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평균 관객 0.6명…멀어지는 '기생충의 꿈'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0-04-13 09:30   수정 2020-07-12 00:01


“요즘은 영화관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니까. 영화 보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어”

주말에 만난 친구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코로나19 국면에 밀폐된 공간에서 머무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을 텐데 웬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어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그럴싸합니다.

“손님이 한, 두 명밖에 없어 자연스럽게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하거든. 젊은이들이 바글바글한 클럽에서도 집단감염 사례가 없었는데 영화관 정도면 아주 양호한 것 아니겠어.”

궤멸 직전의 영화산업

‘코로나19 쇼크’의 직격탄을 맞은 영화산업의 단면을 보여주는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현실입니다. 이 같은 실상은 숫자로도 드러납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번 달 들어 지난 12일까지 한국영화 관객 수는 2만6247명에 불과합니다. 하루 평균 2187명입니다.

전국적으로 극장이 556개, 스크린 숫자가 3157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달 들어 하루에 극장당 3.9명, 스크린당 0.6명이 찾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내 집 안방에서 TV 보듯 영화를 관람한다”는 얘기가 전혀 과장이 아닌 셈입니다.

한국 영화산업은 영화관 매출을 제작사?배급사?마케팅사 등이 사후 정산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영화관 실적악화로 인해 상영→투자→제작→배급으로 이어지는 생태계가 붕괴 위기에 몰린 것입니다.

미증유의 코로나19 쇼크로 영화 뿐 아니라 관광?스포츠?뮤지컬?미술?음악 등 문화산업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힘들지 않은 분야가 없겠지만 영화산업의 타격은 특히 뼈아픕니다. 산업의 규모나 고용창출 효과 등의 측면에서 다른 분야에 비해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한국 영화산업은 최고의 한 해를 보냈습니다. 전체 극장 관객 수는 전년 대비 4.8% 증가한 2억2668만명, 매출 5.5% 늘어난 1조9140억원으로, 모두 사상 최대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영화 ‘기생충’의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으로 한국 영화의 위상이 한층 높아지기도 했지요.

영화는 배우에서부터 스태프까지 관계된 인원이 많아 고용 유발효과가 가장 큰 산업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영진위의 2016년 ‘한국 영화산업의 경제적 파급효과 추정’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한국 영화산업의 고용?취업유발 효과는 8만명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후순위로 밀린 지원

파급효과도, 코로나19로 인한 타격도 크지만 영화산업은 정부의 지원 우선 순위에서 밀려 있습니다. 정부가 지난 1일 관광?영화?통신?방송에 대한 지원방안을 발표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영화관에 대한 영화발전기금 부과금(2016∽2019년 연평균 540억원) 한시 감면 추진 △영화기금 변경을 통한 업계?종사자 지원 △코로나19 상황 진정 시 영화 관람객 할인권 제공 등에 머물러 지원규모가 빈약하고 내용도 추상적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영화기금을 활용한 업계?종사자들에 대한 지원 역시 관계 부처 간 협의 등을 이유로 지연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지난 8일 열린 제4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논의된 ‘선결제?선구매 등을 통한 내수 보완방안’에도 피해 업종을 음식숙박업?관광업?공연 관련업?여객운송업 등으로 국한했습니다. 영화산업은 제외됐지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영화계는 ‘코로나대책영화인연대회의’를 구성하고 지난달 25일과 지난 3일 두 차례에 걸쳐 정부의 긴급 지원을 호소하는 공동성명을 냈습니다. 영화인연대회의에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한국영화감독조합?영화단체연대회의?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한국영화제작가협회?여성영화인모임 등 창작자들은 물론이고 영화수입배급사협회?한국상영관협회?한국영화마케팅사협회?한국영화디지털유통협회?예술영화관협회?CJ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씨네Q 같은 극장까지 대부분 참여했습니다.

한 때 대규모 멀티플렉스의 높은 점유율을 놓고 독과점 논란을 일으키며 대립했던 이들이 너나 할 것 없는 위기에 손을 잡은 것입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영화 관련업의 특별지원 업종 지정 △극장에 대한 금융지원 강화 △연말까지 영화발전기금 면제 △영화지원기금 용도 변경 통한 긴급자금 지원 △모태펀드 추가 투자 △마케팅사 등 관련 기업에 대한 인건비 지원 △영화인에 대한 생계비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생존이 ‘화두’된 영화계

항공?해운?조선?석유화학 등 국가 기간산업이 받은 타격 또한 크고, 예상되는 피해 규모도 훨씬 큽니다. 그런 만큼 정부가 이들 산업에 떨어진 불부터 끄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경제적 효과 등을 제외하더라도 ‘영화 한류’가 관광객 유치 등 한국에 가져다주는 유무형의 효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일 것입니다. 지원규모가 크지 않고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이후 빠른 회복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지원에 따른 부담도 상대적으로 덜한 펀입니다.

지난해 한국 영화산업이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고는 하지만 한국영화의 경우 장르 다양성이나 점유율 등의 측면에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에 크게 밀렸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와중에 터진 ‘기생충 쾌거’를 기반으로 “2020년을 한국 영화 부흥의 원년으로 만들어보자”는 분위기가 컸습니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19가 터지는 바람에 한국 영화계는 부흥은커녕 생존을 걱정해야할 처지가 돼 버린 것이지요.

무엇보다 ‘제2?제3의 봉준호’를 꿈꾸며 ‘영화판’에 들어온 창의력 넘치는 젊은이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꿈을 포기해야할 처지에 놓인 게 안타깝습니다. 다른 어떤 산업보다 개인의 역량의 중요한 문화산업의 특성상 당분간 인재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유입은 막히게 될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합니다.

그렇게 되면 부활의 시간도 그 만큼 늦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겠지요. 어쩌면 한국 영화산업의 경쟁력이 영원히 회복불가 상태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찾아올 새 시대에 세계인들은 코로나19로 받은 상처를 문화?예술을 통해 치유 받으려고 할 것입니다.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이 끝난 1871년부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1914년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문화예술이 찬란하게 꽃피었던 ‘벨 에포크(belle epoque·아름다운 시대)’처럼 말이지요. 언젠가 찾아올 그 때를 준비조차 할 수 없는 ‘진짜 위기’만은 피해야하지 않을까합니다.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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