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다자적 통상규범·협상력 회복 주력해야

입력 2020-04-08 18:24   수정 2020-04-09 00:16

세계 경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란 암초에 걸렸다. 미·중 무역전쟁이 코로나전쟁으로 확전되고 있다. 글로벌 리더십의 부재가 변종 바이러스처럼 세계 경제를 감염시켜 이를 악화시키고 있다. 독일이 항복하기 10개월 전인 1944년 7월 연합군 참여 44개국이 종전 후 브레턴우즈 체제를 논의했듯이 ‘트럼프·시진핑 증후군’을 넘어설 채비를 서둘러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립적 고립주의’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통제적 대국주의’는 종식돼야 한다. 지난 3년 반 동안 미국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앞세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비롯한 양자 협정은 물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파리기후변화협약,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주의 협정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거나 탈퇴했다. ‘중국제조 2025’를 추진하는 초강대국 중국도 외국인 투자기업의 기술을 탈취하고 지식재산권을 침탈하며, 정부의 불투명한 통제적 시장 개입 등을 통해 ‘중국몽(夢)’을 달성하려 든다면 2021년 이후 시 주석의 장기집권이 실현되더라도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이후 대내외 경제구조와 체제를 구조조정해야 하는 지금이야말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먼저 보호무역주의의 일상화를 수용하고 체질과 태도를 바꿔야 한다. 트럼프식 대립적 고립주의와 시진핑식 통제적 대국주의는 글로벌 경제를 고사시키거나 비틀어대는 상당한 독성이 있지만 자국민의 단기적 이기주의를 충족시키는 인기 있는 마취 성분도 있다. 그래서 양국의 이런 정책적 기조는 관성 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수입 규제 조치들이 해소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정공법으로 대응하는 전투력을 발휘해야 한다. 우회 덤핑행위가 아니고, 보조금 수혜가 아님을 입증할 자료를 꼼꼼히 챙겨야 한다. 수입국의 부당한 산업피해 주장을 법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현지 법률 서비스와 인프라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양자적 통상 압력을 완충시킬 수 있는 다자적 통상 규범과 협상력을 회복해야 한다. 글로벌 경제 전체를 위해서도 다자주의 통상체제를 혁신해 국제 통상규범을 확장하고 심화시켜야 한다.

한국이 무기력한 WTO를 주도적으로 일으켜 세우기는 어렵지만 지렛대 역할은 시도해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가 적극 참여하고 있는 디지털 통상규범 이슈를 통해 다자주의적 논의의 불씨를 되살릴 수도 있다. 한국은 지난해 농업분야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함으로써 당당하게 무역장벽 해소를 주장할 수 있게 됐다.

또 FTA 체결국과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지역주의를 강화해야 한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통상과 개발 협력의 의제를 선도하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의 경제협력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미·중의 일방적 통상 압력을 완화시킬 지역 공동 방어막을 강화해야 할 시기다.

유럽 경제공동체의 자본주의 경험과 저력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유럽연합(EU) 정상회의는 지난해 12월 유럽 그린딜(Green Deal) 정책에 합의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글로벌 사회·경제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리더십을 발휘하려는 움직임이다. 우리나라가 환경 가치를 중심으로 EU 주도의 그린딜에 적극 호응하는 것도 ‘미·중 리스크’를 완충하는 방편이 될 것이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나 정치·군사적으로나 미·중 패권전쟁의 한복판에 있다. 섣부른 중립선언이나 어설픈 외줄타기는 양방으로부터 외면당하거나 공격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우리 스스로가 대외적으로 균형자나 통상강국을 선언하기보다는 실질적인 국익 카드에 따라 안보와 통상 협상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국가 전략을 명확하게 가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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