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IEA "과거 겪지 못한 충격을 경험하고 있다"

입력 2020-04-02 08:49   수정 2020-04-02 09:42


"글로벌 석유산업은 과거 겪어보지 못했던 충격을 경험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1일(현지시간) 이런 제목의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실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수요 충격과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간 유가전쟁으로 인한 공급 충격이 겹치면서 모든 참여자들이 과거에 없던 타격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유가 전쟁은 1일로 공식 개막됐습니다. 지난 3월7일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서 추가 감산 결렬과 함께 기존 감산합의(~3월말) 연장도 실패한 탓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가 예고한 대로 일일 산유량을 1200만배럴 이상으로 끌어올렸다고 보도했습니다. 3월 하루 970만배럴에서 20% 이상 증산하는 겁니다. 사우디 사상 최대 산유량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주 전화를 하고,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달 방문해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만났지만, 사우디는 막무가내입니다.



아람코는 15대 초대형 유조선을 구해 1880만배럴을 실었다고 소설미디어 계정을 통해 자랑스럽게 밝혔습니다. 사우디의 한 당국자는 WSJ과의 인터뷰에서 "구매자를 구하지 못해 목적지 없이 원유를 실은 유조선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결국 대폭 할인을 통해 팔 수 밖에 없습니다. WSJ은 사우디가 미국 석유회사들에게 15% 추가 할인을 제안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싱가포르의 한 원유 트레이더는 S&P글로벌플랫츠와의 인터뷰에서 "중동 원유가 정말 싸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이걸 샀다가 팔 수가 없다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는 이날 증산에 돌입하지는 않았습니다. 유가가 너무 낮다는 이유입니다.

이날 서부텍사스원유(WTI) 5월물은 다시 장중 배럴당 19.90달러까지 떨어져 또 다시 심리적 지지선 20달러를 밑돌았습니다. 브렌트유 6월물은 1.61달러(6.1%) 급락한 배럴당 24.74달러에 거래됐습니다.

하지만 러시아가 전쟁에서 물러섰다고 보는 건 섣부른 오해입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미국이 원유 시장 상황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이건 그들에게도 심각한 도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에게도 문제지만 미국이 더 힘들 것이란 얘기입니다.

또 "만약 투자가 줄어든다면 유가는 당연히 반등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어는 빠졌지만, 미국에게 셰일산업 투자를 알아서 줄이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에서 "푸틴 대통령, 빈살만 왕세자와 연쇄 전화회담을 가졌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블룸버그통신은 "러시아와 사우디가 대화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으며, 세 지도자가 모이는 회의가 열릴 것으로 기대되지도 않는다. 푸틴이나 빈살만 왕세자는 정치적 유연성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실제 급한 건 미국입니다.

대형 셰일업체 중 처음으로 화이팅페트롤리엄(Whiting Petroleum)이 이날 파산보호를 신청했습니다. 지난 석달간 주가가 91% 급락한 곳입니다. 또 콜론페트롤리엄(Collon Petroleum)은 부채구조조정을 위해 자문사를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화이팅은 파산 신청 이후에도 악재가 터졌습니다.
블룸버그가 "화이팅 이사회가 며칠전 최고경영진에 대해 현금보너스 1460만달러 지급을 결정했다"고 보도한 겁니다.곳곳에서 비난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셰일업계 전체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의 원유 재고는 기록적 속도로 폭증하고 있습니다. 이날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지난주 원유재고가 1383만 배럴 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예상치 450만배럴보다 3배 가까이 많은 겁니다. 특히 휘발유 재고는 752만배럴 폭증했습니다.

지난주(~27일) 원유생산은 여전히 하루 평균 1300만배럴로 여전히 역대 최대 수준을 유지했지만, 휘발유 수요는 경제가 '셧다운' 되면서 하루 880만 배럴에서 670만 배럴로 감소한 탓입니다. 이것도 아직 바닥을 친 게 아닙니다.


골드만삭스는 이번 주 세계 석유 수요가 하루 2600만 배럴, 즉 25% 감소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중앙아메리카 및 전체 캐리비안 국가들의 총 소비량을 합친 것보다 많은 양입니다.

씨티그룹 분석에 따르면 이번주 세계 원유저장시설에 하루 2000만배럴씩 원유가 채워지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하루 470만배럴 이상 채워진 적이 없습니다.

