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판] 총선판 짠 양정철-박형준, 킹메이커 역할도 하나

입력 2020-04-13 16:09   수정 2020-04-13 16:11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총선 전략 수립 중추 역할
차기 대선 ‘정권 재창출’-‘정권 탈환’ 총대도 멜 가능성

사진=연합뉴스

“‘4·15 총선’은 양정철과 박형준의 전략 대결이었다.”
선거 전략통으로 꼽히는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번 총선전의 여야 전략은 양정철 민주연구원 원장과 박형준 미래통합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의 머리에서 그려졌다”며 이 같이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꼽히는 양 원장이 지난해 5월 약 2년간의 해외 유랑 생활을 끝내고 돌아와 다른 직함도 아닌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원장을 맡은 것 자체가 ‘총선 전략용’이었다. 박 공동위원장은 지난해부터 중도 보수 통합을 주도하면서 미래통합당 탄생의 산파 역할을 했다.
이번 총선에서 선거 전략의 중추적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현장을 돌며 각기 ‘코로나19 대응’과 ‘정권·조국 심판’론을 외치며 전초전을 벌인 두 사람의 눈은 이번 총선만 바라보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정치권에선 총선을 넘어 차기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양 원장)과 정권 탈환(박 공동위원장)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킹메이커’ 역할이다.
공약·인재 영입 등 굵직한 사안들 양정철 원장 손 거쳐
양 원장은 정치에 별 관심이 없던 문재인 대통령을 정치권으로 이끈 주역이다. 2011년 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 출간을 주도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 다른 문 대통령 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의 회고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가 시작된 뒤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의 정책들의 역류 현상이 심하다고 봤다.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운명’이라는 책을 내면서 많은 분들이 문 대통령에게 정치에 나서라는 설득과 요구가 있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문 대통령의 경쟁력이 꽤 높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양 원장과 함께 정치를 하자고 설득하고 요청했다.”
양 원장은 문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하자 재도전에 나서도록 길을 닦았다. 대선 캠프 역할을 한 ‘광흥창팀’을 이끌면서 문 대통령의 동지로까지 불렸다. 2016년 히말라야 트레킹과 책 콘서트 기획 등을 통해 문 대통령이 다시 대선 후보로 나서도록 했고 2017년 대선 전반의 전략이 그의 손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대선에서 승리한 뒤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외국으로 떠났다. 그는 외국으로 떠난 이유에 대해 “나무는 가만있으려고 해도 바람이 가만두지 않는 법”이라며 “괜히 한국에 있다가 ‘비선 실세’ 따위의 억측이나 오해를 받기 싫었다”고 했다. 그런 그가 ‘4·15 총선’을 1년 앞두고 선거 전략 사령탑으로 돌아오자 비문재인 측은 긴장했다. 물갈이 칼을 휘두르고 빈자리에 청와대 참모들을 중심으로 한 친문 세력들을 꽂아 넣을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정권 말에 갈수록 청와대의 힘이 떨어지는 만큼 ‘진문(眞文·진짜 문재인)’ 인사들이 여의도를 장악해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떠받치게 할 것이라는 전망이었고 양 원장의 의도와 관계없이 실제 그렇게 됐다. ‘진문’들의 하방(下放)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진문의 여당 접수 시작으로 여당이 청와대 여의도 사무소가 된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이게 양 원장의 첫째 역할이었다는 것이 여권 인사들의 시각이다.
총선전에서도 공약과 인재 영입 등 굵직한 사안들이 양 원장의 손을 거쳤다. 그뿐만 아니라 민주당 위성 비례연합 정당 창당 그림도 막후에서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양 원장의 민주연구원은 3월 초 ‘21대 총선 비례정당 관련 상황 전망, 민주당 대응 전략 제언’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민주당의 비례대표용 연합정당 참여를 주장했다. 민주당이 비례 연합정당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통합당에 원내 제1당을 빼앗길 것을 우려했다. 당 안팎의 거센 논란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양 원장의 구상대로 비례 위성정당을 창당했다.
‘조국 수호’ 집회를 주도한 개국본(개싸움국민운동본부)이 주축인 ‘시민을 위하여’와 기본소득당 등 신생 정당과 손잡고 더불어시민당을 만들었다. 더불어시민당 참여가 배제된 정치개혁연대 하승수 위원장은 “적폐 중에 적폐”라며 “이런 사람이 집권 여당의 실세 노릇을 하고 있으니 엉망인 것”이라고 양 원장을 정면 비판했다. 하 위원장은 “민주당 중진조차 양정철 씨의 눈치를 보는 듯하다. (양 원장이) 집권 여당의 대선 후보보다 막강한 힘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낙연보다 양정철이 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했다. 진중권 동양대 전 교수도 “양정철은 ‘개국 공신 광흥창팀의 수장’. 이낙연은 PK(부산·경남) 친문의 ‘데릴사위’”라며 “당연히 양정철이 권력 서열에서 이낙연 위에 있을 수밖에”라고 했다.
