이를 하고 원양어선을 타지만 인연이 닿은 동료들의 소신과 꿈을 열심히 배양하며 기적 같은 성공을 이룬다.

소신(所信)의 사전적 의미는 ‘굳게 믿고 있는 바’이다. 낭만(浪漫)은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이다. 모두 주체적인 삶을 가리키지만 이성적이고 이상적이라는 차이는 있다. 김사부의 낭만과 세자 창의 소신, 박새로이의 소신은 조금씩 결이 다르지만 사람을 소중히 하고 성장시킨다는 공통점이 있다. 힘을 빼야 하는 수영과 취해야 더욱 강해지는 취권처럼 유연한 소신은 낭만으로 승화되고 더 많은 사람을 남긴다. 역병이 창궐하는 시기, 불안과 공포와 슬픔이 잠식하는 현 시국에 더욱 필요한 삶의 지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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