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 대표 안전자산 금(金) '골든타임' 다시 온다

입력 2020-04-02 09:30   수정 2020-04-02 09:52


코로나 경제위기가 본격화한 지난 3월 이후 세계 자산시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 펼쳐졌다.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으로 번진 코로나19 여파로 세계 각국 증시와 원유, 금 등 상품 가격이 추락하고, ‘유일한 안전자산’으로 꼽힌 달러의 가치만 높아졌다. 이후 미국 등의 무제한 양적완화 처방으로 주요국 주가지수와 통화가치는 잠시 회복하는 듯 했지만 아직 약세다. 반면, 금값은 언제 그랬냐는 듯 ‘V자 급반등’ 하는 힘을 보여줬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 시세가 짧은 기간이나마 달러와 반대 그래프를 그린 점도 흥미롭지만, 금이 달러에 필적하는 견고한 가치평가와 가격흐름을 지속해 나갈 지 관심이 모아진다. ‘신(新) 금본위제’의 필요성을 주창해온 학자나 뉴노멀(New Normal) 시대 세계금융시스템의 불안 양상에 비춰 ‘보험’으로서 금 보유를 주장한 투자전략가들의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인상적인 가격 리바운드

원유부터 보자.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증산 경쟁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달은 별도 요인이 있긴 했다. 배럴당 40달러대 중반에서 거래되던 서부텍사스원유(WTI)의 경우 지난달 초부터 가격이 가파르게 떨어져 29일엔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한때 배럴당 19.92달러(5월물 기준)를 기록했다. 18년 만에 20달러가 붕괴된 ‘대참사’다. 원유 파생결합증권(DLS)에 억 단위를 투자한 한 지인은 녹인(Knock-In, 원금손실구간)은 각오했지만, 20여일이 지났는데도 녹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해 속을 태우고 있다.

놀라운 것은 금값이다. 작년 2분기 온스당 1200달러대 후반에서 본격 상승장을 연출하다 지난 달 9일 1674달러로 정점을 찍고는 18일까지 1477달러까지 떨어졌다. 전 세계 증시가 폭락하면서 주식 등 위험자산의 가격이 동시에 급락한 여파다. 마진콜(선물계약 기간 중 선물가격 변화에 따른 추가증거금 납부 요구)이 확산되면서 안전자산으로 분류돼온 금까지 팔아서 달러를 사야 했던 것. ‘위기 때 믿을 건 달러 뿐’이라는 경험칙이 작용한 결과다.

극적인 부분은 그 다음이다. 미국 다우지수의 경우 2만6000선에서 미끄러진 뒤 급반등하면서도 아직 2만2000선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국제 금시세는 온스당 1620달러대로, 거의 자산시장 급락 전 가격대까지 올라왔다. 무제한 양적완화로 유동성 우려가 해소된 점 외에 미국 4조2000억 달러 등 전 방위적인 주요국 경기부양책 발표가 금값을 현기증 날 정도로 다시 밀어올린 것이다. 세계경제 전망을 놓고 ‘U자냐, V자냐, L자냐, I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나오지만, 금시장만큼은 확실히 V자를 그려낸 3월 한달이었다.

◆‘글로벌 골드러시’도 한 몫


팬데믹으로 세계적 경제위기 가능성이 거론되는 데다 글로벌 수요침체도 가속될 수밖에 없지만, 금시장에는 ‘공급 애로’라는 뜻밖의 반가운 소식도 전해졌다. 페루, 남아공 등지의 세계적 금광산과 제련소들이 코로나19 전염으로 셧다운(폐쇄)되고, 스위스 골드바 제작업자들도 감염 우려로 공장 문을 닫고 있다. 항공기 운항에 제동이 걸리면서 항공편을 통한 금 수송도 어려워졌다. 10조 달러 어치의 금이 지구상 어딘가에 있다지만, 정작 소비자들이 찾는 골드바는 시장에서 품귀다.