당 싱크탱크 수장이 총선에서 직접 유세 지원에 나선 것도 이례적이다. 양 원장은 박빙 지역을 돌며 민주당 후보를 직접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손혜원 무소속 의원과 정봉주 전 의원이 주도해 만든 비례정당인 열린민주당을 맹비난했다. 민주당의 공식 비례정당은 자신이 주도해 만든 더불어시민당이란 사실을 주지시키려는 전략이었다는 분석이다.
양 원장은 총선 정국이 마무리되면 다시 야인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그가 정치권에 머무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힘이 쏠릴 수밖에 없고 이런 현상은 당의 새 지도 체제에 부담을 줄 수 있어 정치권과 거리를 두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야인 생활이 얼마나 지속될지 의문이다. 여권 관계자는 “정권 출범 뒤 야인으로 갔다가 총선을 앞두고 돌아왔듯이 차기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을 위해 다시 정치권에 돌아와 친문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진=연합뉴스
“친박 색채를 벗겨내고 중도 쪽으로 끌어와야 대선 승산”
박형준 통합당 공동선대위원장은 지난해 중반부터 중도보수 통합 작업에 뛰어들었다. ‘통합과 혁신 준비위원회’를 만들어 지난해 8월 두 차례 ‘대한민국 위기 극복 대토론회’를 열고 통합 추진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토론회에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도 참석해 “자유 우파가 이길 방법은 통합밖에 없다. 통합만이 승리의 길”이라며 통합론에 불을 댕겼다.
그는 통합 작업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 한경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가 거의 궤멸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적폐 청산을 하면서 재기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됐다. 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했던 지식인으로서 보수 재건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을 보면 내가 초기에 기대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대안 세력이 있어야 하는데 제3지대는 혼란스럽고 새로운 정체성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렇다면 보수를 재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보수뿐만 아니라 중도까지 포괄해 새로운 모습을 보이면 많은 세력들이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보수 통합을 놓고 태극기 세력과 중도보수를 표방하는 유승민계·안철수계까지 포괄하는 대통합, 태극기 세력을 배제한 기존 자유한국당과 유승민계 중심의 중통합이 부딪쳤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두고 태극기 세력과 유승민계가 갈등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박 위원장은 태극기 세력과의 통합은 후순위로 두고 유승민계와 우선 통합을 주장, 관철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혁신통합추진위원장을 맡아 2월 17일 자유한국당, 유승민계를 주축으로 하는 새로운보수당, 이언주 의원이 주도해 만든 미래를향한전진 4.0 등이 힘을 합쳐 미래통합당을 탄생시키는 산파 역할을 했다. 이후 통합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막후 총선 공천 그림을 그렸다. 공천에서 친박(친박근혜)계가 몰락하고 친이(친이명박)계와 유승민계가 선전한 것은 김형오 전 공천관리위원장과 박형준 위원장의 물밑 작업 때문이라는 설도 돈다.
또 친박계에선 김형오 위원장-김무성 의원-박형준 위원장의 밀약설을 제기한다. 공천에서 탈락한 한 친박계 의원은 “김 위원장, 김 의원, 박 위원장이 차기 대선까지 염두에 두고 친박계를 배제하고 친이계와 유승민계 등 중도 성향들로 당을 채우는 시나리오를 그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물론 김 위원장, 김 의원, 박 위원장 모두 이를 강력하게 부인한다. “차기 대선에서 정권을 탈환하기 위해서는 당을 구각에서 탈피해 중도까지 확장된 튼튼한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공천과 총선 전략에 담긴 뜻”이라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통합당 의원은 “박 위원장 등이 당의 친박 색채를 벗겨내고 중도 보수 쪽으로 끌어와야 다음 대선에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했다.
박 위원장은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영입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황교안 대표의 영입 제안을 거부했던 김 총괄위원장의 자택을 찾아 통합당 합류를 설득했다. 박 위원장은 “나라가 어려운 상황인 만큼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는 데 동참해 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했다”고 말했다. 영입 배경에 대해선 “지난 3년간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가장 날카롭게 비판했다”며 “상징성과 영향력을 가진 분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이런 박 위원장의 역할은 총선 뒤 벌어질 차기 대선판에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통합당 관계자는 “박 위원장이 보수 통합 작업을 주도한 것은 총선만을 겨냥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여야 선거 전략가인 ‘양정철 대 박형준’의 대결은 이번 총선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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