급해진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3일 백악관에서 엑손모빌의 대런 우즈 최고경영자(CEO), 셰브런 마이크 워스 CEO, 옥시덴탈의 비키 홀럽 CEO 등 7명과 긴급 회의를 갖습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미국에 수입되는 사우디산 원유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자는 주장이 있지만, 사우디 유종에 최적화해놓은 유화설비를 가진 상당수 회사가 반대하고 있습니다.

미 경제가 호황이라면 유가 하락은 좋은 점이 큽니다. 셰일산업이 타격을 받아도 소비자들은 낮은 유가 덕분에 다른 소비를 늘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의 자동차는 모두 집에 서 있습니다. 3억명 가까운 인구가 집에 묶여 있습니다. 저유가의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겁니다.

반면 셰일업체들은 수요 감소+공급 증가의 이중 타격에 휘청이고 있습니다. 이들이 화이팅을 시작으로 줄줄이 파산에 들어가면 하이일드 채권시장부터 얼어붙으면서 파산은 가속화될 수 있습니다. 이는 금융시장을 통해 경제 전체로 전염될 수 있습니다.

셰일 등 미국의 석유산업은 직간접적으로 미국 일자리의 5%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인 2017년 이후 고정투자 증가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왔습니다.

미국의 유명투자자 하워드 막스 오크트리 창업자는 이날 임직원들에게 10페이지 분량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핵심 내용은 "저가매수(Buying the dip)할 때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금융사 연쇄파산과 경제에 대한 영향을 걱정했지만 일상 생활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 생명에 대한 명백한 위협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적 고립과 질병 및 사망, 경제 축소, 정부에 대한 막대한 의존, 장기적 불확실성 등 부정적 범위가 훨씬 넓어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포트폴리오는 긍정적 예상에 맞춰져있고, 더 나빠질 가능성에 적합하지 않다"며 "추가 하강 가능성에 대응하고 준비하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막스가 지적한 여러가지 추가 하강 가능성 중 하나가 바로 유가입니다.

그는 작년말 61달러이던 유가가 19달러까지 떨어졌다면서 이는 셰일업계의 피해와 일자리 손실, 자본투자 감소, 미국의 석유독립 침해 등 미국 경제에 여러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날 뉴욕 증시에서 다우 지수는 4.44%, S&P 500 4.41%, 나스닥 4.41% 하락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매우, 매우 고통스러운 2주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게 투자자들의 현실인식을 깨웠습니다. 미국의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는 이날 2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옥시덴탈 7.25%, 마라톤오일 5.17%, 슐럼버거N.V. 6.67% 폭락하는 등 에너지주식이 하락세를 이끌었습니다.
(일부에선 오늘 하락 원인으로 연기금·펀드들의 3월말 1분기 리밸런싱 수요를 노려 월가의 '스마트 머니'들이 미리 주식을 샀다가 이번 주 한발 앞서 팔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저유가의 문제는 미국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사우디나 러시아는 버틸 힘이 있습니다. 수천억달러 국부펀드를 갖고 있습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 몇년간 금만 1200억달러 어치를 쌓아놓았습니다.



하지만 이라크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 석유 원자재 등에 의존해온 신흥국들은 다릅니다. IEA 추정에 따르면 이들 국가의 올해 수입은 50~85%까지 줄어듭니다.

뉴스에서 가려져있지만, 이렇게 기초 체력이 떨어지는 신흥국들은 최근 달러 가뭄에 가장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최근 미 중앙은행(Fed)은 신흥국 등 해외 중앙은행을 위한 레포(환매조건부채권) 창구를 개설하기로 했습니다.
해외 중앙은행들이 보유한 미 국채를 담보로 맏기면 그만큼 달러를 빌려주는 겁니다.

Fed가 선의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이날 크레딧스위스는 지난달 해외 중앙은행들이 1000억달러가 넘는 미 국채를 매각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달러를 구하기 위해 국채를 내던진 겁니다.



지난달 미 국채 10년물은 지난달 9일 연 0.31%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18일에는 1.18%까지 치솟았습니다. 이들의 투매 탓입니다. 물론 신흥국외에 다른 나라들도 매각했을 수 있습니다.

모든 자산의 벤치마크인 미 국채 값이 이렇게 요동치면 금융시장 혼란은 걷잡을 수 없게됩니다. Fed의 시중 금리에 대한 컨트롤 능력도 의심받게 되지요.

결국 저유가는 세계 각국, 경제와 시장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치게됩니다.

IEA는 앞서 얘기한 보고서에서 "저유가의 반향은 에너지 시장을 넘어 확장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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