월가 뱅커들은 가까운 캐나다왕립조폐청에 전례 없는 규모의 금 매수주문을 넣고 있다. 고객들의 골드바 매수 주문이 갑자기 몰려들자 크레디트스위스는 ‘주문 사절’을 선언했을 정도다. 이 영향으로 지난 3월 넷째 주 금선물 가격은 약 9% 올라 7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주일 만에 약 9% 오른 것은 2000년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리먼 브라더스 사태 때도 금선물 가격이 이만큼은 뛰지 않았다. 미국의 금선물과 런던의 현물 가격차가 온스당 70달러까지 날 정도였다.

◆글로벌 경기부양의 헤지 수단

미국 중앙은행(Fed)이 지금처럼 돈을 ‘살포’할 때는 달러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여파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든지, 거꾸로 경제위기 발발로 디플레이션에 직면하더라도 안전자산 금의 가치는 더욱 부각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 제프리 커리는 “지금 겪고 있듯이 정책 당국이 시장 쇼크에 적응하려 할 때 통화가치가 떨어진다”며 “금은 이에 대한 헤지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어 “누차 얘기해 듯이 금이야 말로 최종 화폐, 내지 궁극적 화폐(Currency of Last Resort)”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글로벌 범위의 경기부양책은 실질금리 하락, 통화량 증가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금값은 실질금리와는 반대로 움직이고, 글로벌 통화량과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속성을 갖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한 것으로 유명한 피터 시프 유로퍼시픽캐피탈 최고경영자(CEO)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투자자들은 중앙은행 사람들과 비슷한 사고구조(마인드셋)를 가졌다. 지금의 통화정책(무제한 양적완화 등)의 실책이 얼마나 나쁜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는 것 같다. 그 문제를 알게 될 때는 이미 금값이 폭등하고 있을 것이다.”

◆개인도 ‘금의 귀환’에 대비해야

코로나발(發) 글로벌 시장의 급등락을 경험한 지난 한달 이후 금에 대한 투자자들의 시각은 일단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점에서 조금 긴 안목으로 ‘궁극 화폐’로서 금예찬론을 펴는 전문가들 얘기를 들어볼 만하다. 단기적인 금값 전망을 잠시 내려놓고 말이다. 이들은 금값(예, 금의 달러표시 가격)이 오르내릴 때 금의 가치가 아니라, 달러 가치가 변해서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금값이 널뛰는 것은 금이 아닌 달러에 대한 인식이 변해서다. 달러의 약점이 드러날 때 금은 확실히 안전한 피난처가 된다는 것이다.

《화폐전쟁(Currency Wars)》의 저자로 유명한 금융전문가 제임스 리카즈는 2016년 낸 《금의 귀환(The New Case for Gold)》에서 다음과 같이 예견했다. “Fed는 2017년까지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갈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미국 경기의 후퇴를 가져온다면 다시 금리를 인하할 것이다. 이는 금의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상황이다.”

세계 전역에 부채가 늘어나고 저성장, 저금리에 금융불안은 커진다. 금융위기는 항상적으로 세계시장을 위협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합세했다. 미국 달러의 힘을 중심으로 한 국제통화시스템이 불안 불안하다. 미국이 먼저 나서서 한국 등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고, 각국 중앙은행들에 환매조건부채권(레포) 창구를 연 것도 달러의 힘과 이를 근간으로 한 국제통화시스템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따라서 금을 보유하는 것은 자칫 급속도로 불안정해질 수 있는 국제통화시스템에 대비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리카즈의 말을 다시 인용해본다. “달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달러가 가치보존 기능을 상실하면 국제통화시스템의 새로운 붕괴가 시작될 것이다. 이같은 붕괴는 30년 주기로 있어왔다. 화폐의 역사를 살펴보면 현 국제통화시스템은 유효수명이 다했으며 새 시스템으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궁극 화폐’로서의 안전성, 그리고 양적완화 재가동으로 화폐가치가 끊임없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세계 경제를 생각할 때 이런 주장은 깊게 곱씹어볼 만 하지 않을까 싶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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